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양이시인 Oct 03. 2024

내 집 마련에 성공한 한 살 고양이

집사가 집사인 이유

    

#쿠팡 상자

테이프 뜯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부스스한 눈으로 옆을 쳐다보니 남자가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얼굴이 새 빨개진 것을 보니 잘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소리 나는 쪽으로 걸어간다. 세 겹으로 겹쳐놓은 상자를 자르느라 얼굴이 빨갛게 된 터였다. 하나씩 잘라서 겹치면 될 것을 그를 본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어리숙한 모습에 여전히 미덥지 않았다. 뭘 만들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냐앙-]

[언제 왔어 설이야!!!!]


나를 보면 호들갑을 떠는 것도 여전하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격양된 저 톤은 시간이 지나도 귀를 아리게 한다.

[잠시만 기다려봐. 우리 설이 선물 주려고 아침부터 만들고 있으니까.]

마음만 받겠다고 연거푸 외쳤으나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이다.

세로 15센티 직사각형으로 자른 조각은 울타리로 둘러졌다. 바닥에 솜을 깔고 그 위를 인공잔디로 메꾸었다. 참새 아저씨랑 나란히 내려본 마당과 엇비슷한 듯 보였다. 그 집 담벼락에는 살구빛 털을 가진 고양이가 늘 편안한 자세로 누워있었다. 가끔 창문으로 다가와서는 자기가 골목대장인 양 으스대는 모습이 눈꼴 셨다.


[어제는 말이야 상복 아저씨집에 갔는데 맛있는 것들이 줄지어 있었단 말이지. 하나 물어가려다가 파리채로 얻어맞기만 했는데 오늘은 주인집 사장이 미안했는지 꼬리를 하나 던져주더라니까? 아, 너는 갇혀 있어서 생선이 뭔지 모르겠구나? 바다는 들어봤니? 그 바다라는 게 엄청 크고 넓거든. 끝도 안 보이는데 다 파란색이야 온통 파란색. 그곳이 생선들의 집이야. 근데 이것들은 다리가 없단 말이지. 생김새도 독특하고. 뭐 나야 맛만 좋으면 그만이니까.]

[다리가 없으면 어떻게 걸어?]

[걷지 않고 헤엄쳐]

[헤엄?]

[음... 흘러가는 거야]

[흘러가?]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가더라고]


나도 가끔 씰룩인다고 반박하려다가 참았다. 생선들만이 가진 특징을 뺏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컷 떠들고 돌아가는 녀석의 발걸음이 당당하게 보였다. 그러나 이내 자동차 경적소리에 화들짝 놀라 미끄러지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상자를 기둥벽 삼아 세우고 집을 완성해 갈 때 새하얀 피부 위로 그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인공 잔디가 깔린 마당에 장식품들이 세워지니 꽤 그럴싸해 보인다. 자전거, 축구공, 카세트.... 카세트? 집에 있는 거 아무거나 갖다 놓은 모양이다. 남자는 국어를 가르치는데, 그중에서도 문학 작품에 많은 애정을 갖고 있다. 한가할 때는 시를 쓰고 소리 내어 읽어주기도 한다. 어제는 한 학생에게 개연성을 따져야 한다며 그렇게 강조하더니 앞마당에 카세트 놓은 걸 그들이 봐야 할 것이다.


[자, 설이! 완성!]


확장된 동공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자리를 피했다. 그가 공들여 세운 작품이지만 편안한 쉼터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표정이 꽤나 볼만하다.


저녁이나 돼서야 상자 속으로 들어갔다. 묘하지만 밖에서 건너온 종이 냄새가 무척이나 포근했다. 몸을 말아 누우니 인공 잔디도 제법 폭신했다. 접착제가 마르지 않은 집에서 따뜻한 온기가 빠져나갈 새라 얼른 잠에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사람을 살리는 고양이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