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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숲으로 가는 바람]

{숲에서 체온의 언어 찾기}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시인]

1. 시작에 들어가며     


시는 언어의 소리가 아니라 사물의 획득이라 한다. 왜냐하면 그 사물은 언어와 일체화를 이룰 때 시인은 단지 언어의 매개자로 기능을 수행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때문에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말은 결국 사물과 이미지의 연관을 일체화-

이를 이루고 완성하면서 시의 맥을 짚고 정서를 찾는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시는 어디서 오는가?


시의 능력은 얼마만큼이고 시의 효용 가치는 인간의 가슴을 얼마나 따스하게 위무(慰撫)하는가?

또한 현재 과거 미래까지 안목을 보는 종합된 상상의 그림인 것이다. 

산문과는 다르듯이 보편성의 그릇에 담아 독자를 향해 얼굴을 내민다.           

물론 개인의 고백이라 해서 자기만의 암호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상식의 기준 잣대를 갖추고 소통이 될 때, 시의 이름은 친밀한 행보로 세상을 밝게 비추는 것이다. 그렇기에 심리적인 내면을 그릴 때 체온의 담는 풍경화를 그리는 작업이 시일 것이다. 


그러나 산문은 현실을 리얼리티 하게 그린다는 점에서 시과 비교할 수 없는 특성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예술은 자신을 감추는- 낯설게 하기라는 기법을 예외로 하지 않기 때문에 심리적인 내면의 통찰이 필요한 소이인 것이다.     

물론 대상을 나로 끌어들여 동일화를 이루는 방법에서 시는 일정한 어조(語調)-

즉 소통의 대화이다.

이를 담화(Discourse)의 양식- 화자의 의미와 감정 혹은 의도를 일컫는 말로 총체적인 특성을 찾아 나서는 일은 persona 즉 탈을 만나는 데서 발생하는 감정의 반응을 벗겨 보아야 한다. 그러나 감정은 독자에 따라 다른 수용의 특성을 내장할 수도 있고 또 같을 수도 없다. 시인도 개성이 있지만 독자의 수용 또한 개성이기 때문이다.      


숲으로 들어가 언어 찾기     


시는 원칙적으로 따지자면 자연의 숲을 만드는 행위일 것이다. 그것도 의미의 숲을 만드는 일은 시인이 생각하는 의식과 실제의 건축물-

숲의 모습은 다르게 나타난다. 근거리와 원거리에서 느끼는 사고의 차이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시인은 고도의 건축사라는 말을 헌증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든다면 시의 의미는 건물이며 이 건물의 주변을 치장하는 것은 돌과 나무와 건축사의 뇌리에서 나온 미감일 것이다. 

한 편의 시에는 이러한 조망의 모든 요소가 들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정인진의 생각의 숲에는 이런 건축물이 들어 있으며 거기엔 사람이 살고 있는 풍광인 듯하다. 얼마나 다정한가 그리고 얼마나 아름다운 가는 전적으로 정인진이 그리는 상상의 공간인 셈이다. 독자는 이를 감상하는 권리가 있는 것이다,    

 

1) 봄의 언어      


시 여러 편 중 『봄 편지』 『서곡 찬가』 『노을』 등이 있다.

이는 봄 의식이 시인의 내면세계를 장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약동, 혹은 희망, 다이나이믹한 의식, 그리고 로맨스 등 젊음이라는 정서를 시의 재료로 사용하고 있음을 뜻한다. 물론 거울 강, 가을은 10월의 밤, 그루터기, 가을빛 등 몇 편인데 비해 봄이 압도적인 이유는 시인의 정서가 봄을 지향하거나 특별한 이미지로 확정하고 삶의 지속성과 상곤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봄옷으로 치장한 바람이 

해금강을 찾아와 

강 오리를 묶어놓고 

마른 갈대 깃을 끌어 신나게 춤을 춘다.     

와락 떼로 몰려온 바람이

나의 옷깃을 들치며 실랑이를 벌이고

바람이 끄는 대로 정신없이 돌다가

몸살을 앓는다.     

