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은 어쩌다 보니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고 지내던 예전 직장 동료들과 연락이 닿았다. 흔한 이야기처럼 상갓집에 갔다가 10년만, 20년 만에 예전 술 마시고 일하며 낮밤을 같이 보냈던 동료들을 만났고, 연락하자! 는 흔한 말을 하고 흔치 않게 진짜 연락하여 만나게 된 것이다.
나의 결혼식 단체사진을 끝으로 만나지 못하던 K언니는 우동집 CEO가 되어있었다. 실제 나는 가끔 K언니를 떠올렸었다. 첫 직장, NGO활동가로 월급 40만 원을 받으며 일하던 때, 언니와 동생으로부터 차비와 용돈을 받아 생활하던 시절 우린 가끔 밥을 먹었고, 술을 마셨고 막차를 놓치면 언니 집에서 잤고, 커피 우유를 물고 출근했다.
어느 날 K언니와 밥을 먹기로 약속했고, 문손잡이를 잡은 찰나 공짜 밥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누군가 행사 도시락을 나눠주었다.) 나는 언니에게 아주 갑자기 도시락을 먹자며 단호히 약속을 깼고, 잡았던 문손잡이를 놓았고, 우린 각자 책상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순간 일어난 일에 언니는 어정어정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앉아 맛없는 도시락을 먹으며 뭔가 아쉽다는 듯 중얼중얼했다. 나는 가끔 이 장면이 생각났고, ‘한 끼 밥값이 뭐라고...’ 싶어 언니에게 미안했다. 그 언니를 15년 만에 만나 (엄청 비싼) 내가 좋아하는 순두부찌개를 맛나게 먹고 (멋지게) 내가 계산했다.
나의 결혼식 단체사진을 끝으로 만나지 못하던 또 한 사람 J언니도 만났다. 늘 이래저래 말이 없고, 별일도 달일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우린 토요일, 일요일에도 만나 같이 일을 했고, 설날과 추석에도 만나 함께 명절 음식을 먹으며 일했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맥주를 마셨다.
그러던 날 J언니와 퇴근하고 홍대로 놀러 갔다. 언니가 타로 카페에 데려갔고, 우린 타로로 점을 보았다. 그리고 계산을 하던 중 나는 깜짝 놀랐다. (공짜인 줄 알았던) 타로 상담비가 2만 원이었던 것이다. 당시 우리 월급이 40만 원, 타로비가 2만 원이라니 나는 너무나 큰 금액에 어찌할 바를 모르던 차, 언니가 여유롭게 내 타로비를 계산했다. 당시 나는 가격에 놀라 고맙다는 말도 매우 어정쩡하게 했던 것 같다. 왜인지 나는 가끔 이 장면이 생각났고, 언니 마음을 알 것 같아 그냥 언니가 고마웠다. (실은 서로 박봉에 힘든 처지에 언니가 홍대 구경도 시켜주고, 난생처음 타로 구경도 시켜준 게 고마웠다.)
언니들과 만나 내리 5시간을 떠들었다. 15년간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지금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고 또 말했다. 우린 15년 만에 만났는데도귀촌(K관심)에 대해, 성희롱(내 관심)과 이주민정책(J관심)에 대해 얘기하며 좋았다 슬펐다 했고, 직장 동료와 상사 뒷담화에 깔깔댔다.
이제는 가끔 만나기로 했다. 너무나 오랜만이었지만 한 6개월 만에 만난 듯한 이 느낌은 무엇일까 생각하며, 자주 만나지 못해도 한때 다정하고 좋았던 사람은 다시 이렇게 만날 수 있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만나서 15년 전의 이야기만이 아닌, 지금의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어 기뻤다. 서로에게 변한 것 없이 여전하다 말하면서도, 우린 각자 비슷한 듯 다른 고민을 안고 그럭저럭 잘 살고 있었다. 이런 언니들이 대견하고, 이런 언니들을 만나 뿌듯하고 기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