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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Jul 24. 2022

비혼주의, 흔들리다 (3)

함께라면 어떤 것도 상관없나요

연애일기 번외편: 비혼주의, 흔들리다 (3)

함께라면 어떤 것도 상관없나요,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 정말 그런 걸까



우린 긴 춤을 추고 있어
자꾸 내가 발을 밟아
고운 너의 그 두 발이 멍이 들잖아
난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해

이 춤을 멈추고 싶지 않아
그럴수록 맘이 바빠
급한 나의 발걸음은 자꾸 박자를 놓치는 걸
자꾸만 떨리는 너의 두 손

함께라면 어떤 것도 상관없나요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 정말 그런 걸까
함께라는 건 그렇게 쉽지 않은데
그만큼 그만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브로콜리너마저, '춤')



나의 비혼주의는 그렇게 흔들리다 무너졌다. 이 사람이라면 함께해도 괜찮을 것 같아서, 함께하고 싶어서.

나는 낡은 신념 따위를 저버린 선택을, 나의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사실 나는 내내 흔들리고 있었다. 이 사람과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어서. 어쩌면 남들이 이룩한 그 '평범함'이, 이 사람과 함께라면 내게도 '특별함'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나의 신념을 무너뜨려 그를, 우리를 되찾고 한동안 더할 수 없이 행복했다.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기분이 지속되었다. 그가 '우리'를 쉽게 버리려고 했다는 생각은 금세 지워졌다. 나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의심을 지우고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그도 노력했다. 사실 그는 한순간도 내게 의심이 들게 하지 않았다. 한결같이 다정했고 따뜻했다. 나는 행복했고 그러므로 후회하지 않았다. 나의 생의 역사가 담긴 신념이 무너진 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닐 만큼, 우리 관계를 지키는 것이 내게 중요했다. 나는 언제나 단단하고 확고하며 고집이 센 사람이었지만, 나의 경험과 논리에 기반해서 쌓아온 신념을 바꿔본 적 없었지만, 그와 함께일 때만큼은, 그와 함께하기 위해서, 유연하고 쉽게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신념이, 그리하여 삶이 통째로 바뀐대도 상관없었다. 사랑을 할 거라면 제대로 하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그토록 멀리하던 '결혼'이라는 의식(ceremony), 관례를 거치는 일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아무렇지 않게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 사람과 '함께 사는 일'은 쾌적하며 즐겁고 기쁠 것 같았다. 그는 그런 믿음을 줄 만한 사람이었다.


헤어지자는 갑작스러운 통보와 짧은 이별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싸우고 다툰 적도 없었다. 딱 한 번 싸웠을 땐 그가 아픈데도 일을 나가고 무리를 하려고 해서 내가 잔소리를 하다가 싸웠다. 다툼이라기보다 '걱정에서 비롯된 사랑싸움'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는 그런, 지금 돌아보면 달달하기까지 한 다툼뿐이었다. 그는 싸움이 일어날만한 소지를 좀처럼 만들지 않는 사람이었고, 나 또한 그랬다.(아니면 사소한 부분들에 대해 그가 나보다 더 어른이라 참아주었는지도?)


우리 관계의 이슈가 안정화되고 연애를 이어가는 동안 우리 각자의 삶에도 스스로 감당해야 하고 고민해야 하고 결단해야 하는 이슈들이 있었다. 결혼을 하면 그런 각자의 이슈, 결코 단순하지 않고 얽히고설켜 대부분 거대한 금전적인 문제 혹은 가족과의 문제, 삶의 양상을 좌우하는 문제로 귀결되는 이슈들을 함께 풀어나가야 할 터였다. 그는 나의 다양한 문제들을 함께 의논하기에 충분히 어른스럽고 의지가 되는 남자였다. 그는 나에게 많은 해결책을 제시해주었다. 내가 든든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그에게 충분히 그런 사람이 되어주지 못해서 우리는 무너진 걸까. 한여름을 함께 지내며, 본격적으로 앞으로의 삶과 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현실적인 문제들을 거론하면서부터 우리는 조금씩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아니면, 여름이 깊어가기 전, 나의 모친께서 나의 남자친구를 만나보고 싶어 해서 내가 식사 자리를 마련했을 때, 내 남자친구가 나의 엄마를 위해 내가 여태껏 받아본 적 없는 커다랗고 화사한 꽃다발을 준비해서 내 엄마를 마주했을 때, 화기애애하던 그 식사 자리에서 나의 엄마가 내가 가진 자산을 거론하며 남자친구에게 부담을 주고,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꺼내었을 때, 우리가 아직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은 시점에, 엄마가 결혼을 서두를 것을 권유하며 단도직입적인 이야기를 꺼냈던 그때부터, 모든 것이 잘못된 걸까. 아니다, 30대 성인들의 만남과 헤어짐을 단순히 모친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우리가 삐그덕 대던 모든 과정에서 내가 미숙했고, 우리는 계속 다퉜고, 서로의 간극을 자꾸 확대 해석하거나 좁힐 수 없는 것으로 여기고, 그러다 나도 한 번쯤은 헤어질 결심을 품었고, 상대방도 결국 한 번 더 뒤돌아설 결심을 내린 것이 우리의 헤어짐의 이유다.


