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불만할 시간에 하나라도 더 하고 생각해보자
클라우딩 네트워크, AI 등의 발전으로 기계가 단순히 작업을 돕는 도구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와 같은 형태가 되어감에 따라 개발자의 수요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취업 깡패'라는 칭호로 많은 취준생들의 부러움을 사면서 동시에 개발자가 되기 위한 교육 코스를 밟는 사람들이 많이 증가했다고 합니다.(물론, 지금은 극적인 발전으로 인해 오히려 개발자가 다시 필요 없는 상태로 가고 있다고 하지만요...)
심지어는 '노베이스', 즉 컴퓨터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 개발자의 길로 뛰어들어 성공하는 사례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분명 케이스는 존재하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특히 개발자는 디자이너처럼 수상경력뿐만 아니라 자신의 특장점을 보여줄 수 있는 '개인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결과를 도출해 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개인 프로젝트는 다른 개발자들에 비해 내가 어느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얼마나 독창적인 생각을 하며, 얼마나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교육 등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많고 시작을 위한 진입장벽도 비교적 낮지만, 그 안에서 살아남기라는 미션을 또 다른 문제인 것입니다.
개발자들은 자신의 자유 시간을 할애하여 '개인 프로젝트'를 수행합니다. 디자이너와 같은 직업으로 치면 '포트폴리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개인 프로젝트 경험이 없는 개발자와 있는 개발자 중, 당신이 면접관이라면 어떤 사람을 뽑고 싶을까요? 더 나아가, 자신만의 스토리가 담긴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해 본 개발자와 그렇지 않은 개발자 중, 당신은 어떤 사람을 뽑고 싶을까요?
개발자들의 개인 프로젝트는 일반 취준생으로 따지면 결국 '스펙'입니다. 스펙은 사실 학력, 경험, 경력 등을 모두 아우르지만 신입 취준생에게는 경력이 보통 없으니, 학력과 경험이 주가 될 것입니다. 학력은 이미 정해져 있을 것이니 편입이나 재수를 하지 않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것이고, 우리가 보완할 수 있는 것은 경험 내지 가능하다면 경력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많은 사람들이 스펙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그 사람의 인성이나 태도와 같은 부분을 제쳐두고 '스펙'만 따진다고 하면 당연하게 부정적인 생각부터 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면접에서 인성이 올바른 사람인지 확인해 보기는 사실상 그 짧은 시간 안에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사실 스펙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어차피 면접장에서는 모두가 다 '좋은 사람'인 척, '올바른 사람'인 척,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인 척을 할 테니까요. 인성은 참으로 정성적인 지표라 상대적이기도 해서, 어떤 척도를 세운다는 것이 오히려 모순적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경험'과 '경력' 어떨까요? 물론 어떤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 정성적인 지표도 될 수 있지만, 수상내역, 참여기간 등 정량적인 지표로 사용할만한 것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기업들에서 경험과 경력을 눈여겨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게 다르게 해석되어 고오급 스펙을 지향하는 '스펙만능주의 사회'라고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그에 따라 누가 봐도 우와~ 할만한 스펙을 쌓는 것이 목표가 되면서, 남들보다 더 뛰어난 경험을 해야 한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2020년 잡코리아와 알바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약 40%에 달하는 취준생들이 스펙 쌓기에 강박을 느끼는 '스펙 강박증'이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스펙을 쌓는 본질에 대해 고민해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어서 어떤 스펙을 쌓아야 하는지 결정하지 못하고 마냥 이력서에 한 줄 더 채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표현하고 싶은 나라는 사람의 이미지와는 부합하지 않는, '잉여 스펙'이라고 하는 것들이 늘어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2020년에 잡코리아와 알바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구직자 약 31%가 잉여 스펙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1위에 해당하는 막연한 불안감, 3위 무엇을 준비할지 모르는 상태, 5위 직무 설정이 되지 않은 상황'
