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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ngtake Jun 29. 2023

# 사내 동아리 : 성폭력전문상담원의 고충

사전 정보가 없어 도저히 짐작하기 힘든 분위기의 모임에 참여해 본 적이 있는가? 어제는 참여하기로 마음먹고 가서도, 들어가는 문 앞에서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안에서 들리는 소곤소곤 들리는 말소리를 듣다가, 한 번 돌아섰다가, 두 번 돌아 문을 열었다. 

  

내가 고민하다 간 곳은 회사 내 ‘명상’ 동아리로 점심시간 한 시간을 이용해 명상하는 곳이다. 5년 전 공지를 보고, 혹시나 해서 글쓴이에게 연락했고, 글쓴이가 단톡방에 초대해주어 가게 되었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차라리 외부에서 하는 곳이었으면 가뿐했을 것인데, 모임에 가해자가 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 나를 불편해할지 모를 피해자나 참고인이 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갔다가 아님 말지 뭐!’ 하는 마음을 먹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조금 놀랐다. 10명의 50대 남성이 앉아있었다. 나는 책상 끄트머리에 앉았고, 이름과 소속 부서, 모임에 오게 된 경위를 짧게 설명했다. 회사 내에서, 나를 초대하지 않은 모임에 가서, 처음으로 나를 밝히고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내가 속한 부서를 이야기할 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보고, 내가 부서를 밝히는 것을 편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회사 내 성희롱 사건을 조사하는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은 조직에서 좋아하지 않는다. 단정할 순 없지만, 적어도 ‘불편해’한다는 것은 어디서나 느낀다.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동료라도 가끔 내가 먼저 연락하면 ‘왜 무슨 일이야? 수첩 들고 가야 해?’하고 묻는 일과 비슷한 맥락이다. 부서 이름을 말할 때 순간적으로 모두가 고개를 들었고, 이후 잠잠했다. 초대받지 않은 모임이 주는 생소함을 느끼며, 오늘의 결정이 다소 무리수였음을 깨달았다.      


이후 명상이 시작되었다. 상대를 보고 판단하지 않는 것, 판단하는 것도 나의 기준이라는 것, 그러니 현재의 상태와 나의 감정을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는 취지의 이야기가 오갔다. 이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니 마음이 한결 내려앉았다. 여기는 여느 모임과 다른 ‘명상’ 모임이다.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않아야 한다는 것을 공유하고 있는 모임이다. 그러니 나에 대해서도 그럴 것이라는 예상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그리고 명상 후 소감을 나누는 시간에 리더가 ‘오늘 처음 온 사람이 잘 따라올까 싶어 그 생각을 많이 했다.’는 말을 했다. 다정하게 들렸다. 그리고 명상이 끝났고, 일어났다. 끝나고 (으레) 다 같이 우르르 밥을 먹으러 가는 것인가, (동아리의 일원이니) 나가야 하는 것인가, 순간 어정쩡하여 급사람들을 살폈으나, 사람들은 그 사이  각자의 길을 시원하게 갔다.     


나오면서 캘린더 수요일 자리에 ‘명상’이라 썼다. 이런 모임의 분위기도 괜찮다 싶었다. 환대하는 분위기, 처음 온 사람을 챙겨주는 분위기, 이것저것 궁금함으로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 분위기가 낯설었지만, 본연에 하기로 한 것, 그것만 시간에 맞춰 잘하고 급히 헤어지는 이 분위기도 괜찮다 싶었다. 사실 모두가 나를 환대하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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