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테크] 7편 민간이 운영하는 미디어아트 전시장의 현주소
[아트테크] 7편 빛의 벙커, 아르떼뮤지엄, 노형 슈퍼마켙, 뮤지엄 원
민간이 운영하는 미디어아트 전시장의 현주소
최근 몇 년간 미디어아트 시장은 급성장했다. 캔버스를 벗어난 벽이나 바닥 등 다양한 공간을 도화지로 사용하는 미디어아트가 관심을 끌고 있다. 미디어아트는 메타버스와 NFT의 기술적 성장과 더불어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이번 연재로 미디어아트를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전시 공간과 그 공간 속 작가들의 이야기를 다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미디어아트가 일상의 공간으로 스며들었다. 서울 시민이 많이 찾는 서울 광화문광장은 오후 8시마다 미디어아트 전시장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최근 재개장한 광화문에 미디어파사드가 새롭게 선보였다. 미디어 파사드는 ‘미디어’(Media)와 건축물 외면의 가장 중심을 가리키는 ‘파사드’(Facade)의 합성어다. 건물 내·외부 벽면을 스크린 삼아 LED 조명을 비춰 영상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세종문화회관의 전면인 체임버홀 벽면에 길이 44m, 높이 11m의 대형 와이드 파사드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우측 벽면에는 길이 13m, 높이 11m의 대형 와이드 파사드가 설치되었다. 모두 빔프로젝터를 투사하는 방식이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외벽의 광화 벽화와 세종문화회관 앞의 해치마당 진입부에는 길이 53m, 높이 최대 3.25m의 대형 LED 패널 미디어월이 설치되었다. 밝기는 5만 안시(ANSI)로 세계 최고 수준의 사양이다. 세종문화회관 외벽에는 이이남, 이경동, 유민하, 서의정, 박윤주 등의 작가가 미디어 파사드 영상을 9월 15일까지 전시했다. 리모델링 중인 KT 광화문 WEST사옥에는 공사 가림막을 설치해 초대형 스크린이 된다. KT 사옥 외벽에서의 전시는 1년간 진행된다. 이로써 일상에서 미디어아트를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미디어아트는 사립 전시장에서 어떻게 첫발을 내딛게 되었을까? 민간에서는 한국 최초의 미디어아트센터이자 디지털아트 전문기관인 아트센터 나비가 1999년 개관했다. 20년 넘게 국제적인 미디어아트의 허브로 운영되고 있다. 아트센터 나비는 해외의 미디어아트를 알림과 동시에 국내의 미디어 작가들을 발굴했다. 심포지엄과 워크숍 등으로 다양한 미디어아트 활동을 펼쳤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일상과 미디어, 미디어와 예술, 일상에서 미디어아트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아트센터 나비의 핵심 미션에 대해 “최신 기술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창작을 지원해 새로운 가능성을 품고 있는 창의적 표현을 키우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공유되며 새로운 사회적 운동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오늘날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민간 전시장은 비교적 최근인 2018년 이후로 생겼다. 빛의 벙커, 아르떼뮤지엄, 노형 슈퍼마켙, 뮤지엄 원 등 사립이 운영하는 미디어아트 전시장의 현주소를 알아보자. 이 중 3곳은 제주도에 있다. 제주도는 관광 산업으로 특화된 지역이기에 미디어아트 전시와 맞아 떨어진 점도 있다.
◇ 프랑스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관, 빛의 벙커
‘빛의 벙커’(Bunker de Lumieres)는 옛 국가기간 통신 시설이었던 오래된 벙커를 프랑스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관으로 개조해 만든 공간이다. 프랑스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디지털 기술에 담아 만든 몰입형 미디어아트는 2012년 프랑스에서 첫선을 보였다. 프랑스 레보드 프로방스의 ‘빛의 채석장’, 파리 ‘빛의 아틀리에’에서만 볼 수 있었던 전시를 프랑스 이외 국가에서는 최초로 한국의 제주도에서 구현해 낸 것이 빛의 벙커이다.
빛의 벙커가 있던 장소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구축한 해저 광케이블을 관리하기 위해 1990년에 국가 기간 통신 시설로 준공한 비밀 벙커가 있었다. 2012년까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가 2013년 벙커의 역할이 사라지면서 민영화되어 다양한 공연과 전시장으로 활용되었다. ㈜티모넷은 2015년부터 전시 공간을 찾기 위해 전국 답사를 하다가 2017년 이 공간을 찾았다. 벙커는 철거, 내부 공사, 콘텐츠 제작 및 사업 마케팅 준비를 진행한 지 1년 만인 2018년 11월 16일 ‘클림트’ 개관전을 열었다.
