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훈 Jun 17. 2021

"애쓰지 말고 보여줘요."

“여보, 책을 읽으면 밥이 나와요, 쌀이 나와요?”

“책을 읽으면, 밥이 나오지도 쌀이 나오지도 않아. 그런데, 책을 읽으면 밥이 맛있어”     

 위 대화는 《여덟 단어》의 저자 박웅현이 아내와 식사를 하며 나눈 대화이다. 나는 저 말이 참 좋다. 

 ‘책을 읽으면 밥이 맛있다’는 말.

 독서를 하면 인생이 다르게 보인다. 주변의 사람들이 소중해 지고, 저녁에 당연하게 지는 노을이 고맙게 느껴진다. 내가 겪는 불안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우리가 만약 ‘불안’을 느끼지 못 한다면 ‘사람들은 저녁에 맛있는 밥을 끊임 없이 먹다 배가 터져 죽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불안은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삶을 보게 한다. ‘불안’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존재하지만, 그 개념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내가 사업을 시작하기 전, 집에서 하루 종일 책만 읽은 적이 있다. 어머니는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노냐”고 한 마디 했다. 처음에는 ‘노냐’는 말이 듣기 싫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이 맞는 말 같았다. 책은 나에게 ‘놀이’다. 나는 책을 읽으며 즐겁다. 배우고 싶은 것을 많이 담고 있고, 친구들과 대화를 통해선 느낄 수 없는 다양한 삶을 보여준다. 나는 이런 즐거움을 사람들에게도 제공하고 싶었다.   

 나는 4년 넘게 독서모임을 운영한 적이 있다. 매주 한 권씩 정해진 책을 읽고 모임에 온 사람들과 두 시간 토론을 했다. 토론이 끝난 후 사람들의 소감을 물으면 대부분 이런 말을 했다. 

 “저는 회사 동료나 친구들과도 이런 얘기를 안 해요. 그런데 제가 모르는 사람들과 다양한 질문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충격이에요.” 

책을 읽고 다양한 질문에 답변을 하며 자신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책은 스스로 다양한 질문을 하게 한다. 그 질문에 답을 하다 보면 나를 돌아볼 수 있다.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보면 주인공이 자신의 기억이 사실은 개인의 편견으로 왜곡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장면이 나온다. 20대 시절, 주인공은 자신의 옛 여자친구와 사귀는 친한 친구에게 정중한 말투로 조언하는 형식의 편지를 쓴다. 그러나, 시간이 한참 지나 옛 여자친구에게 그 편지를 다시 받아 보니 편지 안에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비난과 악담이 가득했다. 주인공은 큰 충격을 받는다. 자신의 성격을 생각했을 때 본인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없는 성격이라 단정한 것이다. 자신만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자신이 그 사람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준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내 기억이 주인공처럼 왜곡되어 편견을 가진 적이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 역시 그런 적이 있다. 사업 초기에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까’에 대해 고민한 적이 많다. 일은 열심히 하는데 눈 앞에 성과가 보이지 않으니 답답했다. 나는 그저 ‘잘 할 수 있어’라며 스스로를 위로할 뿐이었다. 사업을 하며 집에서 일을 하는 날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어머니와 밥을 먹는 날도 많아졌다. 하루는 어머니와 밥을 먹는데, 나를 보며 어머니가 이렇게 물었다. 

 “요즘 바쁘냐”

 ‘......’

 나는 ‘요즘 바쁘냐’는 말이 듣기 싫었다. 그것은 내 해석으론 ‘돈 많이 안 벌고 뭐하고 있냐’는 말로 들렸다. 그 뒤로 어머니와 밥을 먹는 시간이 조금씩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어머니가 그런 의도로 말한 지는 물어보지도 않은 채 어머니와 대화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적게 가졌다. 책을 읽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는 내 기억이 왜곡되어 어머니에 대한 편견을 가진 것이었다. 어머니는 내 건강을 위해서 현미가 들어간 밥부터 나물 반찬 까지 여러 가지를 신경 써준다. 그리고 내가 요즘 어떻게 지내는 지 궁금하여 물어본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어머니의 의도와 상관 없이 내 기분대로 상황을 해석하여 어머니와 밥 먹는 시간을 부담스럽게 느낀 것이다. 혹시라도 내가 돈을 못 벌더라도 어머니가 나를 사랑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그것은 말하지 않아도 안다. 지금은 사업이 잘 되고 있지만, 나중에 내가 하는 사업이 큰 위기에 처하더라도 가장 먼저 도와주실 분은 어머니이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하며 내 어리석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뒤로 난 어머니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하는 식사 자리도 편해졌고, 웃으며 대화도 자주 하고 있다. 이런 일상이 참 행복하다. 

