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폴리 아 되>
<조커: 폴리 아 되>(2024)의 전작인 <조커>(2019)는 개봉 당시 글을 따로 할애해 가면서까지 비판했던 영화다. 그만큼 그 영화는 나에게 선동적이고 위험하며 과격하게 다가왔고, 그렇게 영화를 받아들인 관객은 비단 본인뿐만이 아니었다. 당시에도 영화는 많은 논쟁을 촉발했으며, 영화 속 폭력의 묘사 방식-모방 범죄에 대한 우려, 그리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표현-들에 대해 수많은 담론이 야기되었다. 그리고 영화 <조커>(2019)는 실제로 인셀(Incels-연애를 하고 싶지만 못하는 남자들을 칭하는 신조어)들에게 일종의 자신들을 대변하는 밈-으로 자리 잡았다. 해외의 상황까지는 상세히 알지 못하겠으나, 최소한 한국에서는 그렇게 보인다. 한국의 젊은 남성층이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고 있으면, 누군가가 행복하게 연애를 하는 내용의 글 또는 사진, 또는 매력적인 남성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여성의 카카오톡 메시지- 등의 소위 말하는 '인싸들의 기만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글의 댓글에는 십중팔구 조커(아서 플렉)가 웃고 있는 사진이나 움짤(짧은 동영상)이 올라오고는 한다. 별다른 생각 없이 지나갈 수도 있는 글이지만, 영화에서 조커가 지니는 맥락을 상기해 본다면 이 댓글은 상당히 섬찟해진다. 영화 속에서 이성 관계에 외로움을 느끼는 조커는 같은 층의 친절하게 대해준 여성과 연애하는 망상 속에 빠지고, 실제로 그 집에 무단침입까지 행하기 때문이다. 과도한 해석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나에게 이것은 단순 농담 또는 유머로 치부하기 힘들다. 어쨌든 영화 <조커>(2019) 속 조커라는 캐릭터는 실제로 그보다 더 복잡한 층위의 맥락을 지니고 있는 캐릭터였음에도,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이미 일종의 밈, 또는 상징과 같은 존재로 기능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 점에서 우리가 영화 <조커>(2019)에서 우려했던 점은 이미 현실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현실 얘기는 이쯤 하고 영화 얘기로 돌아가자. 어째서 이번 영화 얘기는 시작도 하지 않고 전작에 대해서만 주야장천 늘어놓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것은 이번 <조커: 폴리 아 되>(2024)가 전작이 촉발한 사회적 담론과 다양한 비판, 그리고 현실에 미친 영향까지를 아울러서 이번 영화의 내러티브로 내재화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영화를 이야기할 때는 전작의 영향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조커: 폴리 아 되>(2024)는 전작과 다르게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채택했다. 전작의 우중충하고 진중한, 현실적인 톤을 생각했을 때 이 뮤지컬이라는 전환은 상당히 당혹스럽게 다가온다. 그러나 전작이 받았던 주요한 비판 중 하나가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현실의 폭력을 조장한다'였다는 것을 상기하면, 뮤지컬이라는 '비현실적 장르'의 채택(여기서 비현실적이라는 것은, 이야기하다가 중간에 노래 부르는 등의 장르적 문법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말이다-참고로 필자는 이런 요소 때문에 뮤지컬을 좋아한다)은 현실과 거리를 두는 일종의 소격 효과를 의도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기획부터 어느 정도 전작에 대한 비판의 수용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영화가 전작에 대한 비판을 수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바라보면, 자칫하면 혼란스럽게 다가오는 영화의 태도나 내러티브가 조금 분명하게 다가온다. 영화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법정 씬은 전작이 촉발했던 다양한 담론들이 대결하는 결투장과도 같다. 예를 들어서, 아서 플렉과 조커는 서로 다른 인격이라며, 아서 플렉은 정신질환자이기 때문에 무죄다라는 주장을 펴던-그를 보호하기 위함이었지만 역설적으로 모욕을 주었던- 변호사는 아서 플렉에 의해 해고, 퇴장당한다. 이를 통해 영화는 아서 플렉(조커)에게 정신분열증은 없었고, 그것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것이 아님-최소한 그런 의도로 표현한 영화가 아님-을 소명하며, 동시에 전작이 "정신병을 범죄의 원인인 것처럼 호도한다"는 비판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어서 영화의 큰 변곡점이 되는 장면을 들여다보자. 직접 자기 변론을 행하던 아서는 전작에서 유일하게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던, 그 이유로 살려주었던 개리가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고, 극심한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자 처음으로 혼란스러워한다. 거기에 더해, 자신이 재판에서 했던 발언이 수용소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가깝게 지내던 동료 수감자가 간수들에게 폭행당해 사망하는 일로 이어진다. 이 두 비극적 사건은 모두 '조커'가 의도한 일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영화 <조커>(2019)가 현실에 미친 영향 또한, 감독 본인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감독의 말마따나, 그 영화는 인셀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는 결단코 아니었기 때문에 [1]. 그렇지만 이미 '조커'라는 캐릭터는 그들의 심벌이 되어버렸다. 영화가 현실에 의도치 않은 영향을 미쳤을 때, 창작자는 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이번 영화는 그 질문에서부터 시작된 것처럼 보인다.