왕버들 허리를 감고 

물비늘을 돋우는 바람

꿈만큼 물이 올라 움이 튼다.     

바람은 춤이고 봄이며 꿈이다.   

  

          [봄의 세상중에서        

  

봄이 가득함으로써 신명을 돋우는 시심의 발동이 역력하다. 

왜 그럴까?

이는 시심이 안으로부터 솟구쳐 오르는 에너지로 의해 자연스레 약동하는 봄의 정서를 부추기는 정서인 것 같다. 누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나오는 바람에 의해 봄의 신명이 돋워지는 자발성의 에너지가 오른 감성이다. 물로 이 에너지의 유인은 바람에 의해서 지상의 배회를 감행한다. 

『신나게 춤을 춘다.』의 1연에서 옷깃을 만드는 바람의 광분이 『몸살을 앓는다.』는 봄의 터널 속으로 깊이 들어가며 점차 봄은 세상을 뒤엎으면서 한 가지의 통일을 위한 채색을 준비한다. 

『왕 버들 허리를 안고』의 육감적인 무드를 끌어와 바람과의 결합에서 탄생되는 『움이 튼다』와 생명의 신비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결국 바람의 역할에 의해 봄은 완전히 세상을 장악하는 신비의 정경이 전개되는 것이다. 

『바람은 춤이고 봄이며 꿈이다.』의 마지막에서 봄의 완성을 지향하는 정점에서 시인의 마음 또한 동화되는 일체화의 이르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입춘 지나고

살 바람이 실려 오는 

봄을 찾아 

언덕에 서 있다.     

낯선 듯 낯익은 

청매 홍매 산수유가 

봉긋이 입 오물거리며 

밤새 쓴 편지를 읽는다.


살포시 다가서는 향기에

잠 꼬리 놓쳐버리고

까맣게 언 가슴 하얗게 열린다.  


         [봄 편지중에서     


실바람이 가득한 화평의 무드를 조성하며 부드러움이 유익한 바람에 의해 다가온 편지를 읽은 홍매 청매-

이는 시인에게 다가온 봄소식을 의인화의 기교로 변화하여 편지를 읽는 화상이다. 물론 봄소식이고 이들이 향기로 다가들 때, 향기는 얼었던 가슴을 녹이는 순간 마음이 열리는 색채-

하얗게 순수로 포장된다. “까맣게” 가 “하얗게”로 변하면 이는 생명의 이름이 열리는 순간이고 삶의 전환을 받아 드리는 구체적인 암시로 다가든다. 봄은 점차 시인의 의식을 가득 체우는 이미지일 뿐만 아니라 삶의 지속을 화려함으로 채우려는 정감이 발동되는 듯-

아울러 봄은 꿈을 꾸는 상상의 여백을 넓히는 계절로 일정한 거리에서 바라보는 박용을 하는 것 같다.   


터지고 벌어지고 찢어지는 

전쟁터     

내 봄 

여물지 못해 

참전을 못한다    

 

          아직도 멀었어』 중에서     


시인에게 봄은 가장 의미 있는 꿈을 꾸는 계절이자 생명의 용약을 가져오는 계절이지만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바라보는 거리감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아직 멀었어』에서 모든 사물이 봄기운으로 불타고 있을 때 정작 시인은 용감하게 자신을 던져 뛰어들지 못하고 그냥 바라보는 이유-

제약과 한계를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부적으로는 봄에 신명을 갖고 있지만 정작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한계 앞에 시적 화자는 머물고 있다. 아마도 삶의 제약 혹은 그런 환경적인 요소가 행동을 만드는 심리적인 현상일 것 같다. 

때문에 정작 화려한 봄을 그냥 바라보는 즐거움, 꿈꾸는 일로 혹은 향기를 감상하는 일로 지나치는 아쉬움이 시인의 법인 것 같다.      


