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엎질러진 우울감으로 연인을 적시려는 마음

비밀; 사랑할 때 우리가 감추고 있는 속마음

by 박철우

문득 엎질러진 우울감으로
연인을 적시려는 마음


이른 점심시간. 식빵 한 봉지를 사다 우걱우걱 씹어 먹고 있는데, 이거 참. 빵은 맛있고, 마음은 울적한 거 아니겠어요. 입 속으로 밀려들어온 밀가루 한 조각은 달콤했지만, 목 뒤를 타고 마음으로 가서는 왜 자꾸만 매운맛이 되는지. 그 뜨거운 맛으로 나는 왜 눈물이 나려고 하는지.


집에 들어가는 길. 어제도, 어제의 어제도 지났던 길을 걸으면서, 오늘만은 집에 들어가지 않는 것에 대해 잠시 발검음을 멈추고 생각하기. 여기를 보아도 저기를 보아도 어쩌지 못하겠는 마음. 감정의 주인이 되질 못하고, 영원히 세입자로 남아 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은 다 예고 없이 현관문을 두드리는 이름 모를 손님들.


저녁거리가 마땅치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손님이 찾아온다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가까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재촉하는 일. 나의 다급함을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람, 그녀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밝았다. 전화가 연결되는 동안 귓가에 들려오던 통화 연결음만큼, 그녀의 목소리는 경쾌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우울함과 두려운 감정으로 당신의 마음을 흠뻑 적셔야겠다는 아주 나쁜 생각. 위로를 맡긴 적 없으나 위로를 돌려받고 싶어 하는 사람의 마음은 이기적이다 못해 나무에서 발밑으로 툭 떨어진 밤송이만큼이나 따갑기도 하다.


당신의 마음에 아주 해로운 한 줄을 긋고 싶어요, 라고 말할 수 없으니 고작 한다는 말은 까칠하게 말하기, 말꼬리 잡기. 그 유치함으로 스스로가 더욱이 한심하게 느껴질 때까지 멈추지 않는 미련함, 당신도 한번쯤 해봤음직한 일들일 것이다.


결국은 다툼이 되었고, 서로는 상처를 입었다. 끊어진 전화기를 바라보거나, 창밖에 내리는 비를 보며 울렁이더라도, 창에 비친 자신은 두 사람이 아닌 혼자. 사랑은 둘이서 하겠지만, 동시에 혼자서 견뎌내는 연습이라 믿는다.


잠깐 마음으로부터의 이사가 필요했다. 책상의자를 밀고 종이와 연필을 꺼내 앉아 서걱서걱 적은 문장이곤 고작 ‘당신을 아프게 하는 일이 나의 취미인가’ 정도이겠으나, 이마저 하지 않는다면, 정말로 이유 없이 당신을 미워할지도 모르겠으니.


‘영원’이라는 광활하고 끝이 없는 무한한 시간도, 자칫 한 순간에 절단 될 수 있음을 실수로 배워버린 나는, 미세하게 흠집 난 영원이란 시간의 줄이 끊어지지 않도록 같은 색의 색연필을 들고 금이 간 자리를 채우는 일을 자주 한다.


창밖의 눈이 저벅저벅 슬퍼지는 때, 그럴 땐 시를 쓴다. 그 시로 당신에게 가닿고 싶었던 마음은 진심이었고, 조금 전에 했던 말은 실수였음을 고백한다. 영원이라는 말이 아주 오래 온기를 잃지 않도록 지켜내는 일도 사랑할 때 주어지는 하나의 임무다. 지난 날, 아프게 지은 시들을 모아 시집<너에게 편지를 쓴다>를 출간한 것은 비밀에 부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