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인 시선의 정치사회 에세이 '우리는 개돼지가 아닙니다'
지난 6월 19일, 전북교육청은 전주의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전주 상산고'의 자사고 자격 재지정을 취소했다. 심지어 상산고는 재지정 여부를 위한 평가 결과 79.61점을 획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북이 다른 지역의 자사고 재지정 기준 점수보다 10점 높은 80점을 기준으로 삼아 자격이 취소됐다.
전북교육청의 기준 점수 80점은 김승환 전북교육감의 '자사고 폐지' 소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육감은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자사고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으며,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 자사고 폐지이기 때문에 교육청의 정책도 이를 따라가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김 교육감은 지난 3월 12일 전북도의회에서도 “교육부는 기준 점수만 제시한 것이고 평가는 교육감 권한으로 여러 사항을 고려한 것이다. 일반고도 70점을 넘겼기 때문에 자사고라면 최소 80점은 돼야 한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사실상 '자사고 폐지'를 답으로 정해놓고, 이에 맞게 재지정 기준을 변경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청와대는 21일 전주 상산고의 자율형 사립고 재지정 취소 결과와 관련하여, 전북교육청의 재지정 평가 기준과 절차가 과도하게 적용되었다는 판단하에 교육부가 지정 취소 협의 과정에서 ‘부동의’ 권한을 행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공약이기 때문에 이를 따라야 한다'며 교육감이 최선을 다해 자사고를 폐지하는 결정을 내렸는데, 대통령이 '그건 너무 심했다'며 원점으로 되돌려 놓는 꼴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김 교육감이 여러 언론을 통해 재지정 취소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바, 교육부가 ‘특목고 등 지정위원회’ 최종 결정하는 단계에서 ‘전북교육청의 취소를 취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메디를 완성할지, 그냥 기획 단계에서 중단할지는 이제 청와대의 몫이다.
교육청의 어처구니없는 평가 기준과 발표 후의 태도 때문이었다. 전북교육청은 다른 시도교육청이 교육부 권고안인 70점을 재지정 기준점수로 정한데 비해, 그보다 10점이 높은 80점을 기준점수로 잡은 것부터 형평성,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더군다나 상산고의 최종 점수는 79.61점으로 고작 0.39점 차이로 재지정이 취소되었으며, 평가 의무항목이 아닌 '사회통합전형'을 억지로 삽입하고 해당 항목에서 2.4점을 감점시킴으로써 무리하게 평가를 한 것이 고의 탈락 의혹에 더욱 불을 지폈다. 전주 상산고의 점수를 다른 지역의 기준 점수에 대입하여 생각한다면, 평가결과가 우수한 '훌륭한 자사고'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전주 상산고는 2001년 김대중 정부 당시 자립형 사립고로 출발하여 2010년 이명박 정부 때 현재의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된 케이스로, 사회통합전형은 필수 평가항목에 포함되지 않는다)
안산동산고의 경우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재지정 취소를 발표한 경기도교육청이 평가결과 자체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기도교육청은 안산동산고의 평가점수가 기준점수인 70점에 미달해 지정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하였으나, 구체적인 점수와 감점 항목 및 이유 등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평가지표 및 배점표'를 첨부하였으나 항목별로 점수가 몇 점이지 감점 사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전혀 설명하지 않았으며, 평가위원 역시 '내외부 전문가'라고만 했을 뿐 어떤 사람들인지 조차 밝히지 않았다. 그러니깐 '너희가 자격은 안되는데, 이유는 알 필요 없어' 수준의 아주 저열한 방식의 발표였던 것이다. 자율형 사립고 설립 후, 우수한 학생의 유치와 일반고와는 차별화되는 교육 환경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해 온 학교는 영문도 모른 채 자사고 지위를 상실하게 될 위기해 처했다.
이른바 '진보교육감'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하셨는데, 이제 와서 '한국 교육의 미래'를 운운하며 자사고 폐지가 부당하다고 주장하시는 건 아닙니까?
지난해 6.13 지방 선거에 앞서 광화문에서는 진보교육감 후보들의 공동공약 발표 기자회견이 있었다. 사진에 보이는 7명의 당시 지역별 예비후보들이 참석하였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을 비롯한 8명은 자리에 참석하진 않았지만 뜻을 같이 한다며 함께 이름을 올렸다. 그들의 공동공약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당장 저 사진만 보더라도 굉장히 어색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분명히 교육감을 뽑는 선거에 나선 후보들인데 '한반도 평화 실현'이라던지, '평화 통일교육 실시'라는 문구가 보인다. 가짜 뉴스도 아니고 누군가에 의해 악의적으로 편집된 사진이 절대 아니다.
