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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Mar 08. 2022

연애일기 7. 발전 지향적 커플

서로 물들며 나아가는 두 개의 삶

연애일기 7. 발전 지향적 커플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내가 되자!' 발전 지향적 기조를 가진 두 명의 인간이 만나 연애를 한다. 둘의 삶과 연애는 어떻게 될까? '지, 덕, 체'의 모든 면에서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매일 분투하는 둘은 연애도 단연 열심히 한다. 각자의 삶도 열심히, 연애도 열심히. 쉽지 않지만 역량이 된다면, 그리고 노력한다면 가능하다. 이것은 '갓생' 사는 두 인간의 연애 이야기. 너무 자랑질 같아 속이 꼬인다면 뒤로 가기를, 배울 점이나 흥미로운 면이 있을 거라 예상한다면 일독을 권한다.


  지극히 부지런하고 발전 지향적인 성격의 두 사람이 만나 연애를 하면, 어떻게 될까? 둘의 성향은 지극히 외향적이며 에너지가 넘치는 편이고, 시간 낭비를 용납하지 못하며, 자기 관리와 자기 발전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며 스스로에게 엄격한 편이다. 각자의 성격차는 분명히 있지만, 둘의 기본적인 삶의 기조가 같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한다'는 기조를 바탕으로 삶을 다소 가열차고 피곤하게 사는 편인 두 남녀.

  좋게 표현하자면 삶에 대한 태도가 '발전 지향적'이며 '부지런한' 현대인의 전형이지만, 비판적으로 보자면 '스스로를 가만히 못 놔두는' '피곤한' 성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둘은 심지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버릇, 아니 능력, 혹은 못된 습관(어떻게 표현해도 맞다)도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쉬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 챌린지나 다름없다. 마음을 먹고 시간을 정해 실천해야 하는 챌린지.

  나는 항상 궁금했었다. 나와 비슷한 양상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연인으로 만나면 어떻게 될까? 각자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각자 발전을 도모하기도 바쁜 두 사람이 만나 연애까지 시간을 내고 체력을 내어 열심히, 잘할 수 있을까?(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연애도 '제대로 할 게 아니면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연애를 할 거라면 '제대로' 해야 한다. 시간과 에너지를 충분히 기울여서.)

  나와 비슷한 정도로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하거나 발전을 원하고 도모하고 다양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간을 쪼개 수행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그런 사람이 드물거니와 그런 사람은 나와 마찬가지로 일상이 바쁘고 스케줄이 꽉 차있으며, 자연스럽게 만나든 소개를 받든 그런 사람이 마법 같이 나타났는데 심지어 외모나 다른 조건, 면모까지 내 이상형일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개월 전 그런 사람이 내 앞에 짠, 하고 나타난 거다. 심지어, 외모를 비롯한 많은 요소가 나의 마음에 들었고 상대방도 적극적으로 나에게 다가왔는데 (대화를 나누고 데이트를 하면서 어느 정도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라는 것은 눈치 챘지만) 더 깊이 알고 보니 그는 어쩌면 나보다 더한 발전 지향적 인간이었다. 나는 나만큼 요일별로 지정 스케줄(대부분 여가가 아닌 운동, 공부, 사이드 프로젝트 등의 자기 발전을 위한 시간들이다)이 정해져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매일 헬스장에서 근력 운동을 하거나 강변이나 공원에서 조깅을 하고, 따로 경제 공부를 하는 시간, 독서를 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고 틈틈이 기타를 치며 일주일에 한 번씩 비대면 영어 회화 수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실제로 연애를 하며 들여다본 그의 일상은 놀라울 정도로 다채롭게 꽉 차있었다. 나의 연인은 소방공무원, 그것도 화재진압팀 대원이다. 매일 스케줄 근무를 하고 가끔 고강도의 출동이나 잦은 야간 출동을 몇 번씩이나 하면서 그런 다양한 자기 계발 활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수행하는 체력에 감탄하고, 그러면서도 언제나 자기반성을 하고 더 나은 삶에 대해 고민하는 정신력에 또 한 번 감탄했다.

