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댕댕이들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지. 점잖은 걸음. 쉽게 짖지 않는 과묵한 목소리. 많은 사피엔스 사이에서도 결코 당황하지 않는 침착함. 강백호처럼 우람하지만 군살 없는 몸. 그리고 ‘최웅’처럼 순딩인 듯, 얼간인 듯 약간은 멍해 보이는 것 같지만 언제든 기댈 수 있을 것 같은 흐르는 눈매와 절대 나쁜 말은 하지 않을 것 같은 미소 짓는 입매.
래브라도 레트리버 가문 출신의 오빠는 그중에서도 특별했어. 좀 더 순둥 해 보였고, 많이 흐르는 스타일로 보였거든. 늘 변하지 않는.
그런데 오늘 우연히 봐버렸네. ‘달리는’ 오빠를..
그해 '조이'
트랙 산책 중에 멀리서 사피엔스 무리와 점잖게 느릿느릿 오는 오빠가 보였어. 동행인과 산책을 하려는가 싶었지. 그런데 인조잔디 위에 오르자 오빠 조끼와 줄을 분리하네. 무슨 일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오빠는 달리기 시작했어. 한 10미터쯤 갔을까? 잠시 멈춰 동행인을 한 번 돌아보고는 안전하다고 판단이 되었는지 더 빠른 속도로 뛰기 시작했지. 도저히 쫓을 수가 없는 속도였어. 여느 댕댕이들처럼 이곳저곳을 킁킁거리고 빠르고, 느리게, 깡총거리며 이곳저곳을 뛰어다녔지. 뭐랄까, 많이 놀란 것보다 좀 더 놀랐네. 뼛속까지 이상형인 오빠가 여느 댕댕이와 같다니.. 깡총 뛰며, 퇴근 후 현관으로 뛰어오는 4살 딸아이를 만난 것처럼 방긋하는 표정이라니.
한참 뛰는데 사피엔스들이 돌아가려는지 오빠를 불렀어. 약간 돌아가는 척하더니 반대로 다시 뛰기 시작했지. 이렇게 술래잡기가 잠시 이어졌지. 정말 가야 하는 순간이 되었는지 한 사피엔스가 오빠를 잡기 위해 전력으로 뛰기 시작했어, 오빠는 쓱 보더니 축구장을 벗어나 산책로 얕은 나무 울타리를 넘어 흙길로 뛰어들었지. 현실로 돌아가기 위한 의식 같은 순간이었을까 곧 등을 내어준 오빠는 다시 점잖은 걸음으로 돌아왔어. 슈퍼맨이 순식간에 변신을 한 듯. 걸음걸이와 표정이 15분 전으로 돌아왔네.
좀 만 더 놀자!!
내 상상이 깨져버린 15분이었지만, 오빠가 더 좋아졌다.
해야 할 일을 위해 늘 인내하는 거였구나. 동행인도 꽤 바쁜 사피엔스인 것 같던데. 이런 오빠를 헤아려 뛸 순간을 안겨주는구나. 오빠가 뛰던 15분 동안 온도계가 0도에서 2도로 바뀌던데. 나는 그것보다 더 많이 웃었네. 언젠가 마음껏 본능에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이 오겠지, 그때까지 건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