이 세 가지 모두 결국 자신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펙을 쌓기에만 급급한 마음에 생기는 현상들이라고 판단합니다. 즉, 내가 목표지점을 설정해야 우회전을 할지, 좌회전을 할지, 직진을 할지 결정할 수 있는데, 목표지점이 설정되어 있지 않다 보니 내가 방금 우회전을 했으니 이번에도 우회전을 해보자는 등의 잘못된 판단 근거와 행동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의 가장 큰 문제는, 하루하루 소중한 20대 시기에 의욕에 의거한 경험을 해보지 못하고 단순히 불안함에 휩싸여 남을 따라하는 데에 시간과 돈을 할애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들과 같은 시간, 같은 돈을 들여 같은 경험을 했어도 누군가에겐 유의미한 경험이 되겠지만 나에게는 결코 그렇지 않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결정하고 하는 경험들이 무조건 직무와 똑같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저는 연구 생활만 해봤기 때문에 행정, 법령, 사업 등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하나도 모르는 상태로 연구지원기관에 지원했습니다. 연구라는 틀 내에서는 같을지 모르나, 사실 전혀 다른 성격이라고 보면 됩니다. 실제로 하는 일이 아예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제 경험들은 하등 쓸모없어지는 것이 정상적이겠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했던지 간에, 회사가 하는 일에 내가 어떻게 기여하면 될지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연구물품 영업직에 지원하는데 내가 과순이/과돌이로 민원대응을 한 경험밖에 없더라도, 민원대응을 하면서 어떻게 해야 민원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았고, 이 경험이 내가 고객을 응대하는데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를 설득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작지만 훌륭한 경험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무엇을 했느냐' 보다, '어떻게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직무에 필수적인 자격증 등 지원의 기본요건인 스펙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사실 저는 사기업은 다녀본 적이 없어서, 사기업의 풍토는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곳은 휘황찬란한 스펙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공공기관은, 삐까번쩍한 스펙은 필요 없는 것이 팩트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저는 단 한 번도 합격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사회생활을 오래 한, 직책을 끼고 있는 분들에게 '신입사원에게 가장 원하는 역량이 무엇인가요?'라고 물으면, 많은 분들이 '말귀를 알아듣는 것'이라고 답하셨습니다. 회사에서 말귀를 알아듣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저는 '어떤 일이 주어졌을 때,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이해하고 본인이 아는 선에서 논리적인 판단근거에 의해 그때그때 문제를 해결하나 갈 수 있는지'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에서 하게 되는 일(사업, 프로젝트 등등)에는 항상 '근거'가 있습니다. 그 근거를 필두로 아래와 같은 구조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1) 관련 근거: 이 일을 왜 해야 하는가/필요한가?
(2) 배경: 기존에는 어떻게 되어왔는가?
(3) 방법: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 얼마나 일리 있는 계획이 있었는가?
(4) 결과: 이 일이 어떻게 성과로 이어졌는가? / 실패했다면 왜 실패했는가? (수치로 나타내면 직관적이라 좋음)
(5) 고찰: 이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 이 성과에서 어떻게 더 나아갈 수 있는가? / 이 실패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가? / 향후 발전 방향은 어떻게 되는가?
이 흐름은 [면접 망하는 비법 1. 스크립트 만들기]에서 말했던 것과 동일합니다. 그리고 비단 회사뿐만 아니라, 논문을 쓰는 일 등 모든 곳에 통용된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스펙을 쌓고 경험을 면접장에서 풀어내는 과정도 동일합니다. 나의 경험을 묻는 이유는 내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계획하고, 움직이는지를 파악하기 위함입니다.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 논리적인 판단근거를 회사와 조직의 가치에 걸맞게 세우고 이행할 줄 아는 사람인지를 알아보는 시간인 것입니다. 사람마다 생각과 문제해결 방식이 다르니, 그 사람만의 문제해결 방식이 회사에 유용할지를 파악해야 뽑을지 뽑지 말지가 결정됩니다. 즉, 당신이 얼마나 대단하고, 남들은 하기 힘들고, 얼마나 비싼 돈을 들여 경험을 해보았냐는 결코 중요하지 않고, 내가 무엇을 경험했든지, 그 경험이 얼마나 평범하든지 간에 그 안에서 내가 어떤 문제를 어떤 생각과 스탠스로 해결해 보았는지를 면접관들은 듣고 싶은 것입니다.
결국은 콘텐츠 자체가 아닌 '스토리텔링'이 중요합니다.
제가 이 매거진의 맨 처음 글에서도 보셨듯이, 저는 '무스펙자'에 가깝습니다. 경험을 쌓을 시간도 없었던 것이 대학원에 들어가면 등교-집-등교-집이 일상입니다. 밖으로 나가서 멋진 경험을 쌓으래야 쌓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교수님이 학회 같은 곳에 갈 수 있는 재원을 주신다면 해볼 수 있겠지만, 저희는 코로나 때라 나갈 수도 없었을뿐더러 부유한 연구실은 아니어서 절대적으로 어려웠습니다.) 그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그저 하루하루 발생하는 문제들(그것이 연구적인 것이든, 인간관계적인 것이든)을 해결해 나가고 기록하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첫 회사 최종면접을 볼 때 4명의 지원자와 함께 들어갔는데, 다들 스펙이 훌륭했습니다. 그 안에서 제가 얼마나 작아졌는지 일화를 풀어보자면, 질문 중 하나가 '비효율적인 문제를 효율적으로 업무 개선했던 경험이 있는지?'였습니다. 경쟁자들이 한 명씩 대답을 해나가는데 일본 랩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있었던 일, 다른 공공기관에서 일하며 민원업무를 해결하며 있었던 일,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있었던 문제를 해결하여 큰 상을 받은 일 등 모두 번쩍번쩍한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말했던 경험을 랩에서 있었던 그저 작은 일화였습니다.