서로 너무 사랑해서, 함께하는 것이 좋아서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그래서 서로의 부모님을 뵙기로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의논하는 과정을 밟기로 했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 사랑을 했는지 여부가 흐려질 만큼 많이 다투고, 실망을 하고, 협상을 해보고, 협상이 결렬되고, 서로에게 상처를 냈다. 그러나 다툰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많은 설득과 협상이 이루어졌으나, 나는 성급하게 모든 것을 한 번에 협상하려고 했으며, 그것은 노력하던 서로를 더 지치게 만들 뿐이었고, 상대방은 그 협상과 다툼의 과정을 견디지 못했고, 그러므로 완전히 돌아설 결심을 했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였다. 나는 그와 마지막으로 다툰 그 날에도 그와 함께 있고 싶었다. 다퉜지만 서로 체온을 나누며 안고 있고 싶었다. 그동안 잠을 잘 못잤다는 그가 간만에 내 곁에서 푹 자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혼자 가고 싶어 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자는 말을 남기고. 나는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는 일이 두려웠다. 이별하자는 말 같았다. 나는 지금 더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고, 이야기는 결국 그의 이별 통보로 이어졌다.


결혼을 준비하며 말로 다 못할 만큼 싸우고 다투고 울며불며 고생하고 양보하고 타협하는 과정을 겪었다는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익히 들어 알고 있다. 대부분의 커플이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에 없던 수많은 전투(?)를 겪는다는 이야기를. 전투의 결말은 그럼에도 서로 함께하기로 하여 끌어안고 결혼에 성공하거나, 혹은 서로 상처만 잔뜩 입어 만신창이인 채로 파투가 나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도, 그에 관한 수많은 '썰'도 알고 있다. 주변에 결혼을 준비하는 이들에게서 직접 보고 들은 '썰'도 많기도 하다. 우리의 결말은, 나와 그의 결말은, 본경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경기의 전략을 논하고 몸을 푸는 과정에서(연애 과정이 예선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예선을 넘어 본선에 진입했지만 본선을 제대로 겪어보지도 않고 끝난 경우다) 삐그덕 대며 서로에게 상처만 내다가, 앞으로의 험난함을 지레짐작하고 그만두었다는 결말이다.
정말 허망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럼에도 계속하기를 원했지만, 내가 더 양보할 수 있고 상대에게 제안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더 논해보고자 했지만, 우리가 싸우고 이별을 말했지만 그럼에도 다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없겠냐는 나의 제안과 시도는 무참히 거절당했다. 나는 함께 가기에 버거운 사람이 되어있었다. 결혼의 과정을 예선, 본선이 있는 '경기'에 비유하자면 우리는 이 결혼이라는 경기에 임하며 '같은 편'으로서 뛰놀며 앞으로의 여정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우리는 서로 상처를 내고 싸워야 할 적이 아니니까. 결혼이라는 과정에 장애물은 있을 수 있어도, 그걸 적으로 돌릴 필요까진 없으니까. 우리는 함께 오래 달려야 하는 마라톤에 같은 팀으로 참여하기로 한 것뿐이니까. 장애물이 없는 결혼이 제일 좋겠지만, 장애물이라고 한다면 보통, 양가 부모님의 반대나 탐탁지 않아하는 태도, 혹은 각자의 자존심(사랑의 마음보다 본인의 자존심이 더 중요한 사람은 생각보다 많으니까), 금전적인 현실의 문제들, 정도가 있지 않을까. 장애물은 뛰어넘으면 되는 건데, 그런데 혹시 각자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잔뜩 차고 있다면, 그렇게 느낀다면, 그걸 나누어 매고 달려야 한다면 어떨까.


