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몸짓으로
나는 춤을 사랑한다. 시작은 7살 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린이집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기념 재롱잔치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는 게 신이 났다. 초등학생 때는 방과 후 수업으로 댄스스포츠를 배워 여러 번 대회에 나갔다. 그 나이엔 화려한 화장을 하고 무대에서 주목받는 게 좋았다. 중학교 체육대회 때는 빅뱅과 시크릿 같은 아이돌 그룹의 노래에 맞춰 춤을 췄었다. 그때 나는 거의 센터였고, 안무를 잘 따라 하지 못하는 친구들을 붙잡고 알려주는 역할이었다. 대학생 때는 또 어떤가. 대학교 1학년 OT 때, 집과 학교가 가까운 동기들끼리 모여 여자친구의 ‘시간을 달려서’를 췄고, 그 이후로 나는 춤을 좋아하는 애로 알려졌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춤을 굉장히 잘 추는 사람인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춤을 좋아하지만, 잘 추지는 못한다. 이걸 처음으로 느낀 건 춤을 보는 눈이 조금 더 올라간 고등학생 때다. 그저 동작을 따라 하고 빨리 외우는 것만 잘할 뿐, 유려한 춤선 같은 건 내게 없다는 걸 알아버렸다.
그래서 초등학생 때 이후로 나는 춤을 배울 기회가 생기면 무조건 피했다. 대충 동작을 따라서 할 줄만 알고, 디테일한 동작을 소화할 수 있는 기본기가 없다는 걸 들키기 싫어서였다. 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방송댄스부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나의 훌렁거리는 몸짓을 사랑할 자신이 없었다.
이번에 춤을 배울 용기를 내게 된 건 친구 L덕분이었다. 그도 춤을 좋아해서 원데이 클래스에 종종 참석하곤 했는데, 이번주에 NCT U의 ‘배기 진스’를 배운다며, 같이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는 가볍게 질문했지만 나는 미끼를 덥석 물게 됐다. 춤을 잘 추지 않아도 된다는 L의 독려가 있었고, 예전과는 다르게 전문가에게 배우면 내 춤이 조금 더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일기도 했다. 며칠 고민 끝에 나는 배기 진스 원데이 클래스 수강 신청을 하게 됐다.
그리고 오늘, 대망의 첫 수업이 있었다. 방송 댄스를 아예 처음 배운다는 나에게 선생님은 그러면 조금 어려울 수 있다고 염려했다. 그럴 줄 알고 릴스를 미리 많이 보고 오긴 했는데, 나는 이 대답을 삼킨 채 그러게요, 했다.
본격적으로 첫 수업이 시작됐다. 당연히 후렴구부터 배울 줄 알았는데 재현의 파트부터 배워서 조금 당황했다. 둠칫둠칫 열심히 따라 하다 보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열이 올랐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다’라는 관용어가 여실히 체감됐다. 에어컨과 선풍기가 빵빵하게 틀어져있었지만 온몸이 땀에 젖었다.
아주 느리게, 살짝 느리게, 원래 속도로 연습을 반복하다 마지막엔 영상 촬영을 했다. 선생님만 보며 따라 추느라 몰랐는데, 영상 속 나 자신은 너무… 볼품이 없었다. 무척추동물처럼 흐느적거렸다. 나는 분명히 힘을 많이 준 것 같은데 영상엔 하나도 안 담겼고, 그루브를 실어서 춘 것 같은데 그저… 여기까지만 하겠다.
레슨이 끝나고, 선생님은 나에게 “되게 열심히 추시던데요. 얼굴이 다 빨개졌어“라며 부채질을 해줬다. 잘 춘다는 말은 빈말로도 없었다. 살짝 씁쓸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골몰해 왔다. 수학이나 과학 같은 것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독서나 글쓰기, 국어 같은 것에 몰두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가 무엇을 못하는 것 자체가 꼴 보기 싫어서 애써 외면해 왔던 것 같다. 숙련되지 않은 자신을 사랑하기란 어쩜 이렇게 품이 드는지.
단 한 번의 수업으로 춤 실력이 늘지는 않았다. 당연히. 그럼에도 난 춤이 좋다. 여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