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은 Mar 17. 2024

남극에 가는 방법

비행시간만 약 35시간


1. 출국 전 해야 할 일


남극에 들어가기 전에는 해야 할 일이 많다.


(1) 기지로 보낼 화물 포장하기

우선 아주 무겁고 아주 다양한 연구장비와 물품들을 우리가 이고 지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화물선을 통해 보내야 한다.

그런데 배가 비행기처럼 아주아주 빠른 운송수단은 아니고, 운송 규정이 잘 지켜진 화물인지 체크도 받아야 하며,

바다의 상황은 시시각각 달라지기 때문에, 한국에서 남극으로 화물을 보내면 대략 3~4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남극의 여름은 11월부터 시작하고, 12월부터는 본격적으로 하계연구에 돌입한다.

그렇기에 화물이 늦어도 12월 초순에는 도착해야 한다.

거꾸로 시간을 산정해 보면 8월에는 화물운송을 시작해야 하고,

8월에 패킹을 완료하기 위해서는 6월 경부터 짐을 싸기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연구소는 여름휴가 시즌이 가장 바쁜 기간 중 하나이다.

카트를 끌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지게차가 바쁘게 움직인다.

가끔은 여기가 연구소인지 물류센터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이렇게 짐을 포장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화물들을 무사히 기지로 보내기 위해서는 여러 통관 허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인보이스와 패킹리스트를 작성하고, 연구 시약 중 위험물에 해당하는 것은 영문 물질안전보건자료(Material Safety Data Sheet; MSDS)를 제출해야 한다.

특히 남극으로 가는 최종 관문은 칠레이기 때문에, 칠레의 노동법 및 무역법을 따라 진행해야 하는 일도 많다.

연구를 위한 시료 중에서는 그 형태에 따라 허가를 받아야만 통관을 진행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이 기간에 잘 준비해서 짐을 보내지 않으면, 남극에서는 그때그때 필요한 물품을 공수할 수도 없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실험을 진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빠뜨리지 않고 잘 챙겨야 하고, 연구물품이 훼손되지 않도록 꼼꼼하게 포장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또 하나의 중요 물품 중 하나는 바로 간식이다. (좋아하는 간식이 구비되어 있어야 현장에 나갈 힘이 생긴다... 저는 몽쉘이요.)

현장 활동 중 급격하게 당이 모자라거나, 부득이한 상황으로 기지 복귀가 어려운 경우 열량을 섭취해 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초코바, 사탕 등 가볍게 챙겨 다닐 수 있는 것들을 꼭 사가야 하고 균형 있는 영양분 섭취를 위한 견과류 등을 챙겨가는 것도 좋다.


여하튼 이런 복잡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기지에 화물이 무사히 도착하게 되면 본격적인 연구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



(2) 입남극 허가 승인받기

남극은 남극조약에 의거하여 연구활동 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남극을 여행하는 크루즈 프로그램이 존재하지만, 활동이 제한되어 있고 함부로 땅을 밟고 관광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입남극 전, 외교부와 환경부에 연구활동을 위한 출입을 하고자 한다는 것을 입증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승인을 받았다고 해서 또 남극의 모든 땅을 돌아다닐 수는 없다.

남극 일부 구역은 Antarctic Specially Protected Areas (ASPA)라는 이름으로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환경적, 역사적, 생태적 등 여러 이유들로 인해 특별히 보호하고자 하는 구역을 말한다.


예를 들면, 세종기지 근처에는 ASPA 171번 구역이 있는데, 이곳은 펭귄들(주로 젠투펭귄과 턱끈펭귄이다.)이 여름이 되면 번식을 하고 새끼를 양육하는 곳이다.

펭귄들의 번식지를 보호하기 위해 ASPA로 지정되어 있다.

따라서 연구를 위한 목적 외에는 출입할 수 없으며, 출입을 하고자 하는 이는 연구계획서 등을 제출하여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ASPA를 출입할 때는 그 허가증을 꼭 소지해야 한다.


펭귄마을이 있는 ASPA 171번 구역


이와 같은 여러 행정적 검증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입남극 가능한 권한을 가질 수 있게 된다.






2. 출국 및 입남극


남극에 가기 위해서는 최소 5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경유지는 몇 군데를 선택할 수 있는데, 세종기지를 기준으로 전체적인 경로는 동일하다.