 나는 책을 읽으며 인간의 마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보면 주인공이 자신을 믿던 친구의 약점을 이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둘 다 한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는데, 예기치 않게 친구가 먼저 ‘자신이 그 여자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주인공에게 고백한 것이다. 처음에 주인공은 상황을 지켜보기로 한다. 그런데, 여자와 친구가 잘 될 것 같으니 친구의 약점을 이용하기로 결심한다. 친구는 도를 닦는 것에 깊게 빠져 있었고 스스로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여자를 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랬던 사람이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친구는 이런 상황이 한편으로는 좋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괴롭기도 하여 주인공에게 상담도 많이 했었다. 주인공은 자신이 어떤 말을 하면 친구가 여자를 멀리할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정신적으로 향상심(向上心)이 없는 자는 바보라네”


 향상심은 도를 닦기 위해서는 금욕, 성욕 등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친구가 다른 욕구에 빠져 정신적 수양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음’을 지적한 것이다. 친구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바보임을 인정한다. 그 뒤로 친구가 깊은 고민에 빠진 사이에 주인공은 여자를 차지한다. 몇 일 뒤 친구는 자살하여 목을 매단 채로 발견되고, 이 일로 주인공은 큰 충격을 받는다. 자신은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친구의 마음을 이용했다. 친구는 자신에게 솔직하게 얘기했는데, 자신은 친구에게 솔직하지 않았다. 주인공은 마지막까지 거짓된 모습으로 친구를 대했다. 그는 친구에게 자신도 그 여자를 좋아한다고 말할 기회가 많았는데, 친구에게 그렇게 말하는 게 스스로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택한 결론이 자신은 약해 보이지 않으면서 친구를 위하는 척 조언한 것이다. 주인공은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의 민낯을 바라본다. 자신의 마음은 스스로가 생각하는 만큼 선했던 것이 아니었다. 자신도 평소에 스스로가 비난했던 악한 사람들처럼 본인의 이익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친구의 자살 이후 주인공은 평생을 그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산다.  


 ‘나의 마음은 스스로 생각하는 만큼 선한 것일까. 나 또한 악한 사람이지는 않을까’

 나는 《마음》을 읽고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봤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났을 때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기 보다는, 선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 한다. 생각해 보면 내가 어떤 사람과 싸우고 그 상황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때 나는 늘 선한 쪽에 있으려고 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상대방이 악이 된다. 예전 직장 선배가 자신의 기분이 안 좋다는 이유로 나를 이유 없이 갈굴 때, 나도 똑같이 그를 짓밟고 싶었다. 가끔은 그 선배만 빼놓고 다른 동료들과 차를 마신 적도 있다. ‘나는 여전히 선한 사람일 수 있을까’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내 마음에도 악한 마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 뒤로 나는 ‘나’를 돌아보고 행동하는 습관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거짓된 모습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솔직한 모습을 보이려고 한다. 남들의 실수를 함부로 비난하지 않는다. 나 또한 같은 실수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늘 조심한다. 


 나는 책을 읽으며 솔직한 내 민낯에 다가가고 있다. 여전히 스스로 ‘선’이 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악’으로 만들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책을 통해 발견한 내 모습을 돌아본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으며 ‘나’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솔직한 자신의 민낯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 전에 자신의 모습을 돌아봤으면 좋겠다. ‘말’과 ‘행동’을 조심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한다. 

 내 민낯을 솔직히 인정할 때 우리는 진정한 ‘나’로 바로 설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시간이 흘러가는 걸 추억으로 덮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