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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Jul 24. 2022

비혼주의, 흔들리다 (2)

흔들리고 무너졌어 함께하고 싶어서

연애일기 번외편: 비혼주의, 흔들리다 (2)

흔들리고 무너졌어, 함께하고 싶어서



나의 역사를 거쳐오며 나는 비혼주의자로 살았다.

그리고 나의 오랜 신념을 흔들리게 하는 사람을 만났다.



나의 연애일기의 주인공이 된 그 사람을 만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결혼에 관한 나의 생각을 밝혔다.

나는 당장 몇 년 이내에 결혼 생각이 없고, 사실 비혼주의에 가까운 삶을 살아왔다고.

결혼을 전제로 연애를 해 본 적이 없었다고.
그래서 결혼을 빨리 하고 싶은 생각이라면 나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한다고.

너무 마음에 드는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는 결혼에 대해 여지를 두지 않거나

너무 단호하게 통보하듯 말하지 않기 위해서 애썼다. 어떻게 말할지 몇 번이고 생각했다.

그가 결혼을 빠른 시일 내에 꼭 하고 싶은 사람이라서 내 말을 듣고 한 걸음 물러나

우리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반응을 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적어도 모든 계절을 함께 겪어보고 나서 결혼의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으면 해'.

그렇게 말한 이유는, 한 달쯤 그를 보며 이런 사람이라면 함께 살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성으로서 끌리는 마음에 더해 그의 생활습관, 드러나는 성격의 특징과 센스, 남자 혼자 사는 집이라고 믿기 어려운 말끔하고 정돈된 집, 모던한 인테리어와 확고한 취향, 그 모든 것이 그런 생각의 근거가 되었다. 거의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가 너무 좋으니까 순간순간 스치듯 그런 생각을 했을 뿐, 당장 같이 살고 싶다거나 결혼을 하고 싶다거나 하는 마음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의 결혼에 대한 생각을 밝히긴 해야겠으나 그가 내게서 한 발짝 물러나는 일은 없었으면 했고, 그렇다고 성급하게 그에게 결혼을 전제로 만난다는 확신을 심고 싶지는 않았다. 길게, 적어도 모든 계절을 함께 겪어보고 확신을 가지고 싶었다.


다행히 내 말을 들은 그가 자신은 '주객이 전도된'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좋아서 결혼을 할 수 있지만, 결혼을 하기 위해 만나는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정말 안도했다. 그는 나의 불안을 눈치챘는지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나는 '주객이 전도된' 사람을 많이 보았다. 그리고 그도 그런 사람일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 있었다. 나의 '주'는 '만나서 사랑하는 것, 연애를 하는 것'이며 '객'은 '결혼이라는 제도'인데(사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내게 결혼이라는 제도는 '객' 정도의 위치도 차지하지 못했다. 그냥 안중에 없었다.) '주'가 '결혼(인생의 맹목적 목표)'이며 '객', 그러니까 '주'(결혼)을 위한 '수단'으로 '연애'와 '사람을 만남'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20대 후반에 접어들며 알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그런 삶의 태도는 정말 진절머리 나는 것이었다. 결혼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살아왔지만, 나도 언젠가 정말 같이 살고 싶은, 내 남은 생을 다 함께하고 싶은, 평생을 함께 걸으며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다고 확신이 드는 남자를 만날 수 있을까, 그런 일이 가능하기나 할까(확률이 0%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생각해왔다. 살아가며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사랑을 하고, 그 과정에서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확신이 드는 사람을 만난다면 결혼이라는 제도를 선택할 수도 있는 거지만, 오직 '가정을 이룸', '결혼'을 목적으로 조건을 맞추어 누군가를 만나고, 결혼을 위한 만남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내 삶과 가장 동떨어진 행위이자 가치관이었다. 아무 의미도 낭만도 없는 그런 일에 경주마처럼 맹목적으로 몰두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내 나이가 주변의 '결혼 적령기' 남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나이대(20대 후반)였기 때문에 나는 더더욱 사람을 만나기가 두려워졌다. 그래서 나보다 어린 남자들을 만났다. 그럼으로써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에 갇히지 않고 서로 좋아하는 마음만을 가지고 '연애'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가벼운 마음은 매번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이 잦아들 쯤엔 다툼과 의심이 잦아졌다. 반복되는 만남과 헤어짐에 지치고 회의감이 들었다. 그래 연애는 지옥이구나, 천국의 모습을 하고 다가와 같은 자리에 상처만 계속 남기는 지옥.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지겨운 과정을 멈추기 위해 한 사람에게 안착하는 선택을 하는 걸까.' 하고,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 같다. 결혼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던 것 같다. 20대의 끝자락에.