그는 나에게 딸린 자산과, 그에 대한 나의 부모님의 기대를, 우리가 서로 맞지 않아 함께 협상하고 헤쳐나가야 할 다양한 문제들을, 결혼식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나의 기대를, 우리가 뛰어넘을 수 있는 장애물 혹은 함께 바라보고 고민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발목에 주렁주렁 달린 모래주머니쯤으로 생각하던 것 같다. 나도 그랬다. 나 또한 나의 삶이 이미 너무 무거워서, 남들이 보기엔 배부른 소리겠지만 나의 자산(이라고 쓰고 부채라고 읽는다, 내 아파트는 아직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시간 동안 은행의 것이니까)을 내가 해결해야 할 거대한 문제쯤으로 인식하고, 나의 커리어에 대한 고민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고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있어서, 우리의 문제를 똑바로 보고 균형을 잡지 못했다. 인내심을 갖지 못했다. 오히려 우리가 끝까지 잘 갈 수 있다는 확신을 빠르게 얻고 싶어서, 섣불리 말을 꺼내면 꺼낼수록, 서로의 간극만 확인하게 되어 당황스럽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모든 것에 대해 내 탓을 하고 싶지는 않다. 나도 완벽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기꺼이 나의 자산을 끌고 가는 문제에 함께하기로, 나의 삶에 대한 고민들을 함께하기로 했던 나의 남자친구는, 그 후로 이어지는 논의들(앞으로 결혼을 할 때 드는 비용에 대한 간단한 논의와 앞으로의 삶에 대한 다양한 논의)에서 발생하는 의견의 차이, 언쟁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는 '결혼 전부터 이렇게 싸운다면 그만두는 게 맞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내게 통보했다. 나도 결혼을 진지하게 논하면 생각할 것이 이렇게나 많아진다는 걸 전에는 몰랐다. 그 누구보다 내가 제일 몰랐을 것이다. 단 한 번도 결혼을 전제로 연애한 적도, 살아온 적도 없으니까. 그러나 나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로서 습득한 간접 경험이 있기에, 대부분의 커플이 결혼을 준비할 때 금전적인 문제를 논하는 과정에서(쉽게 말해 돈 문제로) 싸우게 된다는 것, 그리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그 부분을 제외하면 크게 싸울 일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이건 돈과 재산이 있어도, 없어도 마찬가지다. 내 친구는 그랬다. "고소영이랑 장동건도 돈 문제로 싸울 걸, 그 건물을 파네 마네, 사네 마네 하면서." 전적으로 동의하는 말이다. 나와 남자친구가 둘 다 차라리 아무것도 없이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했다면 싸움이 없었을까? 그것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는 각자 충분한 자산을 갖췄음에도 다퉜다.) 그는 '결혼 전에 돈 문제로 싸우는 것은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이라고 했다. 이럴 거면 하지 않는 게 맞다고. 나는 싸움이 두려운 게 아니라 헤어짐이 두려웠지만, 그는 싸움의 과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숨 막혀했다. 그의 말도 어느 정도 맞다. 이런 과정 없이 스무스하게, 모든 가치관과 삶의 방식과 의견이 맞아서 아무 다툼 없이 결혼식장까지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도, 어딘가에는 있겠지. 우리가 그런 사람이 아닐 뿐, 우리가 그럴 수 없을 뿐. 그에게 내가 부담을 지운 것도 맞다. 내 또래의 여자들이 갖지 않은 규모의 자산을 나는 덜컥 가지게 되었고, 내 삶에도 상대방에게도 그것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설령 나의 부모의 도움을 받아 금전적인 부분을 해결한다고 해도, 나의 부모가 나의 결혼 상대에게 가질만한 어떤 기대를 내가 없는 것으로 치부할 수도 없었다. 다만 내가 끝까지 누군가와 함께하기로 한다면, 나의 부모는 순순히 나와 상대방을 인정하고 뒤끝 없이 받아들일 사람들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보다 어쩌면 별 것 아닌 장애물들을, 각자의 삶의 무게, 각자의 발목에 주렁주렁 달린 모래주머니를, 확대 해석하거나 거기에 집중했다. 그래서 우리는 무너졌다. '우리'가 무너지고 '나'와 '그' 각자가 무너졌다. 사실 모르겠다, 그가 무너졌는지는. 어쩌면 그는 더 단단해졌을지도, 홀가분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무너졌다.

