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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Mar 25. 2022

연애일기 8. 각자의 자가격리

대역병의 시대, 코로나19 감염 후기

연애일기 8. 각자의 자가격리

대역병의 시대, 결국 트렌드(?)를 따르는 마냥 우리도 나란히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말았다. 확진자 의무 자가격리에 의해 돌연 주어진 각자의 7일의 시간. 하루 차이를 두고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 격리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무슨 생각들을 하고 어떤 대화들을 나누었나.



  지긋지긋한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함께한 지 어느덧 햇수로 3년 차, 국내에 창궐하기 시작한 지는 꼬박 2년이 지났다. 2020년 2월에 국내에 퍼지기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러서는 전파력이 어마어마한 '오미크론'이 기승을 부리면서 국내 일일 확진자 수는 기록적인 숫자를 갱신하고 있다. 


  감염자 수가 마구 치솟던 시기, 남자친구와 나는 하루 차이로 자가진단키트 양성을 확인하고 pcr 검사를 받고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자체적인 추적 및 역학조사(?) 결과로는 남자친구는 직장에서, 나는 남자친구에게서 옮은 것이 거의 확실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친구의 평소 동선이라고는 직장, 데이트(나를 만나는 일), 헬스장 외에는 없다시피 했고 나 또한 최근의 동선 양상이 그랬다. 게다가 확진을 받기 직전에 함께 외출한 일정을 빼고는 주로 서로의 집에서 데이트를 했으며, 외출하던 날도 방역 수칙을 철저히 준수한 상황에서 마스크를 내리지 않았다. 사전투표 데이트를 하던 날 남자친구는 이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원래 기관지가 약해서 감기 증세가 자주 있었기 때문에 미리 구해둔 자가진단 키트로 여러 번 검사를 해보았지만 결과는 계속 음성이었다. 당시에 증상이 없던 나도 덩달아 검사를 해보았지만 음성이 나왔다. 남자친구의 직장에는 확진으로 격리된 사람이 이미 몇 명 있었다. 나는 주변에 확진을 받은 동료는 아직 없었지만 매주 월요일마다 자가진단 키트를 실시하고 출근하고 있었다.

  자가진단 키트를 여러 번 해 보고 음성이 떠서 어리둥절하던 다음날 남자친구는 몸 상태가 악화되어 직장에서 배부한 자가진단 키트를 다시 실시했고 그 결과 하루 차이로 두 줄(양성)이 나왔다. 야간 근무 중에 즉각 귀가 조치된 남자친구는 다음날 아침 pcr검사를 받았고, 그날부터 나에게도 가벼운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출근 전에 두 번이나 실시해 본 자가진단 키트 결과는 음성이었으나 예감이 좋지 않아 직장에서 그 누구와도 근거리에서 말을 섞지 않고 마스크를 내리지 않고 빠르게 모든 일을 처리한 후에 황급히 집에 와서 침대에 몸을 뉘었다. 순식간에 증세는 심각해져서 목이 아파 내내 뒤척이며 자다 일어난 아침, 몸 상태는 전날에 비해 이미 악화되어 있었고 혹시나 싶어 목구멍에 면봉을 문질러서 실시해 본 자가진단 키트 검사 결과는 두 줄, 양성이었다.

  남자친구의 상태가 악화되는 과정과 자가진단 키트 결과가 나오는 과정을 이미 보아 알고 있었기에 놀랍지는 않았지만, 그 이후부터가 문제였다. 남자친구는 이미 자택에서 자가격리에 돌입했고, 나는 그 길로 양성 결과가 나온 자가진단 키트를 싸들고 pcr검사를 받으러 홀로 험난한 여정을 떠났다. 직장에 연락을 하고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부서원들과 부장님께 자가진단 키트를 한 번 더 실시해볼 것을 권유했다. pcr 검사 대기줄에서 아직 쌀쌀한 바람을 느끼며 얼떨떨하게 서있던 순간이 생생하다. 이상하리만치 현실감이 없는 동시에 생생하던 순간이었다. 여태껏 잘 버텨왔는데, 이제 확진 통보를 받겠거니 생각을 하니 허무하기도 하고 그저 여태껏 내 몸에 들인 백신이 효과가 있길, 내 몸이 바이러스에 무너지지 않기만 바랄 뿐이었다. 검사 직후 귀가해서 점점 예사롭지 않게 악화되는 상태를 느끼며 이대로 직장과도, 남자친구와도 그 누구와도, 일주일 동안 생이별이라는 걸 직감했다. 대신 내 고양이와는 일주일 내내 붙어있을 수 있다는 점에 안도하며 약국에서 미리 사둔 약을 먹고 일주일간 홀로 집에 갇혀 있으려면 무엇이, 어떤 마음이 필요한지 생각했다.

  목 상태는 점점 심각해져 갔다. 남자친구는 이미 목소리가 나간 상태였고 기침을 심하게 하고 있었다. 격리하는 일주일 내내 나의 목 상태도 점점 처참한 상태로 향했고 격리 기간 중 반 정도는 목소리를 완전히 잃은 상태였기에 누군가와 살가운 통화를 할 수도 없었다. 말 그대로 철저한 격리와 고요의 상태였다.

