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집단에 합류하게 됐다고 생각해 보자. 나를 제외하고는 이미 모두 아는 사이이며, 속 사정을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제법 돈독해 보이기까지 한다.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고 어울리길 즐기는 사람은 짜릿할 수 있는 이 상황이, 나로서는 벌써 숨이 가빠온다. 만약 이 와중에 내가 나이가 가장 어리다거나, 직급이 낮다면? 혹은 나 홀로 홍일점이라면? 과장 좀 보태서 이 순간부터 나는 숨 쉬는 법조차 잊을지 모른다.
나의 경우 지금까지 중 가장 울렁거렸던 경험 중 하나는 언젠가 가입했던 영화 동아리의 첫 모임에 나갔을 때였다. 내가 가입한 이후 해당 동아리에서 보기로 한 영화는 마침 내가 보고 싶지만 혼자서라도 시간을 내서 보러 갈만한 열정까진 안 느껴지는데, 주변인들 중에서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고, ott에서 1편을 관람한 턱에 어쨌든 다음 편이 궁금은 했던 그런 시리즈물이었다. 한 마디로 겸사겸사 모임에 나가 다른 사람들과 보기에 적격인 작품이었다고 하겠다. 그렇게 나는 모든 아귀가 잘 맞아떨어진다는 생각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러 나갔고, 회원들이 모두 모이자마자 충격을 받고 말았다. 하필이면 그날 그 영화를 보러 나온 여자 회원은 나뿐이었던 것이다.
그때의 기분을 떠올리면 아직도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이다. 누군가는 이러한 상황이 반가울지 몰라도 나로서는 정반대였다. 남성이 다수인 상황에서 나오는 어휘나 주제들이 불편했던 것은 물론이고, 남자들끼리만 어울릴 수 있었을 텐데 하필 내가 끼어들어 그들이 좀 더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당시 느꼈던 심적 부담감이 굉장했다는 것과는 별개로 이 비슷한 상황은 제법 흔하게 일어난다. 예를 들어 새로운 직장에 들어갔을 때, 처음으로 동아리 등의 모임에 나갔을 때, 또는 결혼해서 배우자의 식구들을 만나게 됐을 때.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닥쳤을 때 다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본인이 그 집단에 맞추어 나가야 된다는 압박감을 느낄 것이다.
• Run Rabbit Run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린 그레이스와 알렉스. 게임 사업으로 부유해진 그레이스의 시가 식구들은 결혼식이 끝난 당일 밤, 그들은 새로운 식구를 맞이할 때마다 진행하는 전통이라며 그에게 게임을 제안한다. 시가 식구들이 내민 카드를 건네받고는 별생각 없이 한 장을 고르는 그레이스, 그리고 거기에 적힌 ‘Hide and Seek’. 여전히 해맑은 그레이스는 그 순간 남편 알렉스를 비롯한 그의 식구들의 표정이 묘하게 경직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시가 식구들은 그레이스에게 아침이 밝을 때까지 잘 숨어 있기만 하면 이기는 단순한 게임이라며 규칙을 설명한다. 그레이스는 결혼식 첫날부터 새 식구들과 놀이를 하자니 다소 멋쩍긴 하지만 어쨌든 그들과 잘 어울려 보려는 마음에 숨을 장소를 찾기 시작한다.
닥쳐올 미래를 모른 채 해맑기만 한 새 신부 그레이스
그레이스가 시야에서 벗어나기 무섭게 웬일인지 살기등등한 무기를 하나씩 챙기는 시가 식구들. 알고 보니 그 게임에는 술래를 피해 숨는 것 외에 중요한 규칙이 더 있었다. 나머지 술래들이 아침이 오기 전까지 숨어 있는 게임 참가자, 즉 새 식구를 반드시 죽여야만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과거 그들이 맺었던 의문의 계약으로 인해 술래들, 즉 기존 가족들은 전부 죽는다는 것. 그레이스는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목숨을 건 게임의 먹잇감이 된다. 그리고 우연히 목격한 가정부들의 죽음, 그리고 자신을 발견했다 하면 맹렬하게 달려드는 시가 식구들을 보며 깨닫는다. 살고 싶으면 이 집에서 달아나야 한다는 것을.