가지고 있던 음반에서 가사집을 꺼내어 직접 찍은 사진


"함께라면 어떤 것도 상관없나요." 좋아하는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 '춤'을 내내 들으며 가사를 혼자 읊조렸다. 우린 긴 춤을 추고 있어, 서로의 발을 자꾸 밟고 상처를 냈어, 나는 이 춤을 멈추고 싶지 않았는데, 그럴수록 마음이 바빴어. 그런 생각을 하면 혼자 우는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다. 함께라는 건 그렇게 쉽지 않은데, 그만큼 그만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함께라면 어떤 것도 상관없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를 위해 신념을 무너뜨려 나를 바꾸고, 결혼을 논하는 협상의 과정에서 '어쩌면 우리가 함께 살다 보면 나도 아이를 한 명쯤은 낳고 싶어 질지도 몰라, ' 하고 또 한 번 내 신념을 바꾸는 과정까지 쉽게 거쳤지만, 결국 그랬기 때문에, 결혼을 논했기 때문에, 시작도 하기 전에, 결혼을 논함으로 인해서, 순탄하던 우리의 연애는 곤두박질치고 끝이 났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그 자체다. 억울하다고 해야 할까, 싶다가도 억울할 것도 없다. 우스운 건 막상 결혼을 전제하고 나니, 이런저런 이유들로 오히려 내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는 것이다. 위험신호를 감지했지만, 아직 모든 계절을 함께 지나지 않았지만, 나는 한 번 신념을 바꾼 마당에 다시 흔들리지 않도록 이 모든 것을 빠르게 진행하고 확신을 가지고 싶었다. 신념을 바꾸고 그와 함께하기로 마음을 먹은 김에, 돌이킬 수 없게 만들고 싶었던 걸까. 나는 제대로 하고 싶었다. 지금에 와서야 미쳤었단 말 밖엔 나오지 않지만, 성격이 급하고 뭐든 할 거면 추진력을 가지고 제대로 하는 거 외에는 살아가는 방식을 모르는, 완벽하지 않을 거면 시작을 못하고, 인내심이 부족한 성정의 나는, 결혼이라는 하나의 과정, 우리의 관계와 사랑 속에 거쳐야 할 결혼이라는 하나의 관문을, 빠르게 통과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자꾸 그에게 상처를 냈다. 그도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 내 생각만큼 모든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그건 그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다만 나는 함께라는 게 쉽지 않더라도, 그만하는 것이 더 쉽지 않았다. 쉽지 않아도 함께이고 싶었다. 상대방의 마음도 나와 같았다면 좋았겠지만, 그에게는 나와 함께하는 것보다 그만하는 것이 더 쉬운 일이었다. 나도 그만할 마음을 먹은 적은 있었지만 그 마음을 먼저 입밖에 제대로 꺼내지도 못했고, 그가 붙잡아도 돌아오지 않을 만큼 독하게 결심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만남의 중단을 마침내 단언했을 때, 힘들더라도 함께 가기를 원하는 내 마음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함께라는 건 서로 마음이 일치할 때 가능한 거니까, 함께 춤을 추는 일은 서로 손을 잡고 완성해야 하는 일이니까. 한쪽이 손을 놓고 뒤돌아섰을 때 춤은 깨어지고, 남은 이는 혼자의 춤을 추는 수밖에 없으니까.



'결혼은 사랑의 무덤'이라는 말을, 살아오며 언제 처음으로 접했던가, 20대 중반쯤이었을까.

그 명확한 은유의 언어를 접하기 전부터 나는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해왔다. 결혼은 사랑을 종식시킬 것이라고.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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