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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Feb 21. 2021

선배

나도 선배가 된다




승준생들을 코칭하며 수없이 들어온 질문들. 그중 많은 부분이 '선후배 관계'에 대한 소문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기업문화가 정말 과하게 수직적인지, 소위 블랙리스트라는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는 선배들은 도대체 어떤 행동, 이유에서 무시무시한 대상이 되고 말았는지, 세세하게는 대한항공에서 후배에게 선배 스타킹 빨래를 시켰다는 것이 과연 사실인지, 나이가 적은 선배에게도 무조건 언니라고 불러야 하는 것인지 와 같은 것들까지.



어떤 질문들은 학생들이 미래를 결정하는 데 있어 사실관계를 확인시켜 줄 필요가 있는 것들이라 각오를 단단히 다지라는 내용으로 답해주기도 했고, 그 외의 것들은 대부분이 터무니없는 소문과, 일부 선배들에 국한되는 이야기라 웃고 넘어간 것들도 있었다.



늘 학생들에게 하는 이야기지만 승무원 사회도 결국은 보통의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니 100명 중 상식적이고 나이스 한 99명의 사람들이 있으며, 같은 이유에서 여타 사회와 같이 1명의 돌+I는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아주 적은 확률이지만 나도 그 귀하디 귀한 돌+I 선배들과 일한 경험이 있었다. 이를테면 본인의 윗사람에게는 한없이 상냥 상냥하지만 후배들에게는 싸늘 하디 짝이 없는 태도로 일관하는 선배, 신입만 열심히 괴롭히는 선배, 본인이 신입이던 시절 호되게 당한 것을 그대로 후배들에게 대갚음해 주는 선배, 손님이 앞에 있건 말건 후배에게 불같이 화를 내는 선배. 해외 체류비가 모자라다며 꼭 30불, 50불씩 빌려 가 갚지 않는 선배 등등. 블랙이라는 명칭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속이 까만 선배들 탓에 내 속도 까맣게 타들어가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승무원의 주된 업무인 안전 업무에 있어 수직관계는 승객의 생명과도 직결되는 요인인지라, 승무원 사회는 고작 입사 일주일 차이도 선후배 관계를 확실히 구분하는 곳임이 사실이다. 나쁘게 생각하면 어쩔 때는 손님보다 선배의 눈치를 보느라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웃픈 해프닝이 생기기도 하지만, 중요한 건 좋게 생각하면 선배와 호의적인 관계만 잘 유지하면 더할 나위 없이 빠르게 성장하고 배울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나에게도 멘토라고 불릴 만한 몇몇 선배들이 있었다.



가장 먼저 기억나는 선배는 항공서비스학과를 졸업해 위계질서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엄격하고 무서운 선배. 동시에 한 번도 틀린 말은 하지 않는 똑 부러지는 선배다.

'매 비행 만나는 손님 모두를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한 비행에서 손님 10명만 기억한다고 생각하면 최고의 서비스인이 될 수 있다.'

그 선배의 조언이었다. 다른 서비스 업계와 달리 단골손님이라고 해도 또다시 동일한 손님과 만날 확률이 희박한 것이 항공 서비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짧은 시간 동안 손님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손님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얼마나 서비스에서 중요한지, 차후 나의 업무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지 알려준 반드시 필요한 선배였다.



자기 관리의 중요성을 알려준 선배도 있었다. 늘 비행 후 골골대는 나에게 운동하는 방법, 시차에 적응하는 방법, 기내에서 어떻게 하면 몸이 덜 상하게 일할 수 있는지까지. 오래 일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해 준 선배. 정작 본인은 젊은 시절 그 노하우를 몰라 몸이 많이 상했지만 후배들만큼은 자신과 같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진 따뜻한 선배였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팀장들에게 책 잡히지 않기 위해서 어떤 것들을 잘해야 하는지 팀장 맞춤 팁을 정리해 준 선배도 있었다. 덕분에 신입시절 나는 타 팀 비행에서도 싫은 소리를 듣지 않고 일 잘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심하게 까인 적도 많다.) 그 외에도 해외 명소를 직접 가이드해주는 선배, 후배가 힘들어하는 일을 오히려 대신해주는 선배, 후배가 실수해도 본인이 책임지고 덮어주는 선배들까지. 운이 좋았던 것인지 내 주위에는 좋은 사람들이 참 많았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나는 스스로 무난한 승무원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누구에게는 최고의 동료일 수도, 최악의 동료일 수도 있다. 그러니 마찬가지로 함께 일하는 선배가 마음에 든다면 그 장점을 배우고, 반대로 저런 선배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선배의 단점은 내 안에 들이지 말자 마음먹으면 될 일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승준생에게 '선배'는 아주 중요한 주제다. 결국은 승준생이 승무원이 되고, 언젠가는 후배에서 선배가 되기 때문이다. 당장은 승무원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만 들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승무원이 되고 싶은가'이지 않을까. 입사 후 포부가 별것이 없다. 나도 언젠가는 선배가 된다. 어떤 선배가 되고 싶은지 생각해 보면 될 일이다.)



선배란 가십거리로 전락하기 좋은 자극적인 소재지만 승무원에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십으로만은 표현할 수 없는 존재다. 선배란 좋은 승무원이 되기 위해 신경 쓰지 않아야 할 존재이지만, 반대로 매 순간 신경 써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나를 최악의 선배로 만드는 것도, 동시에 최고의 선배로 만드는 것도 선배다. 승무원 시절 선배는 나에게 그런 단어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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