  나의 경우 주 2-3회의 필라테스 수업 참여, 일주일에 한 번 기타 레슨을 받고 집에서 틈틈이 기타를 치며, 사이드 프로젝트로 직장인밴드를 꾸려 리더로 활동하며 일주일에 한 번은 밴드 멤버들과 연습실에서 만나 합주를 하고 노래를 한다. 몇 달에 한 번 버스킹이나 대관 공연을 하고, 일주일에 1, 2회 이상 블로그 혹은 브런치에 글을 쓰거나 따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원고를 쓴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고등학교 교사의 업무 강도는 결코 수월하지 않다. 업무가 몰려 집중적으로 야근을 하는 시즌에는 잠시 평소의 루틴을 중단해야 하지만, 대체로 나의 루틴은 체력이 허락하는 이상 어떻게든 지속된다. 나는 나의 체력과 에너지, 정신력에 감탄하며 살았다. 나보다 더한(?) 인간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비슷한 인간 둘이 만나 사랑을 하면 서로의 삶과 태도에 대한 존경의 마음은 고맙게도 자연스레 샘솟는다. 사랑의 필수 전제 조건, '존경'의 마음. 각자의 이상형 목록에 그 어렵다는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음은 당연하다.

  한층 더 놀라운 점은 우리가 연애까지 성향대로 아주 열심히, 제대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가능한 일인지 궁금했었다. 바쁜 두 사람이 만나 연애까지 마음을 아끼지 않으며(이것은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지 않는다는 말과 동일한 말이다.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고 자발적으로 바쁜 인간들은 이 귀중한 자원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런데 그게 되더라고.

  둘 다 그렇게 열심히 살면서, 자기 스케줄이 있으면서 연애할 시간이 있냐고? 당연히 있다. 하려고 하면 전쟁통에도 연애를 한다고들 하지 않나. 그 시간을 내기 위해 각자의 시간을 더욱 압축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부지런함과 효율성은 상승한다. 더 바빠지고 더 피곤해질 수는 있지만 그것은 각자의 효율성 극대화와 체력, 컨디션 유지에 달렸다. 삐끗하면 어느 하나는 놓치는 거다. 뭐, 삐끗할 수 있지만 연애를 삐끗할 수는 없지. 나의 연인은 이제 피곤하면 고강도의 운동은 쉰다. 두통이 오면 바로 약을 먹고 눕는다. 나는 체력 조절을 위해 유산소 운동을 오히려 늘리고 있다. 남자친구가 선물한 새 러닝화를 신고 지구력 강화와 튼튼한 심장을 위해 나는 달린다. 나는 혼자 휴식할 때 즐겨하던 넷플릭스 시청을 줄인다. 넷플릭스 시리즈는 이제 애인과 함께 시청한다. 혼자 보면 배신이다. 가끔 정말 잘 맞고 재밌는 시리즈를 만났을 땐 통화하며 "나 사실 오늘 시간이 남아서 혼자서도 볼 수 있어, 그런데 참고 있어. 내 애정이 느껴져?" 하며 깔깔 웃는다. 각자의 여가와 휴식 시간을 줄여 서로를 만나기 때문에, 만나서 쉬는 것이 아주 중요해졌다. 이로서 우리는 더 바쁘게 사는 동시에 더 잘 쉴 수 있는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을 우리는 종종 함께 해낸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 아닌가, 적정한 타이밍에 잘 쉬는 것. 지속 가능한 발전과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서.

  

  각자의 삶은 자연스레 서로의 색으로 물들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최근 남자친구는 에리히 프롬의 미공개 글을 엮은 신간을 구매해서 읽기 시작했고, 그 영향으로 나는 대학 때 읽다가 말았던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구매해서 읽기 시작했다. 각자 에리히 프롬의 사상을 탐구하면서 대화 속에 간간히 인용하곤 하는데, 마치 인문학에 심취한 학도들 같아서 꽤 재밌다. 나는 예전에는 잘 알 수 없었던 <사랑의 기술>의 내용이 이제는 절절히 이해되고 와닿는 것을 느끼고 사상이 확장되는 쾌감과 즐거움을 느끼며 독서가 얼마나 즐거운 것이었는지 새삼 깨닫는다.

  이렇게 서로 다채로운 발전의 양상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연애, 너무 반갑고 소중하다. 함께 카페에 가서 조용히 각자 독서를 하며 쉬다 오는 데이트를 해보고 싶다고 애인은 말했었다. 조만간 햇살이 들어오는 포근한 카페 한 구석에서 나란히 혹은 마주 보고 앉아 각자 손에 든 에리히 프롬의 책을 읽다가 간간히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돌아오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무언들 어딘들 어떠하랴, 이렇게 우리가 함께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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