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kao TV에서 방송되었던 <며느라기>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그 드라마를 제대로 시청한 적은 없지만, 드라마 방영 당시에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면 주요 장면이 끊임없이 메인화면에 띄기도 했고,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며느라기> 드라마의 에피소드가 화제에 오른 적도 몇 번 있었다.
<며느라기>에는 다양한 여성이 등장한다.
1. 시어머니: 한평생을 가족을 위해 희생했고, 그 희생을 며느리가 그대로 이어받기를 바라면서도 정작 본인의 딸이 그 희생을 하는 건 또 속상하고 가슴 아프고... 하지만 어쩌지 못하는 여성
2. 첫째 며느리: 자신의 의견을 자신의 목소리로 정확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여성(그녀는 자신의 의견을 본인이 직접 얘기하고, 그 역할을 결코 남성(남편)이 대신해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3. 둘째 며느리: 며느리의 역할에 부당함을 느끼면서도 싫은 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남편이 그 역할을 대신해주기를 원하는 여성(남편의 가족이니까 남편이 대신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4. 시누이: 본인이 며느리로서 겪은 부당함은 너무 억울하지만, 또 본인이 그 부당한 행동의 주체가 되는 하지만 그걸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여성
대부분의 여성은 본인의 어디에 해당한다고 생각할까?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3번 여성-둘째 며느리이고, 대부분의 여성은 본인이 3번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본인이 4번 여성(시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 같은 시누이 없지", "나만한 시누이가 어딨어? 난 이래라저래라 간섭 안 하잖아", "조카 선물도 자주 사주잖아" 하고 말하는 여성들은 많이 보았다. 그런데 이 말속에는 시누이라는 역할이 뭔가 간섭하고 괴롭힐 권한이 있는데, 난 착해서 그걸 하지 않는다는 말로 들린다. 반면 "나 같은 처형이 어딨어?", "나 정도면 좋은 처제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처형이나 처제랑 도대체 뭐가 다를까? 시누이, 처형, 처제 모두 내 형제가 결혼을 함으로써 생기는 역할일 뿐이다. 이들의 역할은 그냥 내 형제자매가 그들의 배우자와 잘 살기를 기원해주는 것이다. 시누이는 무슨 권한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또한 여성들 대부분이 본인의 엄마가 1번 여성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우리 엄마같이 좋은 시어머니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엄마는 며느리에게 잘해주는 참 좋은 시어머니임이 틀림없다.
참 이상한 일이다. 세상에 며느리를 힘들게 하는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도대체 어디에 살고 있는 걸까? 혹시 나의 사랑하는 엄마가 며느리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그 시어머니는 아닐까? 혹시 내가 올케에게는 이해 안 되는 얄미운 시누이가 아닐까?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서로에게 시누이자 올케가 되는 두 사람, 서로의 입장이 되어보라는 설정인 것 같은데 현실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
모든 사람은 본인의 입장이 제일 우선이고, 팔은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고,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자연스러운 이 시대에 본인 위주로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만 생각하면 원만한 가족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너무 어렵고 힘들지만 자기반성과 자기 검열이 반복적으로 필요하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여러 번 생각해보는 태도를 절대 잊으면 안 된다. 본인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모른척 하거나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면 가족관계는 물론이고 주변의 인간관계마저 잃게 되고, 본인의 마음에는 오로지 타인에 대한 원망과 분노만 남게 되고 나만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 된다.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불행한 일이다. 입만 열면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본인만 선량한 피해자임을 얘기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피로감을 일으키고, 거리를 두게 싶는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는 2번 여성과 3번 여성의 차이점을 잘 파악할 필요가 없다. 무엇이, 어떤 상황이 2번 여성으로 하여금 자신의 의견을 자연스럽게, 하지만 단호하게 얘기할 수 있게 하는 걸까? 성격(성향)일까? 완전한 경제적 독립? 오로지 본인의 편인 든든한 남편? 정확히 이거다라고 단정 지어 말하기는 애매하고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이 뒤얽혀 있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만약 2번 여성의 태도와 상황이 부럽다면 그녀가 그렇게 하기까지의 과정, 그녀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까지 모두 받아들이고 그걸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살면서 뼈저리게 느끼는 불변의 진리 중 하나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것이다.
부자가 사고 싶은 걸 모두 사는 걸 부러워하면서 그 부자가 그 돈을 벌기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시간과 노력, 고통과 희생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그건 이기적인 것을 넘어 양심이 없는 것이다.
1번 시어머니가 당연하다는 게 아니다. 성인이 되었고 결혼한 자녀의 가정에 관심을 빙자한 간섭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성인이 되면 독립된 가정으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있다. 독립된 가정이 되려면 독립된 거주공간이 있어야 하고, 그 독립된 거주공간은 그 공간을 사용할 당사자(부부)들이 함께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대부분의 경우, 부부 두 사람의 능력으로 독립된 거주공간을 마련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럼 여기서 누구에게 경제적인 부분을 부탁할 것인가? 대부분은 남자 쪽 부모님일 가능성이 많다. 여기서부터 남자쪽 부모님의 부당한 행동의 타당성이 싹트게 된다. 부당한 행동이 싫으면 그 싹을 자르면 된다.
물론 아닌 경우도 많이 보았다. 경제적인 부분을 똑같이 혹은 비슷하게 부담하였음에도 부당한 며느리 역할을 요구받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며느리는 자신의 의견을 내기가 훨씬 수월하고 시간이 얼마 지나기 않아 불편한 관계가 정리가 되곤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다. 사람은 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법이다.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재미있게 읽었던 책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는 책에서 갑질에 대해 정의한 글귀를 보고 깊이 공감했다.
"갑질이란 최소한의 인격적 대우조차 갖추지 않은 천박한 갑과 최소한의 인격적 대우조차 요구하지 않는 무력한 을의 합작품이다"
타인을 항상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태도를 가져야 함은 물론이고, 상대방이 나에게 인격적인 대우를 하지 않은 태도를 그냥 넘어가지 말자. 꼭 싸우라는 얘기가 아니다. 최소한 싫은 표정, 불편하다는 뉘앙스를 표현하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다. 내가 나를 제대로 대접하지 않으면 누구도 나를 제대로 대접해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