• 어디까지 맞추어야 하는가
비록 영화 상에서의 설정이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그레이스가 느끼는 부담감이나 그에게 그들만의 규칙을 따르라고 종용하는 시가 식구들의 모습 자체는 우리들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비록 나에게 시가나 남편은 없을지언정, 그동안 보고 듣고 배운 덕에 여성 개인에게 며느리라는 타이틀이 붙는 순간, 평균적으로 어떠한 환경에 처하고, 어떠한 역할을 부여받는지 모르지 않는다. 아마 이는 성인 여성이 아닌 여성 청소년들조차도 알고 싶지 않음에도 일찍부터 깨닫게 되는 메커니즘이자 자연스럽게 축적될 수밖에 없는 데이터베이스이다.
별의별 말도 안 되는 상상과 ‘만약에’라는 생각이 일상인 내가, 이성애자 여성으로서 결혼을 하게 됐을 때의 상황을 그려본 것은 물론이다. 남편의 가족들을 만난 순간은 물론이고, 이러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들, 이때 마주해야 하는 각각의 구성원, 그리고 결혼식 이후 닥친 명절과, 남편의 가족들과 관련된 각종 대소사까지.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편안히 앉아 대화와 다과나 즐길 수 있을까. 그동안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것을 꿋꿋이 거부할 수 있을까.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내 가치관을 고수할 수 있을까. 그랬다가 불편해진 분위기를 감당할 수 있을까. 명절이 되면 잠시 엄마를 돕다가 이내 방에 틀어박혀 영화를 보거나 바깥 약속을 잡는 내가 하루종일 음식과 설거지를 하는 상황을 견딜 수 있을까, 과연 내가.
살벌한 무기를 챙긴 채 그레이스 사냥에 나선 시가 식구들
물론 요즘은 부모님 세대 때보다 며느리의 위상이 좀 더 나아졌다고들 한다. 하지만 내 주변 또래들 중 이미 결혼한 한 친구는 명절이면 아침 7시까지 소환되곤 한다. 누군가는 며느리 못지않게 사위들 역시 부담과 압박을 느낀다고 하지만, 처가에 가서 앞치마를 두르고 지박령처럼 부엌을 지키는 사위의 모습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며느리와 사위의 입장과 역할은 같지 않다. 거기에는 단 한 가지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가부장제이다. 가부장제 하에서 여자는 결혼한 순간 남편 아래 딸린 식구가 되는 것이고, 남자는 결혼과 동시에 가족 구성원을 이끌고 책임지는 집안의 어른, 즉 가장이 되는 것이다. 이럴진대 며느리와 사위에 대한 대우가 같을 리 없다.
시가 식구들을 피해 숨는 그레이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레디 오어 낫’은 슬래셔 공포 및 블랙 코미디의 하드웨어를 갖춘 채 가부장제 타파라는 소프트웨어를 장착한 영화랄 수 있다. 유혈 낭자한 장면들과 살벌한 무기들만 제외하고 보자면, 영화 속 그레이스가 느꼈을 새로운 식구로서 남편의 가족을 만족시기고, 그들과 잘 어울려야 한다는 부담감과,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남편에 대해 표출하는 답답함은 많은 이들이 쉽게 캐치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감정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숨 막히고 공포스러운 상황 속에서 시가 식구들을 하나둘 무찌르는, 다시 말해 마침내 며느리이기 전 한 개인으로서의 스스로를 찾아가는 그레이스의 모습은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안겨 준다. 어떤 집단에 새로 합류하게 되었다면, 기존의 전통과 규칙을 얼마간 존중해 주는 것도 나쁜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그 전통과 규칙이라는 것이 불합리와 차별을 품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부디 나를 비롯한 모두가 나 혼자만 참으면 된다는 온순하지만 안일한 생각으로 이러한 불합리와 차별을 견디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