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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ne Jan 13. 2023

니네들이 뭔데 날 판단해 (1)

일단 합격하고 보자, 면접의 역사 

인생 첫 면접은 고등학교 신입 방송부원 선발 면접이었다. 동아리 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던 학교였지만, 초등학생 때 방송부 일을 재밌게 했던 기억이 있었고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에 방송부 일에 호감이 있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세상이 내 중심인 줄 알았기에, 방송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하이틴 시리즈엔 당연히 내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지원서를 제출하고 안내받은 일정에 맞춰 나름 체계있는 프로세스에 의해 면접을 봤다. 하지만 경쟁율은 높았고 면접 시간이 통제가 안되어, 식사도 못한 채 엄청 늦은시각까지 대기했다. (정확하게 생각나진 않지만, 바깥이 깜깜해질 때까지 학교에 남아있었다.) 나는 한참 뒤에야 순서가 돌아왔는데, 면접장에 들어서니 심사자인 선배들이 엄격한 얼굴로 앉아있었고 캠코더까지 셋팅되어 있었다. 경험이 없어서 미처 알지 못했던 '면접'이란 것의 개념이 온 몸에 긴장과 중압감으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면접 형태는 다대다로 대상자는 나를 포함 2명, 면접관은 3명이었고,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와 지원 동기를 물었는데 나는 스토리가 있었기에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이어서 본 질문을 했는데 내용은 이러했다. 


"자유와 방종(放縱)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지금 생각하면 '고등학교 방송부 면접에서 저런 질문을?' 고딩들에게 허세가 많이 묻어있었구나 정색하게 되지만, 당시엔 선배의 진지한 표정과 더불어, 좀 '있어보였다'. 나는 딩초 시절부터 꽤 독서를 많이 한 청소년이었기에 어휘력이 있었고 질문의 요지를 바로 파악했지만 함께 면접을 보던 친구는 방종이란 단어를 몰랐는지, 질문을 '자유와 방송'의 차이로 이해하고 선대답을 해버렸다. 답변 자체는 꽤 잘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여튼 나는 '얼씨구? 쟤 망했네.' 하며 상대적으로 돋보이게 될 나의 지력에 이미 도취되고 있었던 것 같다. 이후 돌아온 내 차례에 '공동체와 책임감의 유무' 관련해서 대답을 잘 하고, 나는 내가 당연히 붙었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이틴물에 등장하는 방송부원 캐릭터는 나라고 자부했다.


헌데 조용하게- 뚝! 떨어졌다. 1~2주 간 결과 발표를 기다렸는데 답이 없어서 수소문해보니, 붙은 사람만 별도 연락을 받고 이미 방송부에 출입하며 교육을 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자존심이 상해서 화도 못냈다. 그렇게 불합격 연락은 오피셜하게 받지도 못한 채, 늦은 시간까지 면접에 응하고 결과를 기다리던 간절한 마음이 무시 당한 채 날카로운 첫 면접의 추억은 끝이 났다. 붙은 친구는 다른 반이지만, 중학생 시절 같은 학원을 다녔기에 알고 지내는 사이였는데, 차분한 성격에 조심스런 말솜씨와 청량한 목소리를 가진 이로 지금 생각해보면 적임자긴 했다. 하지만 당시엔 그 친구가 워낙 소극적으로 보였기에 쟤는 '자유와 방종'의 차이에 대해 잘 대답했을까, 나만큼 재기발랄하고 똑부러지는 답변을 했을까? 의문을 품으며 한 동안은 점심시간마다 방송이 나오면 짜증을 냈던 것 같다.


2학년 때, 그 방송부에 붙은 친구와 같은 반이 되었다. 이 땐 이미 같이 놀던 패거리와 미친 짓을 하며 노는 맛에 빠져있었던 때라 방송부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었다. 방송부 친구는 친한 무리는 아니었지만 살갑게 지내는 사이였는데, 어느덧 방송반의 중견 선배가 되어 있었던 그 이에게 한 날은 재미있는 얘기를 듣게 됐다. 방송부에서 가끔 우리 학년 면접 촬영 영상을 돌려보는데, 내가 말을 너무 빨리해서 '얘는 한국어 유학했냐고 해외파같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단 이야기였다. '내가 붙을 것이라 직감했던 환상', '자유와 방종의 차이에 대해 논리적으로 잘 답변했다는 자신감' 때문에 나의 불합격에 대해 늘 시원하지가 않았는데 미련까지 없어진 시기에 그런 얘기를 들으니 의문이 해소됐다. 아! 고등학교 방송부가 원하는 인재는 아이디어 뱅크도 아니고, 자기 의견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말을 차분하게 잘하는 사람이었구나. 하긴 기능적으로 그게 제일 필요하긴 했겠지. 나는 말을 잘하긴 하지만, 속도가 너무 빠르긴 하지. 하면서... 단박에 납득이 되었다. 나는 경상도 혈통의 타고난 급한 성미를 가져서, 지금도 타인에 비해 말의 속도가 빠른 편인데 청소년기엔 매일 몇 번씩 지적받을 정도로 심하게 말이 빨랐었다. (스스로는 인지도 못했고, 컨트롤을 어떻게 하는 지도 몰랐던 게 특이점 ㅋㅋ)


나는 그 때부터 지금까지도 장단점이 뚜렷한 사람으로, 면접이란 내게 확실한 장점이 있고 남보다 우월한 면이 있다고 무조건 합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내 존재와 면접 기관과의 FIT이 관건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 지만 그럼에도 무슨 면접이든지 떨어지는 건 늘 짜잉난다 ㅋㅋㅋ 왜 함부로 판단하냐 왜 거절감을 주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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