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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빈 Jul 14. 2019

북경의 밤

감정을 공유하는 일, 여섯째 밤

안녕, 잘 지내고 있나요?


이곳의 하늘은 며칠 뜨거운 햇볕과 아지랑이를, 다시 며칠은 매서운 바람과 번개를 일으켰습니다. 그 탓에 당신께 사진을 보여주며 꼭 가고야 말겠다던 곳에 다 가보지도 못했고요.
 
뜨겁게 달아오른 아스팔트 위를 맨발로 걷는 느낌이란. 웅장한 소리를 내며 갑작스레 휘몰아치는 비바람을 모른 척 젠체 나아가려니 사실은 무서웠거든요.


날씨만 빼놓는다면 예기치 않게 마음이 따뜻해지던 순간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기꺼이 내밀어 주던 손길도, 감사의 인사 후에 돌아오는 멋쩍은 미소도. 아직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만큼 그리 강팍하진 않나 봅니다.


매일 밤 다시 올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조금 더 서늘했으면 좋겠다, 그때는 조금 더 오랜 여정이면 좋겠다, 하고요.


당신이 가장 염려했던 끼니는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듣던 대로 느끼하다거나, 향신료의 냄새가 견디기 힘들 만큼 독하지는 않았거든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한자를 조금 익혀둘걸, 후회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읽을 줄을 몰라 가게 안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지나치는 가게가 음식점인지, 무얼 파는 곳인지 알 수 없었으니까요.  


북경의 밤이 얼마나 예쁜지 아시나요? 휘황찬란하게 반짝이는 밤의 불빛들이 어찌나 아름답던지요. 밤이 깊으면 조용해진 거리는 하필 비에 젖어 더욱 영롱한 빛을 띄기도 했습니다. 하루 내도록 걸어 다닌 탓에 부은 발과 다리를 문지르며 커튼을 거두어 놓고 호텔의 탁 트인 전경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멀리 와있다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것만 같기도 했습니다.


작게 열린 창문 틈 사이로 에어컨 바람이 새어 나가고 더운 바람이 가득히 차올라도 왠지 이곳의 공기는 다를 것만 같아서, 특별할 것만 같아서, 또 반갑기도 해서. 한껏 숨을 들이 마셔 보기도 했고요.


마지막 날에는 첫날 식사를 했던 작은 바에서 와인 한 잔에 숨겨놓을 추억들을 몇 가지 떠올려봐야겠어요.


당신은 어떤가요. 내가 없는 그곳도 그런대로 괜찮았나요? 돌아가면 가장 먼저 보고 싶었다는 말을 할게요. 그리고는 보고 싶었던 만큼, 매 순간 당신을 떠올렸던 만큼. 꼭 안으며 다 하지 못한 이곳의 이야기를 나눠줄게요.

 

무더운 7월의 어느 날
북경에서, 그리운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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