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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세이 Nov 19. 2023

앨범이 19곡의 플레이리스트가 된 건에 대하여

크러쉬처럼 괴짜스럽게, Keep Crush Weird!



1. 창작자의 숙명은 비슷하다. '어떻게 하면 끝까지 읽게 할지'가 글쓰는 사람의 고민이라면, 가수는 '어떻게 하면 앨범 전곡을 듣게 할까' 고심한다. 



2.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이 나오면 팬들은 선택과 집중의 기로에 놓인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큐레이션 된 타이틀곡을 가장 먼저 듣는데, 이게 또 소비자 입장에서 습관이 된다. 수록곡은 가볍게 패스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속사는 한 두 곡에 집중한다. 팬들도 느낀다. 수록곡은 앨범을 채우기 위한 뾱뾱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3. 다행히 뉴진스의 등장으로 그 경계는 희미해졌다. 한 앨범에서 4곡 중 3곡이 타이틀이었고 모두 대성했다. 좋은 음악이라면 몇 개든 대표곡이 될 수 있다는 걸 입증했다. 여기에 크러쉬가 또 하나의 룰을 더했다. 좋은 음악의 기준은 타이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찾는 거라고.



4. 크러쉬의 정규앨범이 4년 만에 나왔다. 곡이 19개다. 은은한 광기에 미쳤다. 어반자카파 조현아 씨도 이건 객기 아니면 반성문이라고. 어떤 것부터 들어야 할지 난감했다. 하필 스포티파이에는 타이틀 표시가 없다. 이걸 의도한 건지 몰라도, 19개 중에서 찾아 듣기 귀찮더라. 내 취향 하나쯤은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첫 곡부터 재생했다. 



5. 듣다 보니 이건 하나의 플레이리스트이다. 재생시간도 딱 1시간이다. 한 아티스트의 노래를, 그것도 앨범을 전곡 재생해서 들어보다니. 아이돌 덕질 이후 오랜만이다. 이번 앨범 짜임새가 참 좋다. 전체 컨셉을 방해하는 곡 없이 귀가 편안하다. 그렇다고 지루하지 않다. 트렌디한 재즈, RnB, 테크노가 골고루 섞인 느낌이랄까. 리드미컬한 중저음 사운드를 기반으로 스타일에 변주를 주었다. 



6. 이중 내 취향의 노래는 <흠칫/ No Break/ Satisfied/ EZPZ/ For Days to Come>. 전곡을 다 듣기 부담스러우면 이렇게라도 들어보길 추천한다.



7. 기존 질서를 부수는 사람들에겐 묘한 끌림이 있다. 기대되고 응원하게 된다. 게임 체인저인 이들은 의구심을 갖고 다르게 행동한다. 약간 반골 기질처럼 보일 수 있는데, 단순히 관심받기 위해서라기 보다 정의감에 가깝다. 앞장서는 일에 별로 거부감 없다.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해서다. 



8. 어차피 묻힐 신세였던 수록곡이다.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새로운 파장을 일으킨 크러쉬의 괴짜스러움을 응원한다. Keep Crush Weir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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