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미워하고, 또 사랑하다
쓸데없이 여리고, 눈치 없고, 철은 언제 드나 싶고, 나보다 더 개인주의적인 데다, 부모님의 생신도 내가 알려주어야만 챙기는 답답한 놈. 십 대 시절 내 심부름들은 거부한 주제에 건방지게 라면을 끓여달라고 한 녀석. 그러나 한 편으로는 나처럼 공상을 즐겨하고 책을 사랑하며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 중 나와 영화 취향이 가장 비슷한 사람. 거기다 의외로 나에 대해 잘 알고, 때로는 부모님보다 나를 더 잘 이해하는 사람.
위에 묘사한 이는 다름 아닌 하나뿐인 나의 남동생이다. 동생이 컴퓨터를 하고 있던 내게 대뜸 라면을 끓여달라고 한 일은 대략 고등학생 때의 에피소드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내가 과연 형이었어도 그런 부탁을 했을까? 무엇보다 그와 나의 나이 차이는 고작 한 살이다. 지금도 끓이기 귀찮다는 이유로 라면을 잘 찾지 않는 나이지만 그때는 그나마 제대로 끓일 줄도 몰랐다. 누나가 음식을 차려주었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내게도 부탁했지 싶다.
아직도 그때의 일로 황당해지다가도 내 주변에 나처럼 공포 영화를 즐기면서 에이리언 시리즈를 찬양하고 찬미하며, 못지않게 다독가인 인물은 남동생뿐이라는 사실이 떠오를 때면 새삼 애틋해진다. 게다가 인정하기 남사스럽지만 남동생이 되레 부모님보다 나를 더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심지어는 여러 면에서 내가 부모님보다 동생과 더 공통점이 많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감히 추측건대 자신의 자매나 형제에게 이런 복잡다단한 감정을 품은 이가 나 하나는 아닐 것이다.
사별로 인해 두 번의 결혼 생활을 한 빈센트, 그가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두 딸 케이티와 크리스티나, 그리고 두 번째 부인과 전 남편 사이의 아이였으나 그가 친 딸처럼이 아닌, 진정 자신의 딸로서 키운 레이첼. 아버지 빈센트의 임종이 다가오자 각각 결혼해 따로 살던 케이티와 크리스티나는 아버지와 레이첼이 지내고 있는 본가로 찾아온다.
아무리 서로가 못마땅하다고 한들 아버지가 오늘내일하는 상황인 데다 오랜만에 만나서 얼굴을 붉힐 수는 없는 법. 케이티 딴에는 참아 보려고 하지만 아버지가 편찮으심에도 불구하고 집안에서 대마초를 피워대는 레이첼에게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틈만 나면 서로에게 이를 드러내는 불 같은 성미의 두 언니 사이에 낀 유순하고 상냥한 막내 크리스티나는 내내 안절부절 못 한다.
아버지의 상태는 점점 나빠지기만 하는 와중에 케이티는 자신이 부재한 동안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는 집안 사정에 걱정이 끊이지 않고, 크리스티나는 집에 두고 온 갓난쟁이가 벌써 그립다. 레이첼은 아버지와 둘이 지내던 조용한 집에 찾아온 두 자매의 존재로 인해 불편하기만 하다. 서로 조심한다고 조심하지만 세 사람 사이의 기류는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것만 같다.
온라인에 종종 현실남매니, 현실자매 혹은 형제니 하는 영상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그때마다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갔던 것 같다. 나 같은 경우 영상 속 혈육들처럼 동생에게 괜히 시비를 걸고 싶은 것까진 아니어도 트집을 잡고 싶을 때는 종종 있지만 한 살씩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더는 그런 데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그래도 동생을 향한 내 시선이 곱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 남동생을 안쓰러워할 필요는 없다. 동생이 있는 이들은 알겠지만, 제아무리 동생들이 장녀, 장남보다 순진하고 선한 눈빛을 하고 있다 한들 그 뒤틀린 속만은 첫째 못지않다.
동생과 나는 연년생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한 살 어린 남동생이 있다는 말을 꺼내기 무섭게 ‘엄청 싸웠겠다’는 말이 돌아오곤 한다. 그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예스’이다. 초등학생 때까진 육탄전을 벌였고, 중학생 때부턴 억울하지만 물리적인 힘의 차이로 인해 말싸움으로 종목을 전환했다. 동생이 순한 편이어서였는지, 아니면 내 말발이 그만큼 강력했는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논쟁은 (적어도 내 생각엔) 나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정확히 내가 고3 2학기를 거치고 있을 시점 여느 때처럼 말다툼을 하던 중, ‘누나는 고 3인데 맨날 컴퓨터만 하잖아’라는 맥락에도 맞지 않던 동생의 한 마디에 KO 패를 당한 적이 있다. 그때 일은 여전히 분하다.
아마 영화 ‘아버지의 세 딸들’의 세 자매가 서로를 보는 시선도 나처럼 어느 정도는 삐딱하지 않았을까. 첫 째 케이티의 독단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모습에 숨 막혀하고, 지나치게 자유분방해서 남들처럼 착실히 살아갈 생각 따위 없어 보이는 레이첼을 한심해하고, 항상 웃는 얼굴로 좋은 이야기만 하는 크리스티나를 보면 팔자 좋다는 생각부터 든다. 꼼짝없이 병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 곁을 지키는 와중에, 세 자매는 각각 엇나가기만 하는 십 대 딸로 인해 속이 타고, 내 집에서 원래 하던 대로 하는 것뿐인데 갑자기 잔소리를 듣게 되고, 집에 두고 온 갓난아기가 보고 싶은 상황이니 서로를 향한 말에 가시가 돋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러한 날 선 감정이 계속 이어질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아버지를 위해 다시 서로에게 손을 내민 순간 그들의 마음은 어느새 다시 물러지고 애틋해진다. 머리끝까지 차오른 스트레스와 불안으로 인해 내뱉은 공격적인 말들은 당연히 진심이 아니었고, 제법 자주 밉고 못마땅하다고 해도 서로의 존재를 잃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함께 얼싸안고 눈물 콧물을 쏟고 나면 서로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해진다. 물론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입씨름을 하게 되겠지만 말이다.
여느 혈육들이 그러하듯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같이 어울리는 시간이 줄어든다. 이 사실이 문득문득 느껴질 때면 동생과 철없이 싸우기 바빴던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물론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내 생각에 공감할지는 미지수이지만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는 서로의 얼굴을 보기가 더욱 힘들어질 테다. 그러니 훗날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할 수 있을 때 틈틈이 울고 웃고 지지고 볶아야겠다.
사진 출처 :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