눈을 번뜩였을 땐 이미 너의 하루가 시작되어 있었다. 낯선 집에 빠르게 적응한 녀석은 두 다리를 길게 뻗고 편하게 누워 있따. “여기가 네 집 안방이냐”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몸을 돌돌 말고 팔랑이는 귀가 서슬한 아침 바람을 반길 때, 녀석의 앞발이 내 콧등을 향해 있었고 그 뒤척임에 따라 일어나게 된 일이다. 어떻게 자는 건지...
자는 모습이 날마다 어찌나 제각각인지 온몸을 비틀며 자다가 두 손을 교차해서 제 얼굴을 가릴 때도 있는가 하면 머리만 이불 속에 쏙 넣고 잘 때도 있다. 고양이에게 "사람 같다, 연체 동물이다"라고 하는 말에 납득이 간다.
네가 가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자다 깨 부어있는 얼굴로 멍하니 쳐다볼 때나 세상 빛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반 백세 산 것처럼 양반 다리를 하고 있는 모습 때문이다. 별난 모습을 보며 희멀건 미소를 지을 때 배고픈지 작은 울음을 들려주는 녀석이다.
아침 댓바람부터 신이 났는지 펄쩍 펄쩍 뛰어 다닌다. 침대에서 이불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 오다가 책상 위에 놓인 택배 박스에 흥미를 갖고 코를 킁킁 들이민다. 처음 맞닥드린 일에 걱정보다 손발이 앞섰던 때가 있었는데 녀석을 보니 잃어버린 옛 모습이 생각이 났다.
대출 받은 빚 갚으랴 밤을 꼬박 새며 일을 하고, 아침 수업에 늦어 부랴부랴 학교로 뛰어 갔을 때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반겨주던 친구들의 모습에 힘을 얻어 다른 알바 공고를 알아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요리도 공부하며 살며 처음인 것들을 기쁨으로 여겼었다. 언제부터였을까? 항상 달렸던 나의 발걸음 서서히 걸음으로 바뀌고 더 천천히 걷기 시작했던 날은. 어쩌면 가만히 멈추어 지나쳐 보지 못하고 있는 시간은 아닌걸까? 그렇다면 나는 안도해도 된다.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게 아니니까. 그저 돌아온 길을 보고, 나아갈 길을 바라볼 때가 된 거니까. 누구나 오래토록 뛸 수 만은 없다. 그러나 적잖은 핑계처럼 들려서 마음이 씁씁해진다.
실컷 놀고 지친 기색으로 무릎 앞에 픽 드러눕는다. 이럴 때면 녀석의 몸을 쓰다듬으며 작게 들리는 골골송에 마음을 편히 가지면 나 역시 마음의 안정이 든다. 이대로면 다시 앞발을 내딛을 수 있다. 새로운 가족.
가족이란 이렇게나 별난 의미잖니,
빤히 쳐다보는 네 시선의 시간을 나에게 보여주렴
오늘은 솜털 같은 두 손을 소심하게 내밀고 지긋이 쳐다보는 네 얼굴이 보인다.
“아침부터 끼 부리네”
배를 만지면 내 손을 붙들고는 두 다리로 파바박 손을 긁는다.
2개월 때부터 장난이 많았던 녀석도 아장아장 걷는 것도 힘들 때가 있었다. 그러나 힘겹게 일어서고는 위태롭게 떨리는 두 발을 뻗어 내 손을 붙잡았고 완전히 자라지도 않은 이빨로 깨물며 버티는 걸 보았다. 내가 볼 때 귀엽고 앙증맞은 행동이 제 딴에는 온 힘을 다한 노력이라 생각이 드니 마음 한 켠이 떨리면서 이처럼 어린 시절의 내가 자꾸만 떠올랐다.
녀석을 기르면서 사랑하는 가족 생각이 잦아졌다. 여느 고양이와 같이 끌어안으면 도망가는 네가 나의 모습이어서 그런 걸까. 네가 편한 시간을 만들어 가는 것도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생기는 것이지만, 네 작은 몸부림이 커다란 나를 움직이고 있다.
@고양이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