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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aLia Aug 09. 2024

다정함과 외로움의 등가

이번 여행의 마지막 비행이 끝나간다. 태블릿으로 글쓰려고 키보드까지 사두고 한 번도 꺼내보지 못했다. 정말 바쁘고 숨가쁜 여행 일정이었다.


하지만 전혀 아쉽지 않다. 그날그날의 세세한 감정과 기억들은 기록하지 못했지만 장장 9일이라는 기간 동안 얻은 큰 감정과 기억은 모두 향수로 남아있을 테니까.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새로운 문화권에서 이방인이 된 듯한 기분을 느껴본 것만으로 충분히 큰 자산이 되었다.


이번 여행의 키워드를 꼽자면, 바로 ‘외로움’이다. 왜일까. 환영해주는 이들이 있었고, 챙겨주는 이가 있었고, 모두가 날 반기고 미소지어주었지만 여행 내내 외로웠다. 여행의 말미로 갈수록 그런 기분이 더 거세져갔다. 그 미소들이, 친절들이 다 한때의 스쳐지나갈 것들일 뿐이라는 걸 알아서였을까. 그들의 다정함, 그리고 그곳의 아름다움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었다. 따듯할수록 다정할수록, 더더 그곳이 좋아질수록 외로워진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외로웠기에 오히려 돌아가고 싶어진다.


다시 가볼 수 없는 곳에 인연을 남기고 온다는 건 마음에 채우지 못할 빈 자리를 늘 남겨둬야 하는 것과 같다. 그들이 아니면 채워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오히려 그 빈자리에 눈이 가지만, 언젠가 채워질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치워버릴 수도 없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잊혀지게 될까? 사실 아무 사이도 아닌 게 맞는데, 자꾸만 스쳐갔던 얼굴들과 미소들이 떠오른다.


한 마디도 벙긋하지 못해 눈알만 굴리던 나를 향해 괜찮다는 듯이 편히 웃어주던 브라질에서 온 젊은 여행자. 내 또래로 보였고 친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부족한 언어실력 탓에 정말 한 마디도 섞어보지 못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옆 자리에 앉았던 뉴질랜드 부부. 그 어떤 키위들보다도 다정했고 친절했지만 잔뜩 겁을 집어먹어 몇 마디 나누지도 못했다. 사실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두려워 말을 건네지 못했다. 그래도 겁먹지 말고 적극적으로 말걸어볼걸. 이 또한 아쉬움이 남는다.


로토루아 숙소에서의 중국인 사장님. 남편이 뉴질랜드에서 20년 넘게 산 사람이지만 본인은 6년도 되지 않아 아직 그곳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가 가진 타향살이의 외로움이 내게는 다정함으로 다가왔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여행자들은 모두 외로운 이들이 아닐까? 홀로 걷고 홀로 살아가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 바로 혼자 먼 곳으로 훌쩍 떠나온 이들일 것 같다. 나도 여행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여행은 어쩌면 나의 또다른 첫 발걸음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확연히 이전 여행과는 다른 감정이 느껴진다.


24.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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