인천-세종기지까지의 경로. 유럽의 경우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조금 돌아가게 되어 14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이동하는 시간만 따지면 3일 정도이지만, 5일이 걸리는 이유는

푼타 아레나스(남극 관문도시)에서 최소 2일 정도 대기를 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칠레에서 남극으로 들어갈 때 DAP이라는 회사의 항공편을 이용하여 남극에 있는 칠레 공군기지에 간다.

이후 고무보트 혹은 소형선박을 타고 세종기지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비행기와 보트가 모두 뜰 수 있는 날씨여야 무사히 세종기지에 입성할 수 있다.

(어쩔 때는 DAP은 무사히 남극에 착륙했으나, 세종기지에서 데리러 나올 수 없는 상황일 때가 있는데, 그런 때는 칠레 기지나 러시아 기지에서 하루 신세를 지기도 한다.)


이렇게 날씨가 잘 도와주지 않는 경우를 대비해 원래 입남극일보다 2일 정도 먼저 관문도시에 도착하여

날씨 좋은 때 눈치게임으로 슈슈슉 들어간다.

하지만 바람이 많이 불고, 변덕이 심한 남극의 기상상황은 베테랑 예보관도 예측이 어려울 만큼 시시각각 변한다.

그래서 입남극을 할 때도, 들어가서 연구활동을 할 때도,

마지막으로 출남극을 할 때까지 항상 긴장의 연속이다.

정말 날씨가 잘 도와주지 않는 경우에는 근 2주를 못 들어가고 못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때는 기도메타뿐...


나는 이번에 단 하루도 딜레이 되지 않고, 목표한 연구활동도 다 마치고 돌아왔는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주 운이 좋은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푼타 아레나스의 마젤란 광장에는 동상이 있는데, 이 동상의 발에 키스를 하면 다시 여기에 돌아올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출남극 무사히 해서 다시 보자는 의미로 키스를 시도한다.


푼타 아레나스는 남극 관문도시인만큼 남극에 출입하는 여러 대형 선박이 출입한다. 이 금색 배는 중국의 배라고 했던 것 같다.


푼타 아레나스 공항에서 DAP 항공기를 타고 남극으로 들어간다.


DAP 항공기에는 나름 기내식도 있다. 닭가슴살 샌드위치, 과일, 절인 올리브, 치즈, 음료 등을 제공한다.


남극의 디스코팡팡… DAP에서 내린 후, 선착장까지 버스를 타고 5분정도 이동해야 한다.


세종과학기지에는 4대의 고무보트와 2대의 소형선박이 있다.





3. 출남극 및 입국


출남극과 입국의 과정은 입남극 과정의 반대의 경로로 돌아온다.

돌아올 때도 푼타 아레나스의 숙소는 2일간의 여유를 준다.

기상상황의 악화로 하루이틀 출남극이 딜레이 되는 경우, 급하게 숙소와 항공편 변경을 하면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출남극 하기 약 일주일 전쯤부터 나갈 준비를 위한 화물을 포장하기 시작한다.

연구소에서 세종기지로 화물을 보낼 때처럼, 리스트를 작성하고, 여러 행정절차들을 거친다.


화물을 수송하는 것은 AGUNSA라는 현지 대행사의 도움을 받아 진행된다.

연구소에서 보낸 화물이 세종기지로 들어가기 전에 받아두는 것과

세종기지에서 연구소로 보내는 화물을 미리 맡겨두고, 때에 맞춰 선적해 주는 일을 한다.


특히 세종기지에서 연구소로 화물을 보낼 때는 남극에서 채취한 연구 시료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포장과정이나 행정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칠레는 우리나라처럼 신속, 정확, 꼼꼼한 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에서 실수가 생기지 않도록 항상 유념해야 한다.)


각 연구팀마다 연구 목적이 다르므로, 입남극 시기와 출남극 시기도 다 다르다.

따라서 각자의 화물을 한데 모아두었다가, 연구활동이 모두 끝나는 3월 초 경에 모두 한국으로 내보낸다.

이렇게 내보낸 화물은 약 6~7월 경, 연구소로 도착한다.







다음 편) 펭귄이 길고양이보다 많은 곳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를 하고 남극에 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