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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28. 2022
3화. 큰언니
큰언니는 직립 보행하는 우리 종족이야. 본인 주장으론 39억 광년 떨어진 ‘TRAPPIST-1g’ 행성에선 우리 동족이 이동하는 방법이 다양하다고 하네. 각 구성원의 비율이 비슷한 걸 보면 아직은 한쪽으로 ‘자연선택’되지는 않은 것 같아. 나는 직접 보거나, 겪지 않은 사실은 잘 믿지 않는데, 음... 큰언니는 좀 신뢰가 간달까. 왜냐면 우리 사료와 모래, 장난감을 선택하고 결제하고 있거든. 신 같은 분이지. 그래서 그냥 믿기로 했어. TRAPPIST-1g.
큰언니는 24살 때까지 본인을 사피엔스로 알고 살았어. 그러다 25살 되던 해에 자각을 하게 됐지. 원래 자각이란 건 선형으로 잘 이뤄지지 않거든. 계단 형식의 곡선 분포를 나타내. 어느 날 갑자기 ‘퉁’하고 오는 거지. 그래서 전날까진 사피엔스였지만, 하루아침에 우리 종족으로 살기 시작했어.
처음엔 ‘TRAPPIST-1g’에서 온 고향 사람들을 찾아 헤맸지만 찾을 수 없었어. 겉모습으론 사피엔스와 구분이 되지 않을뿐더러, 스스로 자각하기 전이라면 미쳤다는 소리를 듣기 딱 좋거든. 그래서 고향 사람을 찾는 건 포기하고 이 행성에 거주하는 우리에게 의지하기 시작했지. 이웃나라 도쿄에 거주하는 ‘베이비’와 ‘제이’가 처음으로 큰언니를 믿고, 받아줬어. 그 증거로 아직도 집안에서 오래된 옷을 꺼내면 일본 언니들 털이 발견되곤 하지.
지구별 우리 종족에게 받아들여지고 나선 집에서 같이 동거를 하고 싶어 했어. 당연한 순서지. 그런데 그동안 키워주신 사피엔스 부모께서 허락하실 가능성은 0.1%도 되지 않았지. 우리와 같이 지내려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하거든. 그래서 큰언니는 일본을 자주 드나들었어. 유일하게 편하게 수다를 떨 수 있었거든. 한국에선 길에서 마주치는 우리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지. 가끔 사회성 좋은 아이는 눈을 맞추거나, 옆으로 와 머리를 만질 수 있도록 내어주기도 했지. 그런 방법으로 큰언니는 생존 에너지를 충전하면서 살았어. 그럴수록 같이 살고 싶다는 마음을 참기 어려워졌지.
그렇게 ‘자각’ 후 1년이 지날 무렵 지금 집사를 알게 됐지. 집사가 사피엔스 큰언니에게 고백 비슷한 걸 할 무렵, 언니는 진실을 말했어. 본인의 고향과, Felis catus라는 사실을. 그 증표로 꾹꾹이 할 때 발톱을 뻗지 않은 얌전한 발 모양으로 손을 내밀었지. 집사는 씩 웃었어. 아마 속으로 ‘짜식 귀엽네’라고 생각했을 거야. 그리고 손인 줄 알았던, 그 발을 잡은 거지. 그 상황을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고 웃어넘긴 건 집사 녀석 눈에 뭔가 씌었거나, 타고난 집사 DNA가 본능적으로 발현이 된 거겠지. 이 두 경우가 아니라면 잘 설명이 안 돼.
2년 뒤. 큰언니와 집사는 동거를 시작했어. 드. 디. 어. 큰언니는 우리 종족과 동거를 시작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된 거야. 집사까지 미리 구해두었으니 우리만 집으로 들어가면 되는 거지. 집사 따위는 의사결정을 할 수 없거든. 그렇게 동거할 우리를 찾기 시작했어. 몰디브 밤하늘에서 TRAPPIST-1g를 보면서 이 모든 걸 생각했을 거야. 큰언니는 다 계획이 있었거든. 냫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