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블루, 연기력이 늘어만 간다
이른 새벽, 서둘러 집을 나섰다. 사람 많은 출근시간을 피하기 위해서다.
엘리베이터가 한층 아래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강아지를 품에 안은 한 여자가 올라탔다. 그 순간, 그녀의 얼굴을 보고 내 다리가 절로 엘리베이터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녀는 잠시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닫힘 버튼을 눌렀다. 그녀의 얼굴이 사라졌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그녀의 얼굴이 사라지자 비로소 안도감이 느껴졌다.
그 얼굴이 나는 공포스러웠다. 좁은 공간에 그녀와 단둘이 함께 선 채 숨을 쉬어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그녀의 비말이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 나를 둘러싸고 부유할 것이었다. 어쩌면 확진자일지도 모르는데. 확진자가 노 마스크 일 경우, 건강한 사람이 마스크를 썼다 해도 전염확률은 70퍼센트다. 그 부분에서 나의 공포심은 순식간에 분노로 바뀌었다. 마스크가 온전히 나를 보호해주는 게 아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누군가가 나를 위협하고 있다.
출근시간보다 이른 시간, 지하철 안에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러나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자리에 앉으면서 주변 사람들이 마스크를 썼는지 여부부터 살펴본다. 그래야 비로소 나는 안심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쯤 가자 바로 옆에 앉은 누군가의 꼼지락 거림이 예사롭지 않다. 다음 순간 나는 또 식겁하고 만다. 옆에 앉은 한 남자가 마스크 한쪽을 귀에서 빼낸다. 그러고 나서 가방에서 꺼낸 물을 몇 모금 마신다.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그것을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모르겠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작업실 건물로 들어섰다. 역시 새벽녘이라 사람이 없다.
경비원 분과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뿐이다.
엘리베이터로 서둘러 발길을 옮기는데 한 발 앞서 아주머니가 올라타신다.
그런데 아차, 나는 슬쩍 뒷걸음질 치고 만다. 그분 역시 마스크를 쓰지 않으셨다.
왜 자꾸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나는 다른 쪽 엘리베이터 앞으로 옮겨갔다.
역시 내색하지 않으려 애써 연기를 하면서.
내 연기가 뛰어나서일까. 그분은 순순히 혼자 올라가시지 않으신다.
나에게 재차 타라고 하신다. 나는 괜찮다며 물러섰고 다른 일이 있는 듯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몇 번 더 타라고 말을 건네시던 아주머니가 마침내 엘리베이터 문을 닫으셨다.
이내 안도감을 느끼며 마침 도착한 다른쪽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작업실에 도착해 바로 손부터 씻었다. 환기를 하고 옷도 갈아입었다.
그리고 노트북을 앞에 두고 자리에 앉자 멍해졌다. 비로소 피로가 급격히 몰려왔다.
아무래도 노이로제가 걸린 것 같다. 코로나 블루라는 게 바로 이런 걸까.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서둘러 작업실을 나섰다. 사람이 거의 없는 한산한 지하철 플랫폼. 아주 마음에 든다. 그런데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한쪽 자리에 앉은 여자가 눈에 띄었다.
마스크를 턱에 걸친 채 너무나도 해맑게 영상통화를 하고 있는 그 여자의 얼굴이 보이자 다시금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미치겠다. 이런 젠장! 내심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물론 소리가 되어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다시 또 나는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 내색하지 않으려고. 비겁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에게 마스크를 쓰라고 말한 결과가 그야말로 처참했던 기사들이 연거푸 떠올랐다. 내가 그 기사의 한 줄을 차지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무기력해지고 만다. 아무리 애써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구나.
그렇게 불안하면 집안에만 콕 박혀있으라고? 그렇게 말한다면 또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럴 수 없으니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렇게 조심해도 걸린다면, 그건 내 팔자려니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 그럴 수밖에. 서글퍼진다.
또 문득 사람들의 코로나 공포심을 즐기는 고약한 심보를 가진 자들의 기사가 떠올라 치를 떨며 몸서리쳤다.
그런 사람이 어디 한 명뿐일까? 내 주위에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렇다고 어쩌란 말인가. 누구도, 그 무엇도 나를 완벽하게 보호해주지 못한다. 그래, 역시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하지만, 부탁한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지만, 되는 건 되게 해달라고.
제발 마스크를 써달라고 말이다.
누군가 당신의 맨 얼굴을 보며 공포와 분노를 느낍니다.
나뿐 아니라 내 주위 소중한 사람에게 나쁜 전염병을 옮길 수 있습니다.
지금 바이러스보다 더 두려운 건 바로 그거예요.
혼자만 괜찮다고 되는 게 절대 아니예요.
그러니 제발 마스크 써주세요.
위험한 장소는 가지 말아주세요.
다들 건강을 꼭 지켜주세요.
당신과 내가 건강해야 우리 모두 안심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나는 집밖이 두렵다.
그러나 아닌 척 한다.
코로나 시대, 의도치 않게 나의 연기력은 계속 늘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