초중고 학생들에게 한반도 평화와 평화 통일교육을 실시하겠다는 교육감들이 정상으로 보이는가? 난 절대로 정상으로 보지 않는다.
보수 교육감 후보가 '당선이 되면 아이들에게 강력한 반공교육을 실시하겠다'라고 한다면, 그 후보는 절대로 당선이 되면 안 될뿐더러 단 1표도 받아서는 안된다. '반공교육'이 문제가 아니라, 이제 막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정치적 메세지를 담는 것 자체가 아주 잘못된 일이라는 뜻이다. 평화통일이네, 한반도 평화 실현과 같은 정치적 메세지를 초중고 학생들이 받아야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말이다. 혹시나, 정말 혹시나 '평화통일 이라는 말은 좋은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가르쳐줘도 된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핵무기를 보유하고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는 주적 국가의 남침에 대비하기 위해 반공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무엇이 나쁘냐고 되물어야 한다. 둘 다 비정상적이다. 학생은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지, 정치적 사상을 배우러 학교에 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 날 발표된 공동공약 내용 중에서 반드시 짚었어야 할 몇 가지 공약들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어떤가? 이 날 공동공약 발표에서 진보교육감들이 '반드시 지키겠다'던 핵심공약들의 내용이다. 심지어 고입 경쟁을 유발하는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버젓이 등장하는데, 사실 이 내용은 매 교육감 선거 때마다 진보 교육감들의 필수 공약으로 거론되었던 바 있다. 그러니까 진보교육감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면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폐지는 유권자로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진보교육감들의 공약이나 정책들에는 정치적인 요소가 다분히 담겨있다. 그들이 이 날 발표한 공동공약에서도 북한 수학여행을 활성화하고, 남북학생들의 축구 및 농구대회를 추진하겠다는 수준 떨어지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울산, 전북, 부산의 진보교육감 후보들의 경우 초중고 모든 학생들의 수학 여행비를 즉시 혹은 단계적으로 전액 지원하겠다는 공약이 담겨 있었는데, 이 말을 합치면 '국가에서 초중고 학생들에게 무료로 북한 여행을 시켜주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런 정신 나간 공약들을 내걸고도 14명의 진보교육감이 당선되는 게 현재 대한민국의 수준이자 현실이다.
혁신학교는 어떠한가?
진보교육감들은 공통적으로 혁신학교를 크게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으며, 빠른 시일 안에 200개를 늘리겠다는 구체적인 플랜까지 내놓기도 했다.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폐지는 물론 국제중학교까지 모두 폐지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언론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사고와 혁신학교의 엇갈린 운명'과 같은 기사들을 쏟아냈으며, 혁신학교는 '창의성과 인성을 교육하여 입시경쟁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난 새로운 학교'라고 예쁘게 포장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혁신학교는 자사고나 외고와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좋은 걸까?
위 자료는 2017.10월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이 교육부의 혁신학교 학업성취 수준 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내용이다. 분석 결과 2016년 전국에서 치러진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혁신학교 고교생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11.9%로 나타나 전국 평균인 4.5%를 크게 상회했다.
이런 처참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진보교육감 후보들은 6.13 지방선거 당시 '질적인 개선'을 추구한다고 발표했을 뿐 결과에 대한 책임이나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더 빠르게 확대하겠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서울시를 담당하는 조희연 교육감의 추진 의지는 거의 불타오르는 수준에 가까웠다. 아무도 말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자사고와 외고가 설립 취지와 다르게 입시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고교체제의 수직적 서열화를 초래했다며 폐지를 주장하고, 혁신학교는 그 대안이기에 지속 확대를 주장했다. 결과가 어찌 됐든, 학부모들이나 학생들의 만족도가 어떻든 '교육의 정의로움'을 주장하던 조희연 교육감은 서울 시민들에게 그러한 공약을 강요할 수 있는 사람일까?
