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이제 나도 못하겠다”
엄마는 내가 결혼을 생각할 때 즈음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서는 원래 그랬던 것처럼 동생이 엄마를 모시고 살았다.
어릴 때는 독서실 총무 차를 때려 부수기도 하고 여자아이들과 폐가에 있었다고 경찰서에서 전화도 오고 하면서 말썽을 부리던 동생은 군대에 다녀오고 많이 변했다.
가장 큰 변화는 엄마에 대한 특심한 마음이었다.
그전에도 엄마를 좋아하고 잘 챙겼었는데 엄마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커졌던 걸까?
엄마에게 좋은 것을 해주고 싶어 했다. 술 먹고 나서는 엄마를 위해서 강아지 인형을 사 오기도 했었다. 그래서 동생은 직장에 다니면 집을 나오고 이런저런 활동으로 바빠진 나에 대해서 원망하는 마음이 있기도 했다. 엄마를 잘 돌보지 않는다고...
아무튼 그렇게 치매 걸린 엄마도 살뜰하게 챙기던 동생이 더 이상 못하겠다고 했다. 사실 그전부터 어려움은 지속적으로 있어왔다. 엄마의 치매와 아빠의 방황으로 인해 뭔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정에서 동생은 괴로워했다. 엄마의 사랑이 그 많은 것들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긴 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기에 언젠가는 나에게 예상했던 고백을 하기도 했다.
“누나 나 정신과 다녀. 우울증 약 먹어”
그래도 견뎌내던 동생을 폭발시킨 것은 아빠와의 불화였다.
아빠는 뇌경색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하셨다. 그래서 치매가 있긴 하지만 신체적으로는 건강했던 엄마에게 이런저런 것을 요청하시곤 했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동생은 그런 아빠에게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다. 엄마를 부려먹고 함부로 대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갈등이 폭발했다.
동생은 아빠와 함께 살던 집을 나가고 싶었지만 엄마를 두고 갈 수 없어 괴로운 상황에 직면했다. 그러면서 아빠와 분리되려면 더 이상 엄마를 모실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외 다른 많은 것들이 작용을 했겠지만....
“누나가 모실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엄마를 이제 요양원으로 모셔야 할 것 같아”
많은 것을 생각한 듯한 표정으로 동생은 말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도 당황하긴 했지만 아직 요양원에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해야 할 것들을 다 못한 기분이었다.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걱정되는 것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우리 집에서 모시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나를 믿고 전적으로 지지해 준 남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피할 곳이 있었다. 나를 사랑해 주고 응원해 주는 남편이라는...
뭔가 이상적인 상황들이 생길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않았지만 현실은 더욱 처참했다. 엄마는 동생하고 지냈던 그곳을 벗어나면서 여러 가지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8살 6살 아이 둘과 치매엄마를 모시는 것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