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곳에 있는 것
여행: 사는 곳을 떠나 유람을 목적으로 객지를 두루 돌아다님
객지: 자기 집을 떠나 임시로 머물러 있는 땅
관광: 다른 지방이나 나라의 풍경, 풍물 따위를 구경하고 즐김
파란 하늘. 덥지만 조금 참으면 돌아다닐 수 있는 날씨. 이맘때 가야 하는 곳, 먹어야 하는 것들이 많다. 빨갛게 피어오른 장미로 화려한 담을 세운 곡성이, 올망졸망한 보라색 수국 다발로 가득 찬 제주가 너무 그립다. 여행이 너무 그립다.
나에게 여행은 시간의 무게를 덜어내는 행위다. 낯설고 새로운 거리를 보는 것만으로 어린아이가 되는 것 같고, 흥미로운 것들과 호기심으로 가득가득 차서 하루가 아주 길게 느껴진다. 하지만 여행은 관광과 다르다. 결국 사람 사는 곳 다 똑같다고 하지 않던가. 여행은 굳이 찾아간 객지의 ‘똑같음’을 발견하고, 별로 다르지 않음에 아쉬워하고, 그럼에도 사랑하는 행위다. 즐거움이 관광이라면, 아무 감정이라도 조미료로 더 들어간 게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관광의 완벽하고 웅장하고 즐거워야 할 것 같은 거창한 느낌을 뺀 여행은 가볍고 산뜻하다. 쉽게 엉망이 되기도 하고, 별 거 아니게 될 수도 있는 유람의 행위. 여행. 그럼 아무 데나 아무렇게나 쏘다니는 모든 행위 가운데 여행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여행의 기준은 무엇인가?
친구들을 만나러 홍대에 가는 것, 직장 동료의 결혼식에 참여하려고 부산에 가는 것. 이런 경우는 보통 여행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출장이나 각종 행사 참여처럼 집을 떠난 이유가 명확한 경우는 여행의 기준 밖에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익숙한 장소를 가는 것을 여행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합해보면 돌아다니는 장소가 얼마나 낯설고 특별한 곳인가?를 기준으로 여행이냐 아니냐가 나뉘는 것 같다.
그런데 여행의 기준을 낯설고 특별한 장소로 세우기엔 여러모로 아쉬운 점들이 많다. 애초에 ‘객지’는 자기 집을 떠나 임시로 머물러 있는 땅을 말한다. 나는 아직 ‘내 집’이 없다. 가끔 답답해지곤 하는 지금의 내 방은 온전한 나의 공간이 아니다. 나는 언젠가 어딘가에 마련하게 될 내 꿈의 집과 내 방이 몇 광년은 떨어져 있다고 믿는다. 독립을 원하는 내가 이 공간에 정을 더 붙이기란 정말 요원한 일이다. 그럼 이 곳 또한 객지라고 볼 순 없을까? 나는 지금 여행 중이라고 해선 안될까? 앞선 사례들은 결코 여행이 될 수 없을까?
‘모든 요일의 여행’에는 ‘여기서 행복할 것’의 줄임말이 ‘여행’이라는 말이 나온다. 퍽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은 이 문장은 여기라는 단어를 통해 여행의 특성이 가지는 위치의 중요성을 잘 녹여내고 있다. 동시에 장소보다 행복함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말한다. 기왕이면 나는 이 쪽 여행의 기준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관광에서 무게를 덜어내 여행이 되는 것처럼, 낯설고 특별한 곳에 대한 환상을 덜어내면 어느 곳이나 객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어느 객지 위에 있는지 상관없이, 당신이 행복하다면 그건 당신의 여행이 될 수 있다. 낯선 장소에서 실망하는 것도 여행인 것처럼, 익숙한 장소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도 여행이 된다.
여행의 기준은 ‘자신만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곳에 있는 것’이다.
오늘 집에 들어갈 땐 수국을 한 다발 사가려고 한다. 푸른 섬 제주의 느낌이 물씬 나는 보라색과 산성이 부족해 붉은빛을 띠는 분홍색이 어우러진 다발을 봐 뒀다. 꽃 한 다발로는 진짜 제주를 여행한 시간과 그때의 감정과 완전히 똑같게 만족할 순 없겠지만. 나만의 작은 여행의 기준을 세운 것 만으로, 하루하루를 여행으로 느낄 수 있다. 비록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객지라고 하더라도, 머리 끝까지 꽉 찬 여행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루의 행복을 느끼기 위해. 하루를 여행처럼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노력을 보태본다.
오늘의 Reference
* 여행, 객지, 관광의 사전적 정의 : https://dic.daum.net/word/view.do?wordid=kkw000179609&supid=kku000225369
* 시간의 무게 : https://brunch.co.kr/@danji/4
* 여기서 행복할 것의 줄임말, 여행 : 모든 요일의 여행, 김민철, 2016, 북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