그러다 우연히 이 사람을 만났을 때, 내 취향에 맞게끔 특별하게 만들어진 사람처럼, 신기할 만큼 내가 좋아하는 요소를 많이 갖춘 이 남자를 만났을 때, 좋아질수록 나는 두려웠다. 나보다 연상의 사람이고, 만날수록 좋아지지만, 내가 서른이나 먹고 연애를 하면서 결혼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면, 이 사람은 뭐라고 할까. 상대에게 나의 의사를 밝히는 것이 처음으로 두려웠다. 그러나 그는 내 말을 듣자마자 주객이 전도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나를 완벽하게 안심시켰다. 먼저 서로 좋아서 만나다가 결혼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게 급하거나 우선의 목적은 아니라고.


안심을 한 나는 내친김에 더 먼 이야기까지 꺼내보았다. 나는 결혼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재로서는 아이는 낳고 싶지 않다고. 그는 아이를 낳는 문제는 전적으로 여자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남자가 어떻게 하자고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나와 생각이 일치했다.


거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나는 안심한 채 대책 없이 이 사람에게 빠져들었다. 정말 대책이 없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 불면증이 심하던 남자친구는 나와 함께 자면 푹 잘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나와 있을 때는 정말 아이처럼 곤히 잤다. 혼자서 제대로 된 끼니를 챙겨 먹는 것에 소질이 없는 나는 그와 있을 때면 언제나 따뜻하고 제대로 된 음식을 먹었다. 나는 아침에 눈을 떠서 사랑하는 사람이 출근 전 차려둔 밥을 먹으며 애정이 담긴 쪽지를 읽고, 그를 위해 집을 정돈하고 집을 나서는 것이 얼마나 포근한 행복인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귀가하는 길에 먼 길을 돌아서 가게 되더라도 근무 중인 그에게 맛있는 커피와 간식을 사다 주고 잠깐 얘기를 나누다가 아쉽게 헤어지는 일이 얼마나 기쁘고 애틋한지 알게 되었다. 평일에 퇴근을 하고 막힌 도로를 애타게 달려 그의 집으로 가면 내가 먹고 싶다고 한 음식을 직접 요리하고 있는 그를 보며, 그 따뜻한 만찬을 함께 즐기며 와인잔을 부딪히고 함께 함박웃음을 짓는 일이, 얼마나 충분하고 기쁜 일인지 알게 되었다. 이전에도 누군가 나에게 밥을 차려주고 요리를 해준 적은 많았지만, 그처럼 일관되게 따뜻하고 세심한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이만큼 좋아했던 사람은 없었다.(다른 이와 연애를 할 때는 너무 애틋하고 소중한 나머지 기록마저 하고 싶어서 '연애일기' 같은 걸 써 본 적도 없으니까.) 내 고양이도 남자친구를 좋아했다. 주말 오후에 품에 마구 파고드는 내 고양이를 사이에 끼고 소파에 앉아 서로 기대어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고, 우리 집 앞 산책로를 걸으며 코 끝에 닿는 바람과 계절을 이야기하고, 함께 시장에 가서 반찬이나 간식거리를 사고 깔깔거리며 돌아다니고, 마트에 가서 함께 장을 보고, 함께 바닷가로 짧은 여행을 떠나고, 연애를 하며 누릴 수 있는 모든 시시콜콜하고 커다란 기쁨을 우리는 함께 누렸다. 우리는 더 좋을 수 없는 연애를 했다.


