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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훈 Feb 14. 2021

시간이 흘러가는 걸 추억으로 덮는다

 '헉... 몸무게가 2kg이나 더 쪘네!!'

 코로나로 인해 많은 가족들이 모일 수 없는 명절이었다. 평소 같으면 외할머니 댁에서 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데, 올해는 5인 이상 집합 금지로 인해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혼자서 조용한 설 연휴를 보낼 것 같아 그동안 못 봤던 책도 읽고, 잠시 미루던 일도 할 생각이었다. 혼자서 보내는 설 연휴라도 연휴인지라, 독서가 그리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오랫동안 책을 읽던 가닥이 있어 나름 집중하며 책을 읽고 있는데, 아버지가 집으로 놀러 오신다고 연락을 했다. 사실 전날 오랫동안 못 봤던 친구들을 만나 술을 섞어 마셔서인지, 속이 별로 좋지 않았다. 맛없는 맥주를 억지로 마셨는데, 맥주의 맛이 신선하지 않았다. 맥주통 청소를 제대로 안 하는 가게일 거라고 나름 추론을 해보았다. 다시는 그 가게에서 맥주는 먹지 않을 거라는 확신은 생겼다. 

 '우리 아버지 배고픈 건 못 참는 성격인데... 나랑 또 소맥 한잔 하자고 하실 것 같은데...'



 

 "삐삐 삑 삐삐 삑..."

 마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셨다. 내가 설음식을 맛봐야 한다고 어머니가 이것저것 싸주셨다. 

 "아빠, 설음식에 소주 한잔 할까?"

 "소맥이 좋지 않겠니?"

 내 예상대로 아버지가 소맥을 원하셨다. 사실 속 안 좋을 때 술을 마시는 건 속을 더 악화시킬 거라는 걸 잘 아는데, 그보다는 아버지의 기분을 맞춰드리고 싶었다. 마트에 가서 병맥주 몇 병과 소주 한 병과 과자 몇 봉지를 샀다. 

 "뭘 그렇게 많이 사 왔어?"

 마트에서 산 물품들을 큰 박스에 담아 갔더니 아버지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물으셨다. 

 "박스에 담아서 그래. 얼마 안 돼."

 예상대로 아버지는 내가 말아 준 소맥 몇 잔을 금방 들이켰다. 맥주가 금방 동이 났다. 




 "맥주 더 마실 거야?"

 먹을 것과 술에 있어서 아버지는 생각해보다 행동이 빨랐다. 오른손을 크게 휘저으신다던지, 아니면 마트에 함께 갈 생각으로 몸을 일으키곤 했다. 이번에는 손을 크게 휘저으신다는 것보다 더 적극적인 의사 표현으로 몸을 일으키셨고, 나와 함께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아마 내가 처음에 사 온 술의 양이 마음에 들 지 않았나 보다. 

 "아들, 피쳐로 사, 피쳐가 양이 많아."

 "두 개면 될까?"

  "좋지!"

 그렇게 아버지와 술을 마시며 하루를 지새웠다. 다음 날 눈을 떴는데, 다행히도 술이 내 속을 해치지 않았다. 술에도 인성이 있어 아버지와 보낸 내 시간을 엉망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뒤척이며, 잠을 깨는데 아버지가 어머니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훈이랑 내가 준 육수에 떡만둣국 끓여먹어."

 내심 떡만둣국이 많이 먹고 싶었다. 역시 어머니는 어머니였다. 

 "아빠, 순댓국에 막걸리 마실 거지?"

 "그렇지!"

 나는 떡만둣국을 원했지만, 아버지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술 마신 다음 날, 아버지는 순댓국에 막걸리를 드시는 걸 좋아하신다. 그럴 때 행복하다고 종종 표현도 하신다. 

 "여기, 막걸리 한 병 더 주세요."

 행복하게 취하는 아버지에게 술 한잔 따라 드릴 때 아버지의 기대에 찬 모습을 보는 게 나는 좋다. 그게 내게도 행복이다. 그동안 쌓였던 잡념도 그 앞에서 풀어지곤 한다.




 "아빠, 하룻밤 더 자고 갈 거지?"

 "내일 아침에 가지 뭐."

 나는 하루만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고 일을 할 예정이었는데, 이번에도 언제나 그랬듯 마음이 약해졌다. 어김없이 일을 미루고 아버지와의 시간을 먼저 챙겼다.

 "아빠가, 올해 나이가 예순다섯인가?

 "어른은 만으로 하는 거야 이놈아. 예순넷! 확실히 시간 가는 게 빨라."

 아버지와 술을 마시며 대화를 하다 보면, 항상 나이를 묻는 게 버릇이 되었다. 내 눈에는 여전히 젊은 아버지인데, 시간이 아버지를 데려가는 속도는 내 생각보다 빠르다. 

 "아빠, 내가 원래 오늘 일하려고 했는데 아빠 보면 마음이 약해져서 이렇게 노는 거야."

 "알지. 아빠 회사 동료들이 우리 아들 얘기하면, 아빠 부러워해."

 "아빠, 올봄에 바다 가서 조개도 먹자."

 "어디 좋은 데 있어?"

 "응, 한적하고 좋은 데 있어."

 "아빠는 좋지"


 

 흘러가는 시간을 막을 수는 없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많은 걸 해주고 싶은 순간에도 시간이 간다. 많은 추억을 쌓는 것이 흘러가는 시간을 덮지는 못하더라도, 그래도 덮으려 한다. 추억이 쌓이면 지나갈 시간들이 잠시 멈출 거라는 상상을 한다. 과거로 돌아가 지금을 더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려고 한다. 비록, 그런 시간에 소맥이 함께 하니 몸무게는 늘 늘지만, 추억살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도 내게 주어진 축복이라고 믿는다. 

 물론 그렇게 믿으면서 불안한 감은 있다. 다행히도 나는 운동을 열심히 하겠다는 긍정적인 다짐도 지속적으로 새겨 놓는다. 그 다짐을 실천하려 오늘 운동을 했다. 관건은 내일도 운동을 하느냐의 여부다. 나는 운동을 할 거라고 믿고 싶다. 

 '아... 소맥이 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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