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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Jan 14. 2023

연애일기 14. 하와이안 피자

피자 위의 파인애플을 떼어 얹어주던 기억

연애일기 14. 하와이안 피자

중요한 건 서로를 존중하고 알아가는 그 마음, 피자와 파인애플의 추


나는 '하와이안 피자'를 싫어한다.

피자 도우 위에 어떤 식으로든 물렁한 파인애플이 얹어지는 피자,

정확하게는 그 뎁혀지고 물컹해진 파인애플의 식감을 싫어한다.

파인애플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다만 파인애플을 차갑고 딱딱하게 먹어야 맛있다고 여길 뿐.

파인애플과 피자 도우의 조합은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고 생각해 왔다.

음식을 가지고 장난하는 걸 바라보는 심정이라고나 할까.


그는 하와이안 피자를 좋아했다.

'최애'까지는 아니어도 '극호' 정도라고 했다.

피자 도우 위에 파인애플이 가득 올라간 하와이안 피자를 좋아하다니.

하와이안 피자가 아니어도 피자 도우 위에 파인애플이 섞여있는 걸 보면

그는 반가워했다. 나는 반대로 싫어했고.


하와이안 피자에 있어 서로의 취향이 갈린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농담처럼 '반반 피자 먹자, 하와이안으로 반 시켜서 오빠 먹어.' 같은 말을 했지만

막상 같이 '반반(하프앤하프)' 피지를 주문해서 먹을 땐 둘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무난하거나 호불호 없는(베이컨포테이토라던지 불고기라던지 스테이크쉬림프피자 같은)

하와이안 피자가 아닌 메뉴들만 고르곤 했다. 

피자를 주문하며 같이 메뉴를 고르는 날이면 나는 장난스레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에게 '하와이안으로 먹고 싶어?'라고 묻고, 그는 장난기 가득하게 '응 오늘은 도저히 안 되겠어, 파인애플 피자를 꼭 먹어야겠어, ' 하며 웃곤 했다. 결국은 항상 내가 좋아하는 메뉴들을 함께 골랐다. 

그러나 무난하게 골랐던, 혹은 내 취향대로 골랐던 피자 메뉴에 파인애플이 섞여있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다. (이렇게도 피자 위 파인애플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단 말인가!)

(민트초코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나와 세상 사람들의 취향이 너무나 다른 것 같아서

가끔 의아할 때가 있는 것이다.)

집어든 피자 조각에 생각지도 못한 파인애플을 발견할 때면 나는 편식하는 애처럼 

도우 위의 파인애플을 조심스레 떼어서 남자친구의 피자 조각에 얹어주곤 했다.   

'오빠 먹어, ' 하며 파인애플을 찾아내서 웃으며 떼어주는 게 우리의 피자 데이트의 익숙한 풍경이었다.

나중엔 남자친구가 자진해서 떼어가기도 했다. 피자 위 파인애플이 얼마나 맛있는지 아냐며.


취향이 서로 다른 게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서로를 존중하고 알아가며 그 다름마저 함께 즐기면 그만인 것을.

  



그와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와 피자를 먹었다.

스테이크 피자였는데, 도우 위에 파인애플이 듬성듬성 올라가 있었다. 

친구에게 물었다. "너 파인애플 좋아해? 이거 떼서 줄까? 난 이거 피자에 있는 게 싫어."

친구는 왜 까탈스럽게 편식하냐며 웃었다. 그리고 떼어서 자기 조각에 얹어달라고 했다.

웃으며 파인애플을 떼어 친구에게 얹어주면서 

헤어진 남자친구를 생각했다. 갑자기 조금 슬프고 조금 웃기고. 

사소한 취향과 주고받았던 농담들과 둘만 아는 루틴 같은 것들이 연쇄적으로 떠올랐다.

'이런 식이라면 피자 위의 파인애플 조각을 볼 때마다 생각나겠군, 큰일인데.' 

그런 생각에 다다르자 친구와 피자를 먹으며 즐겁던 마음이 조금 우울해졌다. 


혼자 있을 때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들다가도, 

좋아하던 장소에 다른 이들과 함께 가도

헤어진 이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순간은, 막을 수 없이 어쩔 도리 없이 스며들듯 찾아온다. 

'그때 그랬었는데, 그 사람은 그랬었는데.' 하고 습관처럼 떠오르는 순간에  

더 이상 마음이 아프지 않을 때가 되면 비로소 추억, 이라고 부를 수 있을 테다.

더 이상 헤어진 이가 문득 떠오르지 않는 때가 오면, 비로소 잊었다, 하고 말할 수 있겠지.

그때가 오면, 마침내 완전한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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