이곳은 1층 단층 건물로 가로 100m, 세로 50m, 높이 10m, 내부 높이 5.5m 정도다. 축구장 절반 정도 크기인 약 2,975㎡(900평)이다. 내부에는 넓이 1m²(0.3평)의 기둥 27개가 나란히 있어 깊이감을 한층 더해주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서양 명화로 구성된 상설 전시실과 국내 근현대 및 전통미술로 구성된 기획전시 등 2개 공간을 갖췄다. 전기·통신·수도·소방 등 여러 기반 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데다 자연 공기 순환 방식을 이용해 연중 16도 내외의 쾌적한 온도를 유지한다. 원래 벙커로 설계되었던 만큼, 외부의 빛과 소리가 완전히 차단되어 방음이 완벽해서 관람객이 전시를 관람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빛의 벙커는 개장 이후 3년 만에 2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모으며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장으로 화제가 되었다. ㈜티모넷은 빛의 벙커 성공에 힘입어 1963년 현대적인 무대 시설을 갖춘 최초의 극장으로 개관한 워커힐 대극장을 개조해 2022년 몰입형 전시 공간인 ‘빛의 시어터’를 열었다. 빛의 벙커, 빛의 시어터 둘 다 유휴 공간을 미디어아트 전시장으로 활용해 도시 재생의 일환으로 재탄생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 전 세계로 확장하는 아르떼뮤지엄
‘아르떼뮤지엄’(ARTE MUSEUM)은 ㈜디스트릭트코리아가 운영하는 몰입형 미디어아트 상설 전시관이다. 2020년 9월 아르떼뮤지엄 제주를 시작으로 2021년 8월 전남 여수, 12월 강원 강릉에서 각각 문을 열었다. 영원한 자연(Eternal Nature)을 주제로 자연 속 소재의 작품을 각 지역의 특색과 문화유산에 맞게 미디어아트로 전시한다. 제주는 ‘아일랜드’(Island), 여수는 ‘오션’(Ocean), 강릉은 ‘밸리’(Valley)를 주요 콘셉트로 한다.
아르떼뮤지엄 제주는 과거 스피커 제조 공장으로 사용되던 공간을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관으로 개조했다. 규모는 약 4,628㎡(1,400평), 최대 높이 10m로 미디어아트 전시장에 알맞은 웅장한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해변, 파도, 폭포, 꽃, 달, 숲 등 11개의 전시 공간으로 다양한 미디어아트를 경험할 수 있다. 아르떼뮤지엄은 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거리를 없애고 관람객의 몰입감을 한껏 높이기 위해 아나몰픽, 퍼스펙티브 뷰, 프로젝션 매핑, 홀로그램, AR(증강현실), VR(가상현실) 등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 기술을 동원했다.
아르떼뮤지엄 부산은 2023년 상반기 개관을 앞두고 있다. 이곳에서는 국내 최초로 NFT 기반의 크립토 아트 전시관인 ‘아르떼 메타’를 선보일 예정이다. 디스트릭트코리아는 아르떼뮤지엄을 2025년까지 싱가포르 등을 포함해 세계 각 도시에 30여 개점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디스트릭트코리아는 올해 홍콩 지점을 열고, 중국 청두에서 개관하는 계획도 세워놨다. 2023년 상반기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와 뉴욕 그리고 중국 베이징에 진출한다. 몰입형 미디어아트가 한국이 최초는 아니지만, 아르떼뮤지엄은 기술을 확장해 전 세계적으로 나아가고 있는 긍정적인 사례다.
◇ 스토리가 있는 전시장, 노형슈퍼마켙
‘노형수퍼마켙’은 제주시 노형로에 있었던 오래된 서커스장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미디어아트 전시장이다. 이곳은 자연을 주제로 한 기존 미디어아트 전시장과는 다르게 스토리가 있는 특색 있는 전시장이다. 면적은 약 4천㎡(1,210평), 최대 높이는 20m(6층 건물 높이)로 2021년 6월 22일 개관했다. 노형수퍼마켙은 사적공간 운영사업자 ㈜제주미르, 프로젝터 시공설계 전문기업 ㈜가이드삼정, 차세대 실감형 콘텐츠 전문기업 ㈜닷밀 등이 손잡아 만든 이머시브마켓이 운영한다.
