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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슈가 Oct 28. 2023

10만 원은 적고 20만 원은 많아서

종합문예지 등단 및 발표 에세이(2023년 11월호 수록)


집 근처 마트 옆엔 농협은행이 있다. 어쩌다 주거래 은행이 농협은행이 되었는데, 그날도 귤이며 도시락용 김이며 양손 가득 장을 보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현금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은행 ATM기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떤 날은 통장에 이번 달 생활비가 얼마나 남았을지, 얼마의 현금을 뽑는 게 적절한지 생각하기도 피곤할 때가 있다. 촤르르~ 현금인출기가 입을 열고 내놓은 돈을 보니 만 원짜리로 15장이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10만 원도 아니고 20만 원도 아닌 또 15만 원이다.

 

"네 아빠. 괜찮아요. 그것만으로도 감사한걸요. 그리고 다음 달부터 못 부치신다고 해도 괜찮아요. 요즘 과외 자리가 얼~마나 많은데요. 네 아빠 들어가세요."

 

수화기 너머로 아버지가 힘없이 고개를 떨굴 생각을 하니 기분이 다운될 것 같았다. 도리질을 하며 일부러 보폭을 크게 해서 걸었다. 발걸음은 학교 안 학생회관 건물 현금인출기로 향하고 있었다. 통장에 입금으로 찍힌 금액은 15만 원. 남은 총 잔액은 15만 3000원. '10만 원도 아니고 20만 원도 아니고 하필 15만 원이지? 이걸로 어떻게 한 달을 버티라고. 지금 밥주는 하숙집 하숙비도 20만원인데... 점심값만 한다고 해도 보름 간신히 버틸 걸.‘

 

이걸 아버지가 모르실 리 없었다. 하지만 이런 푸념은 사기만 떨어뜨릴 뿐이라고 이내 도리질했다. '나는 지금 과외도 하고 있고 과외를 하나 더 구할 수도 있으니 괜찮아. 아까 아빠에게 씩씩한 목소리로 전화드린 것 잘했어. 밥이나 먹자.'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에게 15만 원의 의미가 무엇인지. 남들은 자식들 뒷바라지 다 끝냈을 나이에 시골에서 서울로 대학교 간 막내딸 교육 시키느라 아버지는 지쳐있었을 것이다. 내심 딸이 지방 국립대의 국어교육과에 가서 선생님이 되길 바랐지만 막내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기어코 경험해 보겠다며 우겼다.

 

아버지는 평생 큰돈을 버는 재주는 없는 분이었다. 그저 성실함으로는 동네에서 정평이 났다. 학비는 어떻게든 마련해 주셨는데 문제는 다달이 용돈이었다. 뭘 해도 혼자서 해내는 막내딸이 용돈 같은 건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안 보낼 수는 없으셨을 것이다.

 

시골에서 미수금 많은 작은 가게를 운영하셨던 아버지가 아무리 대학생의 씀씀이를 모른다 하더라도 한 달에 10만 원은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쯤은 짐작하셨을 것이다. 그렇다고 매달 20만 원은 힘에 부치셨을 것이다. 15만 원. 그렇게 정해진 숫자였다. 아마도 아버지의 최선이었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다 그만두고 지금은 사업을 하고 있으면서도 현금을 인출할 때는 나도 모르게 15만 원을 뽑곤 했다. ’10만 원도 아니고 20만 원도 아닌 왜 하필 15만 원이야?‘ 라는 물음을 나 자신에게 하고 있었다. 현금으로 가지고 다니기에 10만 원은 좀 적었고 20만 원은 좀 크다 싶은 게 이유였지만 더 깊게 파고들어가면 대학생 때 아버지께 받은 용돈 15만 원은 나에게 떼려야 뗄수 없는 상징적인 금액이 된 것이다.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나도 이제는 그 15만 원에서 벗어나고도 싶다. 그렇지만 늘 확인해 보면 액수는 15만 원. 

 

그러던 어느 날 좋아하는 소설 중 한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한바탕 소동이 정리되는 기분이 들자 사내에게 고마움이 물결치기 시작했다. 다른 노숙자들에게 맞아가면서까지 파우치를 지킨 것부터 주인에게 잘 돌려주기 위해 꼼꼼하게 확인을 한 것까지, 사실 어지간한 책임감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행동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사내가 끙, 소리를 내며 일어섰다. 염 여사도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지갑에서 현찰 4만 원을 꺼냈다.

 "여기요" 건넨 돈을 보고 사내가 망설이는 게 느껴졌다.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소설 속 주인공 염 여사가 자신의 지갑을 찾아준 사내 독고에게 감사의 의미로 건넨 돈의 액수는 4만 원이었다. 작가가 택한 액수는 3만 원도, 5만 원도 아닌 4만 원이었다. 이 대목을 읽고 처음에는 풉- 웃음이 나왔다가 생각할수록 의아해졌다. 

 

작가가 그 대목에 3만 원도 아니고 5만 원도 아닌 4만 원이라고 쓴 이유가 있을 것만 같았다. 자신의 지갑을 찾아준 노숙자에게 건네는 사례비가 3만 원은 좀 적고 5만 원은 좀 크다고 생각해서일까? 소설가도 어쩌면 나와 같은 그러한 고민 했을 지도 모른다는 짐작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위안'이었다. 그도 나처럼 그렇게 세세히?

 

나의 이런 예민함과 섬세함 사이 어딘가의 감성은 한편에서 나를 괴롭히곤 했다. 5만 원을 찾든 10만 원을 찾든 무슨 상관이냔 말이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필요한 돈 찾고 사는 게 마음 편하게 사는 인생 아니냔 말이다.

 

무의식적으로 15만 원을 뽑아놓곤 대학교 때 친구들은 고급 중식당에 가서 잡탕밥을 먹을 때 나는 학생 식당에서 식판에 서둘러 밥 먹고 일산 가는 광역 버스 잡아타고 과외 다니던 그 때 기억을 떠올린다. 아버지가 부쳐준 15만 원을 더는 떠올리지 않고 살 수 없을까? 생각하곤 했다. 

 

그렇지만 나의 이런 예민함과 섬세함도 쓸 데가 있음을, 글로 먹고사는 작가가 되면서 차츰 알게 되었다. 이런 나의 감성은 글 쓸 때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도움 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시시콜콜한 것들을 하나하나 보고 느끼고 받아들이며 신이 나서 글 쓸 수 있는 것도 능력이면 능력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김호연 작가의 4만 원에서 위안과 더불어 용기도 얻은 것이다.

 

15만 원, 어차피 잊고 살 수 없다면 강점으로 승화시켜 보기로 했다. 10만 원은 적고 20만 원은 많아서 15만 원을 뽑는 나에게 공감할 독자들이 어딘가에, 그것도 많이 존재할 것만 같다. 내가 쓴 글 누가 읽어주건 말건, 좋아하건 말건 일단 쓰자. 글 쓰는 작가로 돈 많이 벌어 잘 먹고 잘 사는 건 일단 많이 쓰고 나서 생각하자.

15년. 10년은 짧고 20년은 기니까 15년은 써보기로. -끝-


문예지 등단 작품부터 발표 신작들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결말을 알수 없는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나는 캄캄한 가시밭이 인생이라면 무수한 일들 중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을 주는 일들만을 모아 글로 쓰겠습니다. 캄캄한 밤하늘에 별로 수놓듯 한편씩 써내려가 그 밤을 밝힐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 별을 보고 누군가는 따듯함을, 누군가는 의욕을, 누군가는 희망을 얻는다면 그 또한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쓰겠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묵묵히 쓰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가혜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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