  "000님의 pcr 검사 결과 양성(확진)입니다." 당연한 결과였지만, pcr 검사 다음날 막상 문자로 확진 통보를 받으니 이게 실화라니 싶은 심정이었다. 눈을 질끈 감고 앞으로의 시간을 그려보았다. 다행히도 직장에서 같은 실을 쓰는 동료들은 아무도 증상이 없었고 격리가 끝난 지금까지도 나로 인해 확진 판정을 받거나 아픈 사람은 없었다. 안 아프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는데 남자친구도 나도 꽤 심하게 앓았다. 나는 처음 며칠은 점점 부어오고 불쾌하게 아파오는 목 상태에 더해 미열, 오한 때문에 때아닌 추위에 떨었다. 약을 먹고 몸살 증세는 점차 나아졌지만 격리 기간 내내 침을 삼키는 것조차 고통스러울 만큼 목이 아파서 수프를 대량으로 주문해서 매일 먹었다. 뜨겁거나 조금이라도 자극이 되는 음식은 삼킬 수가 없었고, 목뿐만 아니라 연결된 기관지 부위가 귀 안쪽까지 포함해서 모두 생소하게 고통스러웠다. 처음 며칠은 숨을 쉴 때 폐부에 흉통도 느껴져서 공포스럽기도 했다. 그런 증상은 며칠 만에 사라졌지만, 악명 높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게 실감 나는 순간들이었다.  

  하루 세끼를 어떻게든 챙겨 먹고 약을 세끼 꼬박 챙겨 먹는 것이 매일의 미션이었다. 약국 약으로는 안 되는 것 같아서 원격 전화진료를 신청하고 약을 처방받아 거대한 약봉투를 배달받았다. 일주일치 처방약이 들어있었다. 튼튼한 편이고 약 먹는 걸 좋아하지 않는 지라 3일 치 제조약도 오롯이 다 먹어본 적이 별로 없는 나는 그 약을 꼬박꼬박 다 챙겨 먹었다. 모든 것이 생소한 사건이었고 생각보다 몸은 빨리 나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일주일은 생각보다 너무 짧았다. 사실 확진되기 전에 직장에서 너무 피곤할 때면 '일주일 동안 집에서 쉴 수 있다면 좋을 지도?' 하는 생각을 한 번쯤 안 해봤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쉼'이 아닌 '투병'의 과정이었던 일주일은 바이러스와 싸우면서 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게 지났고(시간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결국 7일의 격리 후에 다 회복되지도 않은 채로 다시 꾸역꾸역 출근해야 했다. 일주일 동안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다가 다시 일과를 재생해야 했기에 어떻게든 다시 힘을 내야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건 나보다 며칠 앞서 심하게 앓은 남자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격리 중에도, 각자의 격리가 끝난 후에도 이렇게까지 피로하고 힘들 수 있는 거냐며 걱정과 한탄을 했다.

  

  역병 감염 때문에 돌연 경험하게 된 일주일의 생이별은 우리 각자에게, 우리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돌아보면, 일단 동시에 각자의 자가격리를 하게 된 것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닌지 모르겠다. 같은 경험을 동시에 공유하고 서로 위로할 수 있었지만, 만약 둘 중 하나가 위급한 상황이거나 아주 급하게 필요한 게 있을 때(물론 퀵이나 빠른 배송 시스템을 활용해 뭐든 제때 받을 수 있는 현대사회지만) 서로가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누구 하나가 위중한 상태가 되거나 새벽배송 같은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급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고, 각자의 시간은 각자의 공간에서 잔잔하고 고요하게 흘렀다.

  우리는 각자의 집에서 삶을 꾸리는 1인가구이지만, 쉬는 날에는 사실상 거의 서로의 집에서 번갈아가며 지냈기에 어쩌면 동시에 확진을 받고 여건이 허락했다면 함께 자가격리를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 사람이 상태가 심각해져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상황을 알 수도, 도우러 갈 수도 없는 상황에 1인가구가 각자 확진을 받고 각자 홀로 격리된 상황은 위태롭고 걱정스러운 상황이라는 걸 이번에 실감했다. 서로가 매일 연락을 유지하는 1인가구이기에 망정이지, 1인가구의 취약함을 이번에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나는 뼈저리게 느꼈다. 가족이 방 밖에서 북적북적 움직이고 언제든 도움을 주고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사람과 완전히 혼자 자가 치료를 하고 격리를 해야 하는 사람의 상황은 너무 달랐다. 우리는 이미 한 사람이 먼저 격리를 하고 있던 상태였고 각자의 집에서 각자의 7일을 보내기로 이미 당연하게 마음먹었기에, 서로 연락을 유지하면서 서로의 상태를 묻고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격리 기간을 지냈다. 남자친구가 다 나아갈 때쯤 나의 목 상태는 너무 처참했고 우리는 며칠을 통화도 하지 못한 채로 하루 몇 시간 간격으로 카톡으로 안부를 전할 뿐이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쓸데없거나 웃긴 말들, 일상의 소소한 사진들, 때로는 진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7일을 보냈다.