그럼에도 위기는 있었다. 처음에 내가 가졌던 불안과 두려움이 그대로 적중해서, 더 좋을 수 없는 연애를 이어간 지 4개월쯤 되었을 때 그는 나의 결혼에 대한 가치관과 아이를 낳는 문제에 대한 가치관을 이유로 헤어지고 싶다는 의사를 갑작스레 통보했다. 아무 다툼도 전조도 없었다. 다만 아이 낳는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는 남자친구의 지인 부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남자친구는 왜 그때 내게 그 부부의 이야기를 꺼냈을까?) 나는 결혼을 하더라도 '딩크(Double Income No Kid)'로 살고 싶다는 점을 다시 한번 명료하게 밝혔을 뿐이었다. 다만 그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내가 실수한 게 있었다. 그는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눈치였고 나는 딩크임을 밝혔기 때문에, 대화가 다소 건조하게 이어지자 나는 방어적인 태도로 이렇게 말했었다. "나중에 내가 딩크라는 이유로 나를 떠나도 이해할게. 그렇지만 지금은 안돼." 나는 두려웠다. 아직 우리의 문제로 논의하지도,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그가 섣불리 나에게서 마음을 닫는 일이. 과거에 실제로 내가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낳을 수 없다'라고 말했을 때, 1년을 넘게 문제없이 만났음에도, 아무런 다툼이 없었음에도 그 한마디를 이유로 내게 헤어지자고 통보한 남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나를 사랑한 게 아니라 나의 자궁을, 번식 가능성을 사랑한 것이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의 비참함과 배신감, 우스운 기분은 지금도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이 남자와 그런 문제로 헤어지게 된다면 나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마도 내가 그런 말을 했기 때문에, 그는 우리에게 끝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그 말을 할 때 남자친구는 적잖이 충격을 받는 것 같았다. 기분이 나빴을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내가 한 말 때문이었는지, 내가 딩크라고 밝힌 것 자체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그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당시 그는 서로 확신이 없는 채로 계속 만날 수는 없다고 했고, 내가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아 하는 점을 생각해보면 앞으로 그 문제로 부딪힐 것 같아서 헤어지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끝이 있다고 했다. 그때 알았다. 처음엔 아닌 척했지만, 그는 만나다 보면 내 생각이 바뀔 거라고 생각했거나, 혹은 내심 결혼을 빠르게 결정하고 싶었다는 것을. 서로 계속 함께할 거라는 확신이 그에게 필요했다는 것을. 나도 그를 만나다 보니 '같이 살고 싶다'는 마음('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과는 차이가 있다. '결혼하고 싶다'가 아니라 '같이 살며 매일 함께 있고 싶다'의 마음이었다)이 들었고, 그 당시 우리가 '모든 계절을 함께 지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는 확신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헤어지자고 할지언정 나를 설득하거나 마음을 바꾸려고 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나의 신념을 무너뜨리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내가 나인 채로 그를 붙잡는 건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잠시 이별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며칠을 뒤척이며 생각해보고 나는 내 신념을 무너뜨리는 선택을 하기로 했다. '이렇게 헤어지느니 차라리 결혼을 전제로 만나자.'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며, 헤어지는 것은 너무 힘들고, 나의 가치관을 바꿀 만한 이유가 되는 사람이라는 판단이 들어 그에게 연락을 했다. 나의 마지막 제안을 남자친구는 받아들였고 우리는 대화 끝에 이별을 번복했다. 나의 비혼주의는 그렇게 흔들리다 무너졌다. 이 사람이라면 함께해도 괜찮을 것 같아서, 함께하고 싶어서.


짧은 이별 후에 다시 재회했을 때 우리는 위기를 딛고 더 돈독해진 느낌이었다. 나는 그와 함께하고자 나의 오랜 신념을 무너뜨렸고, 내 인생에 '결혼'이라는 선택지를 들여보기로, 가능성을 열어두기로 했다. 아이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는 당시에 더 자세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다만 남자친구는 '딩크족인 사람들을 이해하게 됐고, 아이가 없는 삶이 어떤 장점이 있는 지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결혼이라는 전제를 열어둔 것만으로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앞으로를 계속 함께할 것을 전제하고 만나는 것은 전에 없던 안정감과 신뢰감을 주었다. 나의 감정에 약간의 불안이 끼어있었다는 걸 부정할 순 없지만, 관계에 분명한 안정감이 더해졌다. 이상하게도, 누군가와 함께하기로 하는 일이, 삶을 더 수월하고 가벼운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도 같았다. 이전에는 몰랐던 안정감과 그를 되찾았다는 행복에 나는 낡은 신념 따위를 저버린 선택을, 나의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사실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기 전에도 나는 내내 흔들리고 있었다. 이 사람과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어서. 어쩌면 남들이 이룩한 그 '평범함'이, 이 사람과 함께라면 내게도 '특별함'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함께라면 어떤 것도 상관없나요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 정말 그런 걸까

함께라는 건 그렇게 쉽지 않은데

그만큼 그만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브로콜리너마저, '춤' 중에서)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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