2) 가을 그리움      


시인의 시에 편지의 시가 많이 나온다,

아침을 역고 온 편지를 받는 『행복』과 시인이 직접 쓰지 않고 가을비에 의해 쓴 『가을 편지』 홍매, 청매가 쓴 편지를 읽는 『봄 편지』 등 편지의 형태는 시인이 상대를 향해서 쓰는 적극성의 사연이 아니라 보내온 것을 읽는 소극성의 정서가 시심을 말한다. 이는 시인의 성품이면서 내면으로 향하는 정서를 확인한다는 점이다.      


설익은 가을에 

앉을자리가 어줍어

어느

창가에 서성이는 바람 짓이다가     

나의 곰삭은 그리움만 건드려 

애절한 몸부림을 치게 하더니

그예

풋 가을 

몸살을 먼저 안겨주고 있다.   

  

                 [풋 가을중에서     

   

“어줍어” 와 바람이 “서성이는 짓” 등의 행위가 다음 단계인 시인의 정서를 흔드는 것-

그리움을 부추기는 일로 정리되는 듯하다. 그리움이 몸살에서 진전될 때, 가을의 무드가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바람과 가을의 “풀벌레”의 소리에서 촉발된 시인의 감수성이 그리움을 불러오는 일이 가을 편지로 전환되는 것이다.     


귀뚤이 

울음으로 

밤을 지킨 그리움     

노을 진 

가슴마다

가을비로 쓴 편지      

나들목

신호등 아래

수북이 쌓인다.     


                        가을 편지』중에서    

 

시조의 패턴은 일정한 형식 속에 정서를 펼칠 때, 언어 및 탄력의 팽창적 의미의 확산을 가져와야 한다. 

한계의 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칫 형식 논리에 빠질 위험이 있지만 3, 4음의 연속은 곧 우리 민족의 정서에 가장 합당한 리듬으로 체취에 맞는 형식의 시인 듯하다

시의 리듬을 중시하는 특징이 시조의 운율을 체득한 데서 그의 시적인 또 다른 면을 보는 셈이다. 귀뚜라미의 울음은 가을의 청취를 나이브하게 만들고 처연한 마치 처풍고우(凄風故友)의 서글픔을 불러온다. 

그리움의 체온, - 따스함이 열망되는 계절적인 특징이 시인의 정서 속으로 다가온 듯하다.

이는 울음이 그리움을 불러오고, 이 그리움은 편지로 삭여지면서 낙엽이 수두룩이 쌓이는 형상으로 그리움의 높이와 비례하는 느낌이다. 

불빛이 주는 무드는 처절한 고독을 더욱 아프게 하면서 말이다.   

『물소리』 『그리움』 등이 많지만 특히 시인은 자연의 시적 정서는 자연의 음을 터득한 소리로 기득 한 질서를 융합하여 상징으로 일체화를 이룬 이름일 것 같다.     


3. 에필로그     


인간도 자연의 일 부 이 듯 시 또한 자연의 일부로 귀환하는 것이다. 

치밀한 정서의 편린들을 모아 조합하는 기교에는 날카로운 비유의 기교가 돋보이고, 자연을 육화 하는 조화의 묘미는 부드럽고 순수함으로 포장된 이미지가 소리로 전환할 때, 정서의 확장은 더욱 친밀도를 높이는 것이다.     

봄 의식이 주요 모티브로 작용하면서 시인의 내면 의식을 펼치는 방법이 안으로 삭이는 감성의 줄기가 안온하고 따스할 뿐만 아니라 언어의 탄력을 받아 확대 재 생산하는  정서가 언어 마감으로 다가온다.

봄 이미지의 시인이고 이는 내성적인 성품이 주는 부드러움의 진원이 그리움으로 편지로 받아 읽으려는 정적인 시인으로 자연의 조화를 아는 시인이라 할 수 있겠다.

더 이상 시평을 할 수 없는 깊숙이 박힌 내면의 인자가 있는 시인이라 하겠다.       


2024. 06.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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