  

  잘 쉬지 못하는 성격이던 우리 둘에게 이번 격리는 어쩌면 기회였고 각자에게 다시없을 소중한 시간이었다. 언제 7일 동안이나 바깥에 나가지도 못한 채 홀로 집안에만 철저하게 격리되어 살겠는가. 쉬는 날이면 무조건 서로를 만나 휴식도 함께하던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시간을 묵묵히 보냈다. 이상하게도 너무 답답하다던지 보고 싶어 미치겠다던지 하는 감정은 들지 않았다. 각자의 공간에서 고요하고 단단한 시간을, 바이러스와 싸우며 시시콜콜하게 혹은 보람 있게 혹은 휴식을 취하며 잘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무증상이었다면 좋았으련만, 둘 다 바이러스와 싸우느라 면역 체계가 열일을 해서 체력적으로 많이 지쳤다. 그래도 꼼짝없이 휴식을 취할 수 있음은, 너무 열심히 살며 언제나 피곤하던 우리에게 잠시 멈출 기회를 준, 어쩌면 조금은 괜찮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혼자의 시간을 보내며 혼자서 노후를 보낸다는 것은 이런 일상을 매일, 길게 보내는 것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격리를 하는 동안 나는 내내 몸이 어딘가 불편했고, 약을 계속 챙겨 먹어야 했고, 살기 위해 귀찮아도 어떻게든 끼니를 먹고,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격리되어 있었고, 하루하루는 느리고 고요하면서도 빠르게, 무료하고 별일 없이 잔잔하게 흘러갔다. 노후를 홀로 보낸다는 것은 정확히 그런 삶을 적응한 채로 지내는 일일 것이다. 7일의 격리 동안, 노후의 삶을 젊은 몸으로 미리 체험하는 기분이었다. 생소하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삶을 위해 더 단단하고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나는 나의 일상과 혼자의 시간을 잘 꾸리는 사람이고, 결혼을 한다고 해도 노후에 반드시 혼자가 아니라는 법은 없기 때문에, 젊음이 지나고도 길게 이어질 삶을 단단하고 건강하게 꾸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되새겼다.  


  남자친구도 아마 주어진 7일 동안 나처럼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했을 것이다. 격리를 하는 동안 하루하루를 보내며 들었던 사소하거나 깊은 생각들을 모두 공유한 건 아니지만, 남자친구와 카톡으로 이런저런 생각들도 나누었다. 남자친구는 항상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둘이서 함께 사는 게 맞다'라고 이야기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했지만, 격리를 하면서 '지금처럼 아픈 상태로는 둘이 붙어있었다면(가령 우리가 동거를 했거나 동시에 확진을 받아서 함께 격리를 했다면) 오히려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도 했다. 내 몸이 너무 힘들어서 잔뜩 예민하고 작은 일도 수행하는 것이 버거웠고 몸이 축축 늘어졌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오롯이 돌볼 수 없는, 둘 다 아프고 예민한 상태에서 부대꼈다면, 힘들고 불편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함께 산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나는 홀로 나를 돌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아파도, 몸이 불편하고 무기력해도, 함께라면 무조건 좋을까. 지금 함께 있었다면, 서로가 서로를 배려할 수 없는 상황에 우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는 어땠을까. 상대방은 어땠을까. 물론 이런 생각들은 남자친구에게 전하지는 않았다. 서로 몸 상태가 어떤지,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루 중에 간간히 나누는 것으로 우리는 서로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표현했다. 각자 격리를 하면서 그렇게 매일 서로의 상태를 체크하고 일상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축복이었다. 우리가 우리라서, 완전히 섬처럼 홀로였던 게 아니라서.

  

  나는 더 오래 힘들었지만 증상이 나보다 며칠 앞서 나타났던 남자친구는 격리가 끝나기 전 증상들이 거의 다 완화되었고, 서로의 격리가 해제된 날 새벽에 남자친구는 격리기간 중에 직접 구운 디저트를 싸들고 우리 집에 깜짝 방문을 해서 선물이라며 내게 건넸다. 일주일 넘게 이어진 갑작스러운 생이별 끝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시 서로를 마주했을 때 그 반가움과 안도감, 익숙함이 주는 기쁨이란. 대역병의 시대, 우리는 각자의 자가격리를 함께 겪었다. 이 또한 돌아보면 추억이고 시대 유물적인 경험이리라. 생소하고, 고통스럽고, 이상한 동시에 어쩐지 초연하게 견딜 수 있었던, 우리가 함께 겪은 팬데믹. 나는 아직 몸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하루빨리 회복해서 다시 평소의 체력을 되찾고 달리기를 하고 생기 있는 나날을 보내고 싶다. 활기 넘치는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기다려온 좋은 계절을 즐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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