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인 시선의 정치사회 에세이 "우리는 개돼지가 아닙니다"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의 마음을 보듬는 정부가 되겠습니다."
정부는 6월 4일, 천안함과 연평해전 유족 등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을 초청한 오찬 자리를 마련했다. 6·25 전사자 유족 2명과 천안함 피격 희생자 유족 13명, 제2연평해전 희생자 유족 7명 등 240여 명이 참석한 자리였다. 다소 의외의 행보였다.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은 '서해 수호의 날' 행사에 2년 연속 불참하고, 북한의 소행으로 확인됐거나 합리적 의심이 제기되는 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 요구를 일절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번 행사는 이를 이유로 정부를 비난해온 보수성향 국민들의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꽤나 중요한 자리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청와대는 이 날 오찬 행사 참석자들에게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국정 내용을 홍보하는 소책자를 나눠주었는데, 그 안에 실린 사진들 중 두 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함께 나온 사진이었기 때문이었다. 시트콤이 아니다. 몰래카메라도 아니고, 정치풍자 개그쇼는 더더욱 아니다. 무심코 책자를 열어본 전사자 유족들은 분노했고 식사를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고 전해지며, 연평해전 전사자 한상국 상사의 아내는 끝내 화장실에서 구토를 하였다고 한다. 가족을 잃은 상처와 아픔을 위로받고자 했던 유족들에게 대통령과 청와대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청와대는 '해당 소책자가 금번 행사를 위해 별도로 제작한 책자는 아니고, 청와대를 방문하는 이들을 위한 기념품 격으로 비치하는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해명도 아니거니와 설령 그것이 맞다고 해도 나라를 위해 희생한 전사자 유족들을 대하는 태도가 이런 식인 것은 또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당사자들에게는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었겠는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유족들은 아직 북한으로부터 어떠한 사과도 받지 못했다. 자신의 남편/아버지/아들이 북한군에 의해 사망했기에, 그들은 김정일과 김정은을 '원수'로 생각하며 힘든 시간을 버텨왔을 것이다. '마음을 보듬고 위로를 하겠다'면서 원수의 사진을 보여주는 것은 어떠한 걸로도 설명될 수 없으며, 나라를 위해 희생한 전사자 유족들을 모욕하고 능멸하는 일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심지어 청와대는 천안함 생존장병 전준영 씨가 제기한 북한의 사과 요구에 대해서 끝내 뚜렷한 답변을 주지 않았으며, 이 사실은 최초 언론 보도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너무나 차갑고 냉혹하지만,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당시 문재인 후보가 3월 19일에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5차 합동토론회에서 특전사로 군 복무할 당시의 사진을 꺼낸 것이 발단이 되었는데, 문 후보의 국가관과 안보관을 우려한 여론이 확대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를 증명하기 위해 자신이 군 복무 시절 여단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는 발언을 한 것이었다. 문제는 문 후보가 군생활을 하던 제1공수여단 여단장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언급하며 "국가관과 안보관, 애국심이 대부분 이때 형성됐고, 확고한 안보태세를 바탕으로 북한과 평화로운 관계를 회복하겠다"는 주장을 펼쳤는데, 이 발언이 광주를 비롯한 전라남도 시민의 반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다음 날 농성장을 방문한 당시 문재인 후보는 오월어머니회 회원들로부터,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아느냐. 전두환 때문에 자식을 잃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지금까지 어머니들이 억울해하고 있는데 그 말을 했어야 했느냐. 표창이 자랑은 아니지 않느냐"
"전두환이라고 하면 머리가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화가 나고 가슴이 아프다"
"굳이 토론회에서 그 말을 한 이유가 뭔지 밝혀라" 등 호된 꾸지람을 듣게 되는데, 문 후보가 그런 것이 아니라며 몇 번을 설명해도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자 다소 화가 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37년 전의 일이지만 가족을 잃은 아픔이기에 쉬이 가시지 않았고, 그들의 가족을 앗아간 '원수'는 죗값을 치르기는커녕 광주시민들을 향해 일언반구 사과 한 마디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랬기에 문 후보는 자신의 실언에 대해 여러 차례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반란군의 우두머리'였다는 것을 반드시 규정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천안함은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일이기에 유족들의 마음은 지금도 찢어질 지경이고, 그들의 가족을 앗아간 '원수'는 죗값을 치르기는커녕 대한민국을 향해 일언반구 사과 한 마디를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희생자 유족들에게 '원수'의 사진, 그것도 본인과 손을 잡고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두 장이나 넣어가며 유족들의 가슴을 또 한 번 난도질하였다. 북한에게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를 요구하는 생존장병의 의견마저 철저히 무시해버렸다. 겨우 봉합해가는 상처를 다시 찢어놓았지만, 사과는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문제는 정치성향과 관계없이 상식을 갖춘 전 국민이 비난해야 할 일임에 틀림이 없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분명히 지적할 수 있어야 하고, 이 문제를 좌우 이념성향에 따라 서로 공격하고 방어한다면 그야말로 추태가 되고 말 것이다.
만약 이 글이 끝나가는 지금도 이 사건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면, 반드시 역지사지 해보시기를 권한다. 만약 자유한국당과 황교안 대표가 최근에 열렸던 5.18 희생자 추모행사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진이 담긴 소책자를 광주 시민에게 나눠줬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 상황에서 해야 할 말이 즉시 떠오른다면, 그 말이 이 사건에 대해서도 정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