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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Apr 04. 2019

오로지 나 홀로 여행

유부녀가 혼자 여행을 간다고?

언젠가부터 혼자 뭔가를 하는 것에 대해 의아하게 보는 시선이 많이 사라졌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이 보편화된 것이 내심 반가우면서도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 피로감을 느낀다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잠깐 동안의 노량진 수험생활을 계기로 나는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익숙했지만,

그 이후로는 좀처럼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을 기회가 없었다.


예전에 친구가 이런 말을 했었다. 혼자 먹는 치킨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닭다리 두 개를 다 먹을 수도 있고, 내 속도에 따라 천천히 혹은 느긋하게 먹어도 되고, 

원하는 부위를 내가 마음껏 골라먹을 수 있다고... 너무 공감이 됐다.


혼밥, 혼술 열풍이 불면서 오히려 혼자 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기도 한다.

그건 개인의 성향일 뿐인데,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에 더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은 

굳이 혼자 밥이나 술을 먹을 필요는 없다.

굳이 유행을 따를 필요는 없고,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혼자서 밥도 잘 먹고, 혼자 영화도 잘 보는 나는 혼자 하기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혼자 떠나는 여행'을 40살에 처음으로 해보기로 했다.


예전부터 너무나 하고 싶었지만 할 기회가 없었고, 솔직히 두렵기도 했다.

20대까지는 늘 가족 또는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했고, 20대 후반에 남편을 만난 이후엔 남편과 여행을 다녔다. 결혼 후 에도 친구들과 자주 여행을 가긴 했지만 오로지 혼자서 며칠 여행을 간 적은 없었다.

'나 홀로 여행'이 너무 멋있어 보였고(왜 멋있보였는지는 모르겠다), 꼭 해보고 싶었다.

마침 난 며칠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고, 남편은 업무로 바쁜 시기였다.


그래, 혼자 가보자. 어디로 갈까? 강원도? 제주도? 동남아? 유럽?

음... 난 외국어에 그리 능통하지 못하고, 심지어 길을 잘 찾지도 못하니까 우선 국내로 가보자.

생각해보니 남편과 국내여행을 할 때는 운전을 내가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운전해서 다른 지역으로 혼자 떠나보자.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려면 비행기를 타야 할 것 같고, 몇 차례 여행을 했던 조금은 익숙한 곳이 좋을 것 같아 제주도가기로 했다.


비행기와 숙소를 예약하고, 렌터카를 선택하면서 설레기 시작했다.

그동안 남편에게만 의존했던 여행 계획을 혼자 짜고 있다는 것이 흥분했다.

혼자 제주도로 1주일간 여행을 가기로 했다는 말에 나의 부모님과 형제들은 '왜 그러냐?'라고 했고, 

친구들은 '혼자 무슨 재미로 가냐? 나랑 시간 맞춰서 같이 가자'라고 했다.

친구들에게는 '자아를 찾으러 간다'는 말로 그들을 웃게 해 주었다.

지인 중 몇몇은 꼭 한번 해볼 만한 일이라고 나를 응원해주었다.

 <나 홀로 여행>을 응원한다며 직장상사가 보내준 쿠폰으로 구매한 커피와 케이크, 출발 전에 사용하라며 공항에 있는 커피점 쿠폰을 보내주셨다. 역시 좋은 분이다.
제주도 여행 중에 먹었던 음식들, 혼자서 호텔 조식을 먹고, 회가 먹고 싶을땐 초밥을, 흑돼지가 먹고 싶을땐 흑돼지 꼬지를 먹었다. 한라산 정상에서 먹은 컵라면은 꿀맛이였다.

혼자 하는 여행은 나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우선 생각보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목격했고,

혼자 여행하는 나를, 사람들은 그리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난 내가 마치 무슨 대단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처럼 저녁에 숙소에 돌아와서는

'오늘도 알차게 잘 해냈어'하는 묘한 뿌듯함을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빡빡한 일정보다는 여유롭게, 천천히 뭔가를 오래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음식은 남들보다 빨리 먹는 편이다.

이러한 나의 성향은 누군가와 여행을 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관람시간을 줄였고, 식사시간은 늘렸을 것이다.

(식사시간을 늘린 것은 건강에도 더 좋았겠지만)

난 걸음이 느린 편이고, 자연풍경만큼이나 인간이 만든 조형물도 좋아한다.

오름을 오르고, 갤러리를 둘러보면서 시계도 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컨디션을 전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참 좋았다.

특히 한라산을 오를 때는 내가 쉬고 싶은 만큼 쉬고 다시 걷는 것이 너무 마음 편했다.

혼자 앉아 잠시 쉬고 있을 때 비구니가 건넨 귤 맛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내가 가고 싶은 곳만 가고, 내가 먹고 싶은 음식만 먹고,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봤던 여행은 내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모험심이 강하지 않다는 것과 꽤 대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사람들에게 장난스럽게 '소심한 성격'이라고 말하곤 했지만, '생각보다 대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끔 심심하기도 했고, 지금 이 순간에 남편과 함께였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다음에는 친구들이랑 함께 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심심해서 참 좋은 여행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공항에 도착해서 캐리어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을 때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자아는 찾았냐?"

"아무래도 자아는 유럽에 있는 것 같아. 우선은 내 가방부터 찾아야겠어.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

난 혼자 한 여행의 여운을 더 느끼고 싶었다.

짐을 찾고, 지하철을 타는 동안에도 혼자이고 싶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영어공부를 해야겠다. 다음에는 다른 나라를 혼자 가봐야겠다'

마중 나온 남편은 "혼자 가니까 재미없지?"라고 물었고, 난 조만간 또 혼자 떠날 계획이라고 대답했다.

남편은 '한 번이면 충분하지. 또 간다고?"라며 놀랐지만 난 다시 <나 홀로 여행>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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