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명 Dec 27. 2024

치매_휴지수집가

“으악~!! 이게 뭐야!!!”


치매 엄마와 함께 하면서 스스로에게 화가 날 때가 가끔 있는데 그중에 1-2위를 다투는 것은 깨끗이 빨았다고 생각한 빨래들을 세탁기에서 꺼내다가 휴지를 발견할 때이다. 

빨래할 옷에 휴지를 넣어 놓은 것은 엄마이지만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엄마에게 화를 낼 수 없어 이럴 때는 빨래 주머니 하나하나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악! 소리를 치고 싶을 만큼.... 


주머니 속에 휴지가 들어있는 채로 빨래를 완료하고 나면 일단 까만 옷들에 희끗희끗한 먼지들이 잔뜩 묻어있다. 그것을 건조기까지 돌렸다 하면... 빨래를 다시 해야 할 각오를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제는 나름 꼼꼼히 주머니를 뒤져서 휴지를 빼놓는다고 생각하는데 최근 엄마는 양말 안에도 휴지를 넣어놓고 옷과 옷 사이사이에도 휴지를 숨겨놓으셔서 주머니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엄마에게 치매가 시작되고 중기를 거쳐 최고조에 이른 현재까지 여러 가지 증상들이 있었지만 한결같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휴지 수집이다. 물론 현재는 휴지뿐만이 아니라 아이들 장난감이며 쓰레기까지 다양한 것들로 주머니에 가득가득 채우고 계신다.

휴지를 수집하는 것은 비단 우리 엄마에게만 나타나는 증상은 아닌 것 같다. 얼마 전에 있었던 데이케어센터의 보호자들 모임에서 한 보호자께서 최근 들어 아버님이 자꾸 휴지를 모으신다는 얘기를 한 것을 보면 말이다. 

모든 과정을 다 거친 엄마를 경험한 내가 나름 이런저런 얘기들을 해드릴 수 있었다.


나중에 데이케어센터 얘기도 한번 해야 하는데 엄마가 다니고 있는 데이케어 센터는 매우 인기가 많아서 대기가 많은 편이다. 나도 엄마 오시자마다 예약을 해놓고 몇 개월 뒤, 그곳이 있었다는 것을 잊힐 때쯤에 입소 연락을 받았었다. 

아무튼 이곳에는 99세 100세 장수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이제 60대를 막지 난 우리 엄마는 다른 분들과 거의 20년 가까이 차이가 나는 엄청나 막내시다. 그렇지만 치매 정도를 본다면 단연 우리 엄마가 일등이시다. 

그래서 주변에 치매를 겪는 가족을 둔 분들께 해주고 싶은 말이 많다. 


아무튼 엄마의 휴지 수집은 엄청나다. 

엄마가 동생 집에 계실 때 엄마를 보러 갈 때마다 TV가 있던 선반 위와 아래, 서랍까지 가득가득 채우던 휴지에 놀랬었다. 그래도 그때는 좋은 편에 속했다. 엄마가 새 휴지들만 모으셨으니까


엄마가 외출했다 들어오면 일단 주머니에 온갖 물건들부터 꺼낸다. 그런데 이것들은 엄마는 아주 소중한 보물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뺏어간다고 생각하면 엄마는 크게 화를 내셨다. 처음에 아이들의 장난감이며 준비물이 없어졌을 때 우리는 ‘왜 자꾸 물건이 없어지지?’ 했다. 그러다가 하나 둘 엄마가 가지고 있던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이제 아이들은 물건이 없어지면 “할머니가 가져간 것 같아요”했다.

정말 눈으로 확인한 것이 아니면 의심하지 말라고 하자 더 이상 아이들이 그렇게 말을 하진 않았지만 대범한 엄마는 아이들 눈앞에서 아이들의 것을 주머니에 넣곤 하셨다. 처음 멋모르고 “할머니 그거 제 거예요” 라며 가져가려고 했던 둘째는 할머니한테 맞는 일이 발생했다. 그 뒤로는 할머니가 무언가를 가져가도 뭐라 말을 못 하고 그 앞에서 할머니 손만 바라보고 있게 되긴 했지만...

그래서 옷 갈아입으시라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꺼내는 것이 필요하다


처음 엄마가 우리 집으로 오시고 나서 책상 가득가득 쌓이는 휴지를 보면서 남편은 철 없이 좋아했다. 어차피 그 휴지 어차피 우리 집에 있던 것이나 데이케어센터에서 가져오는 것일 텐데도

“이제 휴지 걱정은 없겠어~ 어머니가 이렇게 매일매일 가져오시니” 라며 좋아했다. 


그러나 엄마의 상태가 더 안 좋아지면서 엄마는 이제 사용한 휴지도 수집하기 시작하셨다. 그것을 남편에게 알려줬더니 더 이상 엄마의 휴지를 반기지 않게 되었다.


엄마의 주머니에 있는 것들을 꺼내면서 알 수 없는 엄마의 생각이 자꾸 궁금해진다. 엄마는 지금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 무엇을 갖고 싶은 것일까? 


요즘은 엄마의 휴지 수집이 조금 덜해지셨다. 아이들의 반짝이고 작고 귀여운 것들이 주로 주머니를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