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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트라슈 Dec 21. 2020

끝이 좋아야한다는 잔인한 말

예외도 있다

연말은 어디나 들뜨는 분위기다. 올해는 예년만 못하지만 그래도 어김없이 찾아온 크리스마스며, (랜선) 송년회, 송별회 등으로 들뜬 마음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마치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각종 sns에는 바이럴 마케팅 못지않은 격언, 명언 글귀들이 예쁜 옷을 입고 올라온다. 하나하나 넘겨보던 중.. 문득 불편한 글들이 있었다.


시작보다 끝이 좋아야 한다

모든 일은 마무리가 좋아야 한다

좋은 인연이란 시작이 좋은 인연이 아닌 끝이 좋은 인연이다


예전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글들이 나를 붙잡았다. 그리고 얼마 전에 읽었던 '김지은입니다' '나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기로 했다' 책들과, 비슷한 일을 겪고 직장을 떠난 동료가 떠올랐다.


순간 짜 맞춘 듯 같은 말을 하고 있는 이 문장들이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런 글 때문에

침묵을 강요당했을까.

속으로 울분을 삼켰을까.

자신을 탓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속에 불타는 고구마를 얹은 것 마냥 천불이 났다.


물론 이 말들은 좋은 의도로 적혔을 것이다. 다만 그걸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 상황에 사용한 일부 몰지각하고 양심 없는 사람들 때문에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일 뿐.


살색도 살색 자체가 잘못이 아니라, '살색'이라 명명된 것은 모두 연주황색을 뗘야 한다는 사람들의 획일적인 생각이 문제인 것처럼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 말들은 사람이 사람답게 대우받는 경우에만 가능한 말이다. 위력으로, 강압적으로 다른 사람의 인권을 짓밟은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말들이 파렴치한 사람들의 입에서 주로 언급되는 건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제대로 어른이 되려면 모든 상황을 입체적으로 보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런 여건이 안되면 다양한 책이라도 읽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쳐 놓은 장막 안에서 트루먼쇼를 찍지 않을 수 있다.  





끝이 좋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끝이 좋아서는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당신,

더 이상 자책하지 말아라.


같은 상황에 처할뻔한 많은 사람들을 대신 해

침묵하지 않은 당신의 용기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출처. 문학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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