이곳은 ‘1981년 노형수퍼마켙에 열린 문이 제주의 모든 색을 빨아들여, 그 빨아들인 색깔들은 수퍼마켙 중심에 모여 세상에 볼 수 없는 신비로운 광경을 만들어 냈다’라는 설정을 갖추고 있다. 복고 감성을 살리기 위해 과거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수퍼마켙’이란 오자 표기를 그대로 차용했다. 건물 외관을 검은색으로 칠하고 전시장 입구부터 색이 사라진 듯한 흑백으로 디자인해서 전시장에 대한 호기심을 심어준다.
‘노형수퍼마켙 프리쇼’, ‘베롱베롱’, ‘뭉테구름’, ‘와랑와랑’, ‘곱을락’ 등 총 5개 전시공간이 있다. 메인 영상 공간인 ‘와랑와랑’은 8가지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기존 서커스장이었던 공간감을 살려 20m 높이에서 주는 영상미가 돋보인다. 흑백의 건물과 대비되는 다채롭고 화려한 색채의 빛으로 관람객들에게 즐거움을 전해준다. 노형수퍼마켙처럼 특색 있는 미디어아트 전시장의 역할은 중요하다. 다양성의 측면에서도 그렇고, 색다른 전시장이 있어야 관람객들 입장에서도 골라 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 8천 만개의 LED 발광 다이오드가 설치된 뮤지엄 원
‘뮤지엄 원’(Museum 1)은 2019년 8월 14일 부산 해운대 센텀시티 월석아트홀에 개관한 부산 최초의 미디어아트 전시장이다. ‘뮤지엄 다’로 개관했다가 2022년 3월 뮤지엄 원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재개관했다. 예술 전문 기획사 쿤스트원이 운영한다. 이곳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미디어 작품을 만날 수 있으며, 예술과 4차 산업 시대의 첨단과학이 결합해 창조해낸 새로운 공간이다.
규모는 2300m²(695.75평)로 복층 형태이다. 1층 상설 전시실, 2층 기획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다른 미디어아트 전시장이 빔프로젝터로 벽면이나 바닥에 영상을 투사하는 것과는 달리, 뮤지엄 원의 826.4m²(250평) 규모의 상설 전시장은 바닥, 천장, 벽면에 약 8천 만개의 LED 발광 다이오드가 설치되어 있다. 그 위로 작품이 구현되는데 그야말로 빛의 향연이라고 할 정도로 눈이 부시다. 그래서 관람객들은 작품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초현실적인 경험을 겪는다.
뮤지엄 원은 개관전 ‘완전한 세상’을 비롯해 ‘수퍼 네이처’, ‘치유의 기술’ 등의 전시를 열었다. 장승효, 김용민, 강동우, 고지인 등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미디어아트 작가들이 전시에 참여한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앞서 빛의 벙커, 아르떼뮤지엄, 노형슈퍼마켙 등의 전시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작가거나 자체 영상팀에 의해 제작된 작품이 상영된다면 뮤지엄 원에서는 미술 작가들이 참여한 작품을 전시한다는 점이 다르다. 빔프로젝터로 단순히 영상을 투사하는 것이 아닌 예술가들이 만든 진짜 미디어아트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외에도 국내 미디어아트 전시장으로는 그라운드시소 명동, 홍대입구 띠아트, 뚝섬미술관 등이 있다. 독자들에게 국내의 사립 미디어아트 전시장을 통해 현재 미디어아트의 인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길 바란다. 미디어아트에 대한 이해도가 한층 더 높아진 시간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은 기쁨이겠다.
△ 글=이상미
프랑스 파리 고등미술연구원 예술경영학과에서 수학했고, 파리 고등실천연구원에서 서양예술사학과 고고학으로 석사 학위, 파리 고등사회과학연구원에서 미학으로 박사과정을 밟았다. 이상아트(주) 대표이사이자 유럽문화예술콘텐츠연구소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미술계 현장에서의 활발한 활동 경험과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
※ 본 칼럼은 이데일리에 '[아트테크] 이상미의 미디어아트'로 연재되었습니다.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886006632521784&mediaCodeNo=257&OutLnkCh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