자사고와 외고가 귀족들의 집단이자 고교 서열화를 조장하는 아주 나쁜 적폐로 분류하며, 최초의 교육감 당선에서부터 재선에 이른 지금까지도 이를 최우선 순위 목표로 열심히 노력 중인 조희연 교육감의 두 아들이 외고를 졸업했다는 뜻이다. 심지어 이 문제에 대해 몇몇 언론이 '위선적이다'라며 의문을 제기하자, '그건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소름 돋는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확실히 조희연 교육감은 뛰어난 개그감을 가지고 있다. 꽤 오랜 시간 그의 행보를 지켜 봤는데, 확실히 개그쪽으로는 일가견이 있다. 그리고 서울 시민들은 '개그감이 뛰어난' 교육감에게 아이들의 미래를 다시 한번 맡겼다.
JTBC 썰전 출연 당시, 자사고 및 외고 폐지를 주장하던 유시민의 아들은 세화고를 졸업했고 딸은 외고를 졸업했다. 심지어 그는 썰전에서 "딸에게 재학 당시 외고가 어떻냐고 물어보니 보내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하지만 졸업 후에는 모두가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외고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라는 정말 추하고 위선적이고 국민을 기만하는 이야기를 늘어놓은 바 있다. 자신의 자녀들은 모두 그 혜택을 받았으니 이제 없애자는 말인가?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당신의 자녀만 소중한가?
또한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의 딸은 강동구에 위치한 한영외고를 졸업했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세 자녀는 모두 용산국제학교를 졸업했다. 지금도 자사고 폐지를 주장하며, 안산동산고의 재지정 자격을 취소하기도 한 경기도 이재정 교육감의 딸은 외고에 입학한 후 일반고로 전학을 간 케이스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의 아들은 대안학교인 '이우학교' 출신인데, 아들이 재학 당시 등록금이 분기당 150만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 의원은 2007년 대선 출마 과정에서 '아이가 자신감이 없어 스스로를 세워갈 수 있는 환경을 바랬다. 학비가 비싸 남편과 의견 다툼이 있었지만, 결국은 대안학교로 보냈다'라고 이야기 한 바 있다.(현재는 등록금이 일반고 수준으로 조정되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세세한 부분은 확인할 수 없기에 양해를 부탁드린다) 마지막으로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의 아들은 김포외고 출신이다. 이외에도 '자가당착'에 빠진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더 언급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라 생각되어 여기까지만 적도록 하겠다. 보수와 진보, 좌우 이념을 생각하지 말고, 정말 그냥 눈 딱 감고 객관적으로 한 번만 생각해보기를 부탁드린다. 저들이 얼마나 국민을 개돼지로 취급하는 오만방자한 자들인지 말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 문재인 후보의 대선 공약이었다. 전북 유권자의 64.8%가 그런 문재인 후보에게 표를 주었다. 지난 6.13 지방선거 전북 교육감 선거에서 전북 유권자의 68.7%가 진보교육감 후보 2명에게 표를 나눠주었고, 그중에서 39.6%를 얻은 김승환 후보가 당선되었다.(2위 서거석 후보는 29.1%이나, 서 후보 역시 진보교육감 후보였다)
10명 중, 6~7명이 자사고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자들에게 투표했다. 어쩌면 꽤 많은 유권자들이 공약집을 자세하게 읽지 않고, 진보라는 단어와 적폐를 처단하겠다는 정의로운 이미지만 보고 한 표를 행사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결과를 감내하는 것은 국민들의 몫이다. 지금 상산고 사태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전북도민들 10명 중에 6~7명은 문재인 대통령과 진보 교육감을 선택한 사람들일 것이고, 최소한 그들은 이 결과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당신들이 뽑은 대통령과 교육감의 핵심 공약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은 한 번도 이러한 공약을 번복한 적이 없으며, 일관되게 폐지를 주장해 온 자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설령 전주 상산고가 이번 재지정 결과가 번복되어 자사고 지위를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향후 새로운 대선이나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후보가 또 당선된다면 결국에는 폐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내 소중한 한 표는 신중하게 행사해야 한다. 차악이네, 대안이 없네, 누구를 혼내줘야 하네와 같은 무논리 투표를 하기 전에 최소한 그들의 공약들을 자세하게 읽어볼 필요는 있지 않겠는가? 정치인은 정치인일 뿐이다. 그들을 연예인처럼 생각하며, 팬심으로 투표하는 우를 범하는 일이 절대로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