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lis catus 5
5화. 마길남
큰언니의 첫 동거녀 ‘라이트 블랙&화이트’는 3월 7일 1405호에 왔어. 꽤 오래전이라 정확한 날짜를 떠올리기 쉽지 않았을 텐데. 하필 그날이 한 여배우가 떠난 날이라 잊히질 않네. 신기한 일이었어.
한 사람이 여러 타인에게 깊.은. 상처를 받고 스스로 시간을 맺었거든. 떠나기 전에 본인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기록을 남겼어. 이 기록은 누군가에 의해 버려졌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쓰레기통'에서 발견됐지. 그렇게 연기가 될 뻔한 사실이 알려졌어. 어마어마한 츄르를 살 수 있을 만큼의 자리에 있는 사피엔스 여럿이 관련되었지. 하지만, 검찰청에서 핵심 자료가 사라지고, 어떤 피의자는 자기 사무실에서 조사를 받았어. 일반 사피엔스들은 '참수리 회관'으로 가야 는데 말이지.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10년이 지난 2019년 5월 20일 과거사위원회는 ‘재수사는 어렵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어. 영구 미제사건으로 분류가 되었지. 그렇게 지나갔어. 사피엔스들은 심히 부적절한 행동을 한 사람에게 ‘짐승’ 같다고 말하는데, 사실 우리 세계에서 저런 일은 발생하지 않아. 생존에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우린 상처 주지 않거든. 누가 더 진화한 형태의 생명인지는 모르겠어. 사피엔스들은 스스로 ‘靈長’이라던데 글쎄..
‘Felis catus’와 첫 동거가 시작된 날에 저런 일이 있었고, 길게 기억이 남게 된 이유는 이 일 때문에 큰언니와 집사가 ‘라이트 블랙&화이트’ 언니에게 밥을 제때 주지 못했거든. 언니에게도 힘든 기억이었지.
집사들은 동거인이 생기면 ‘이름’ 이란 걸 만들고 부르기 시작해. '존재에 관한 대표적인 거짓말'이기도 하고, 대상을 '꽃으로 만드는 주문'이기도 하지. 그렇게 언니는 ‘마길남’이 되었어. ‘마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길남’. 내가 말했지? 큰언니는 지구별 종족이 아니라고. 그러니 저 작명을 이해하려고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원래 ‘명사’란게 그렇지. 엿장수 맘이야.
길남 언니는 가방에 나와선 낮은 자세로 숨을 곳을 찾기 시작했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우린 알고 있어.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면 일단 숨어야 하거든. 되도록 사방이 막혀있고, 어두울수록 좋지. 그래야 우리를 발견하기 쉽지 않을 테니. 좁은 공간이라 언니가 숨을 곳은 많지 않았어. 텔레비전 뒤나, 소파 아래, 책장 정도였지. 몇 번 공간을 바꾸다 언니는 깨달았지. 그나마 책장이 먼지가 적어 쾌적하다는 것을. 그리고 하드커버 책은 가려운 곳을 긁기에 유용하다는 것을.
언니는 책장 맨 아래칸을 좋아했어. 하드커버 책이 많고, 좀 더 어두웠거든. 그중에 ‘도덕감정론’과 ‘천 개의 고원’이 나란히 꽂힌 자리에 머리를 두는 것을 좋아했지. 두꺼워서 안정적으로 얼굴을 둘 수 있었거든. 누군가 ‘발터 벤야민’에게 물었대. 당신은 서재에 있는 저 책들을 모두 읽었냐고. 그러자 벤야민은 이렇게 대답했지, ‘누가 책을 다 읽으려고 구입하나요’. 책이란 건 장식품이나, 불쏘시개, 운동기구, 냄비받침으로도 사용돼. 언니가 머리를 둔 책은 손때보다 ‘아밀라아제’ 향이 많다는 걸 알았어. 이건 사피엔스들의 베개로 사용되는 물건이구나.
그렇게 도서관 꿈을 꾸면서, 언니는 1405호에 적응하기 시작했어. ‘드르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