신생랩에 있어 모든 규칙을 처음부터 정해야 하는 곳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연구비 관리였습니다. 산발적으로 물건을 주문하다 보니 연구비 사용 내역과 규모 파악, 물품 개수 파악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공용 구글 아이디를 만들어서 구글 시트에 관리했더니 이러한 관리에 더불어 재고, 구매 내역 등의 데이터도 통합적인 관리가 되어서 좋았습니다.
구구절절 늘어놓았지만 결국 '구글 공용 시트로 재고관리한 이야기'입니다. 해외 경험도 아니고, 경력이라고 보기에도 정말 어려운, 그저 아주 단순해서 일기장에 쓰기도 어려울법한 경험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면접관의 표정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았다고 기억합니다. 정말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작아져서 그렇게 느낀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후자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 답변에 꼬리질문이 달렸고 결과적으로는 제가 그 4명 중 유일한 합격자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면접 결과를 통해 많은 것들을 느꼈습니다. 사실 저는 운이 좋아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회사는, 적어도 공공기관은 '대단한 사람'을 뽑기보단 '고찰'을 할 줄 아는 사람을 뽑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논문을 써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마지막, 고찰(Discussion)입니다.
물론 결과 데이터를 만들어 내는 과정도 어렵고 가장 오래 걸리는 부분이지만, 결국 논문은 '교과서'가 아닌 '의견서'같은 것입니다. 어떤 논리적인 흐름에 따라 주제를 설정하고 검증하여 결국에는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 최종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결과(Results) 부분이 탄탄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기본이긴 하지만, 결국 과학적인 해석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고찰 부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찰은 정말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결과에 초점을 맞추곤 합니다. 하지만 결과를 잘 이해하고 더 발전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고찰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결국 고찰이 체화되어야 하나의 의견서를 오롯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저는 면접도 궤를 같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과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고찰에 의거한 설득의 과정이 없다면, 그 면접은 실패로 이어질 확률이 큽니다.
이 매거진 글 중 하나인 [면접 망하는 비법 1. 스크립트 만들기] 편에서 보여드렸던 템플릿을 꼭 활용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똑같을 필요는 전혀 없고, 각자의 편한 방식으로 하시면 됩니다.
본질은 동일합니다. 그 본질에 따라서만 진행한다면, 어떤 형식이든 문제없을 것입니다.
필살기의 첫 번째 요소는 '유사경험'이에요. 유사경험은 짧더라도, 관찰했던 기록물이 있어야 해요. 그걸 가지고 여러분의 언어로 얼마든지 면접 전에 재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중요한 건 '관찰을 했는가?' 첫 번째, 두 번째 '그것에 대한 기록물이 있는가?', 세 번째 '그 기록물을 가지고 내 나름의 생각을 정리했는가?'. 이 세 가지 때문에 유사경험이 중요한 겁니다.
이게 많을수록 사업과 산업에 대한 적응도가 높다는 것을 어필할 수 있어요. 그리고 면접에서 '나는 쉽게 이 일에 적응할 수 있다.', '전투력을 바로 발휘할 수 있습니다.'라는 관점으로 어필하시는 아주아주 중요한 필살기의 첫 번째 요소가 될 겁니다.
- 면접왕 이형 유튜브 [필살기 Step 1: 유사경험 (feat. 돈벌려고 했던 알바경험으로 면접을 붙는다고..?)] 중-
p.s. 제가 취준생 시절에도 도움을 많이 받았던 유튜버 ‘면접왕 이형’님의 콘텐츠 하나를 공유합니다.
https://youtu.be/cku8pgJqEvE?si=uzYEGUzVmjfK_OIP
영상 안에서는 어떤 성공경험도 ‘우기면 된다.’고 조금 과장(?)하는 표현을 하셨지만 어떤 경험이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식의 ‘본질’이 동일하기 때문에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시로 든 합격자님의 경험이 정말 누구나 할 수 있는 경험인데 본질을 잘 파악하여 퍼스널 브랜딩에 성공한 케이스인 것 같아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