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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 뭐길래
공대생 조의 평생에 염원은 영어를 좀 잘해보는 것. 그렇다면 세계일주의 첫걸음은 어학연수로 시작하기로 했다. 북미와 오세아니아는 안 갈 거니까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는 걸러졌고, 남은 후보지는 필리핀 아니면 몰타였다. 동남아를 시작으로 서쪽으로 지구를 도는 게 우리의 계획이었기 때문에 필리핀에서 어학연수를 하면 연수를 먼저 하고 여행을 하게 될 거고, 몰타에서 어학연수를 한다면 여행 중간에 몰타에 머무는 게 될 것 같았다. 여러모로 생각해 봤을 때, 필리핀이 낫다는 결론이 났다. 비용적으로도 저렴했고, 영어를 먼저 배우고 여행을 하는 것이 아무래도 더 나을 것 같았다. 결론은 필리핀 세부 2개월 어학연수! 본격적인 여행 전, 완충기로도 아주 좋을 것 같았다.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었던 조서방의 바람과는 다르게 어학원 생활은 술과 장미의 나날들이었다. 한국에서 온 20대들과 세대차이를 극복하고, 일본, 대만, 베트남에서 온 젊은이들에게 K-술 문화를 전파하다 보니 2개월이 쑥 지나가버렸다. 간만에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로 돌아간 것 같았다. 물론 놀기만 한건 아니었다. 세미 스파르타 어학원이었기 때문에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어학원에 딱 갇혀서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 그러니까 50%의 성공이랄까. 다르게 말하면 이건 공부를 한 것도 아니오 안 한 것도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어학원에서 만난 친구들과는 아직까지도 연락을 하면서 지낸다. 그중 훈이 형님이라는 분과는 가족 같은 인연이 되었다. 세부에 있을 때만 해도 전혀 몰랐다. 훈이 형님과의 인연이 이렇게 깊어질 줄은. 훈이 형님은 3년 동안의 세계여행을 계획하고 첫걸음으로 세부 어학연수를 선택한, 낼모레 오십을 바라보는 훤칠한 싱글남이었다. 홍익대 배구부 출신으로 190의 장신에 머리를 빡빡 밀고 계셔서는 처음엔 말 걸기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알고 보니 세상 겁 많은 순둥이셨고, 남들에게 잘 일어나지 않는 희박한 상황이 본인에겐 아주 잘 일어나는 시트콤 같은 삶을 사는 분이셨다. 우리처럼 장기 여행을 계획하고 온 사람을 보니 반갑기도 하고, 혼자 나온 형님이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걱정은 기우였다. 첫 해외여행이 3년 세계일주인 이 대담한 사람은 누구보다 재미있게 여행을 마쳤다. 여행을 하는 동안 우리와 일정이 맞는 나라에서는 같이 여행하다 헤어지다를 반복했는데, 그 기간을 합쳐보니 1년 정도가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 세계일주 2년의 반을 형님과 함께한 셈. 이 시트콤 같은 남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차차 소개하도록 하겠다.
오슬롭의 고래상어
어학연수 2달 동안, 주말이면 세부 근처로 여행을 다니려고 많이 노력했다. 첫 번째 여행지는 오슬롭. 오슬롭은 고래상어가 출몰하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한 어부가 해안으로 나온 고래상어가 신기해서 먹이를 주었더니 매일 오전이면 고래상어가 밥을 얻어먹으러 오슬롭 해안에 몰려들게 되었단다. 고래상어는 예민해서 보기 힘든 동물로 유명한데, 매일 일정한 시각에 한 장소에 모여든다니 고래상어를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최적의 장소였다.
아침 일찍부터 고래상어를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먹이를 던지면 고래상어가 수면 가까이로 올라오기 때문에, 스노클링 만으로도 충분히 고래상어를 볼 수 있었다. 세상에- 다이빙을 해도 보기 힘든 동물을 스노클링으로 볼 수 있다니. 당연히 고래상어를 만지거나 반경 2m 가까이로 가는 건 금지되어있었지만 먹이를 보면 돌진하는 녀석들 때문에 사람이 고래상어를 피해 다녀야 하는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고래상어를 손에 닿을 듯 가까이 볼 수가 있었다. 엄청나게 큰 녀석들이 어부들이 던져주는 조그만 새우를 받아먹는 모습은 상당히 사랑스러웠다. 스노클링은 30분 정도로 짧았지만 고래상어라는 생물체를 본 감동은 쉬 가시질 않았다. 오래오래 행복하렴 오슬롭의 고래상어야-
더하기
고래상어를 보러 가는 거점도시이지만 오슬롭이라는 작은 마을 자체도 너무 매력적이다. 해 질 녘, 마을 방파제에 앉아 동네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걸 보면서 산미겔을 홀짝이던 기억은 아주 선명하다. 그리고 그렇게 크고 동그란 달이 수평선위로 떠오르는걸 본건 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마녀들의 섬, 시키호르
시키호르 여행은 아주 이상하게 시작되었다. 어학원 선생님 비키와 구글맵을 놓고 세부 근처 유명한 섬들을 찾아보는데, 시키호르라는 섬이 보였다. 여기는 어떻냐고 물었더니 비키가 질색을 한다. 여긴 가면 안 되는 곳이라고, 필리핀 사람들에겐 마녀들이 사는 섬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시키호르 마녀에게 마법의 물약을 받아온 사람, 저주를 받아 죽은 사람들을 얘기하는데, 그 눈빛은 진짜였다. 그러니까 난 더 궁금할 수밖에.