이제 영화 속에서, 아서 플렉은 자신의 범죄 행각을 영웅 '조커'의 반동적 행위로 떠받들던 대중들과, 그들을 선동하던 본인의 행적을 되돌아본다(감독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조커: 폴리 아 되>(2024)의 법정 시퀀스와 대중들을 선동하는 아서 플렉의 모습은 도널드 트럼프의 재판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1]). 영화는 전작이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관객들에게 다가가지 않았는지, 현실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는지, 더 좋은 방법은 없었을 지에 대해 고민한다. 그리고 그 결과, 법정에서의 "당신들이 말하는 '조커'는 없다, '아서 플렉' 개인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발언으로 이어진다. 조커의 퇴장. 이제 실망한 할리(레이디 가가 분)는 청중석을 떠나게 된다. 마찬가지로 전작에서 '조커'의 서사에 감정적으로 이입하고 공감했던 관객들도 '조커'가 아니라 '아서 플렉'임을 천명하는 이 영화에 실망한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이킬 수는 없다. 했던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으며, 이미 상영된 영화를 없던 것으로 만들 수도 없다. 그렇기에 영화는 더욱 과격한 방식을 채택한다. 전날 조커가 법정에서 "날려버리고 싶다"라고 말했기에, 실제로 법정에는 폭탄 테러가 벌어진다. 조커의 추종자들에게 구조당하지만 그들의 모습에 두려움과 당혹감을 느끼고 그들에게서 도망치는 아서. 더 이상 그 자리에 '조커'는 없으며, 그저 아서 플렉 개인만이 있을 뿐이다. 이제 아서는 진심으로 사랑했던 할리를 찾아간다. 그러나 할리가 사랑하던 대상은 아서 플렉이 아닌, 광기 어린 조커였을 따름. 결국 아서는 할리에게 버려진다. 마찬가지로, 영화는 전작을 사랑하던 관객들에게 두려움을 느껴 멀리하고, 그 결과 실망한 그들에게 버림받는다.
굳이 이렇게까지 과격하게 이야기해야만 했을까? 모르겠다. 감독 토드 필립스와 주연 호아킨 피닉스는 자신들의 영화가 의도와 다른 상태로 남아서 이야기되는 것을 원치 않았을지도. 근거 없는 과대해석이라고 치부해도 할 말 없지만, 그들은 인셀과 대안우파의 급증-그리고 이로 인해 촉발된 폭력 사태(2021년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에 대해 일정 부분 책임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관객들을 부정하는 미디어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 영화를 마주한 사람들이 주로 언급하는 것이 게임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2019) 인 것을 보면, 역시나 전작을 좋아하던 관객들은 '이 영화가 자신들을 공격한다'라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전작을 부정하는 시리즈가 무슨 의미가 있냐며 <스타워즈 에피소드 8: 라스트 제다이>(2018)을 언급하는 사람들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미디어는 결국 현실과 상호작용을 할 때에서야 예술로서 거듭날 수 있는 법이다. 단순히 전작의 성취와 흥행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들의 영화가 현실에 미친 영향을 고민하고, 그 결과와 비판을 모두 받아들이며, 그 모든 과정을 영화의 내러티브 자체에 녹여낸 이번 영화야말로 진정한 '후속작'이라 칭할 만하다. 전달하는 방식이 상당히 과격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겠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 영화는 단순히 전작을 부정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전작을 오해하고 추종하던 관객들을 부정하는 영화일 뿐이다.
[1] Brent Lang, Todd Phillips Tells All on Making 'Joker 2': Musical Numbers, Method Acting and Joaquin Phoenix's Broadway Dream That Started It All, Variety, Aug 20, 2024. https://variety.com/2024/film/features/todd-phillips-joker-2-movie-interview-123611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