시키호르를 구글링 해보니 평이 꽤 좋았다. 아직 많이 유명하지 않은, 숨겨진 파라다이스 같은 느낌?! 여긴 꼭 가봐야겠다 싶었다. 내가 섬에 대해 얘기했더니 일본인 친구들이 관심을 보였다. 결국 우리 여섯 명은 어학원 필리피나 선생님들의 극구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키호르 여행을 떠났다. 버스를 타고 지프니를 타고 배를 타고, 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 시키호르에 도착했다.
마녀들이 사는 섬은 한눈에 보기에도 너무 평화로웠다. 배를 내리는 순간, 이 여행은 재미있겠구나 싶은 느낌이 왔다. 작은 섬이라 당연히 대중교통 따윈 없을 것임으로 우리는 오토바이를 렌트하기로 했다. 한 가지 문제라면 조는 원동기를 몰아 본 경험이 없다는 것 정도?! 하지만 한적한 섬이니까 이 기회에 한번 배워 보기로 했다. 작은 섬이라 한 바퀴를 도는데 반나절이면 충분했다. 작은 폭포 근처엔 큰 나무에 매달린 로프가 있어서 타잔처럼 다이빙을 하기도 하고, 억수같이 쏟아지는 소나기를 뚫고 달리기도 하면서 시키호르 구석구석을 누볐다. 딱히 대단할 건 없는 섬이지만 그 한적함이, 우리만 이방인인 것 같은 자유로움이 즐거웠다.
하지만 사고는 꼭 이럴 때 터지는 법. 오토바이 뒷좌석에 처음 앉아보는 내가 머플러에 종아리 화상을 입고 말았다. 오토바이에 대해 모르는 내가 머플러 커버가 있는지 없는지, 이런 걸 알리가 없었다. 얼마나 고온이었던지 상처에는 즉각적으로 물집이 잡혔다. 살짝 걱정은 되었지만 시키호르에서의 시간을 망치긴 싫어서 크게 아픈 티 내지 않고 여행을 마쳤다.
세부로 돌아와서, 한국인 의사 선생님이 있다는 병원을 찾았다. 내가 진료를 볼 땐 한국인 의사가 없고 필리피나 의사가 있었는데, 화상 물집의 껍데기를 싹 다 떼어내는 것이다. 한국에선 보통 물집을 그대로 두던데... 잘못된 치료가 아닌가 싶어서 걱정이 되었지만 이미 물집은 제거된 상태. 찝찝한 마음에 검색을 해보니 한국에선 화상 물집은 그대로 두는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화상은 제법 새끼손가락 만했고, 흉터가 남을 건 당연해 보였다. 치료를 잘 받아야 흉터가 덜 질 텐데, 뭔가 틀어진 것 같아서 너무 속이 상했다. 이대로는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그 병원을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한국인 의사가 자리에 있었다. 이만저만해서 속이 상해서 왔다. 잘못 치료한 거 아니냐,라고 했더니 그분이 자세히 설명을 해주신다. 한국이랑 필리핀은 기후가 달라서 화상 치료법이 다른 게 맞다고, 필리핀은 한국보다 훨씬 덥고 습한 나라여서 화상 물집을 그대로 두면 덧날 확률이 훨씬 높다고 한다. 그래서 물집을 제거해 버리는 게 맞다고... 그렇게 설명을 듣고 나니 이번엔 내가 괜히 미안해졌다. 애꿎은 필리피나 의사에게 화를 낼뻔했던 것. 여튼 몇 년이 지난 지금, 화상흉터는 걱정했던 것보단 꽤 희미해졌고, 세부섬 모양처럼 길쭉하게 남아있다. 마녀들의 섬이라는 비키 말을 무시해서 벌 받은 걸까-
하지만 조가 거기서 오토바이 타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큰일 날뻔했다. 여행하면서 오토바이를 타야 할 도시들이 꽤 많았던 것. 화상과 맞바꾼 서방님의 라이딩 스킬! 역시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다. 그땐 다시 한국에 돌아가서 치료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심각했는데,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 좋았던 일만 기억이 난다.
불안한 일상
어학원 필리피나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자주 주의를 주곤 했다. 어학원 밖으로 나설 땐 스마트폰도 꺼내보지 말고, 비싸 보이는 카메라도 들고 다니지 말라고... 강도의 표적이 될 거란 말이었다. 비단 외국인에게 국한된 게 아니었다. 본인들도 스마트폰은 숨겨놓고 대외적으로 전화를 받는 핸드폰은 아주 낡고 오래된 걸 가지고 다녔다. 이것 하나만 봐도 나머지 치안은 알만했다. 필리핀은 총기 소지가 가능한 나라였다. 그래서인지 마약, 강도, 살인 등의 강력범죄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우리도 여행하면서 정말 위험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몇몇 도시중 하나가 세부였다. 가로등도 없는 컴컴한 동네, 쓰레기 가득한 뒷골목을 돌 때면 약에 취한 중독자가 금방이라도 총을 들이댈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한국 관광객들이 머무는 막탄의 리조트 촌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매일매일 일상적으로 위협을 느끼는 건 상당히 피곤했다.
우리가 필리핀에 있던 당시 세부는 대통령 선거 직전이었다. 두테르테가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는데, 국제사회의 여론은 엇갈렸다. 강압적인 지도 스타일로 인해 인권 침해의 우려가 있다고. 하지만 세부에 머물면서, 또 필리핀 국민들의 치안에 대한 피로감을 보면서. 어쩌면 지금으로썬 두테르테처럼 강력한 리더가 폭력을 근절시키는 게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그걸 바라는 필리핀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두테르테가 당선되고 나서, 우려했던 대로 좋지 않은 소식도 많이 들려왔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두테르테 치하의 필리핀에는 가볼 수가 없었다. 지금 세부의 뒷골목은 어떤 모습일까. 강력한 리더의 실행력이 성공했을지 실패했을지 나도 참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