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한 시간>
지난한 일 앞에 대단한 신기루가 끌고 가고 파라다이스가 있는 줄 일았다.
산다는 것이 그렇게 신기와 이상과 환상이 결합으로 뭉쳐진 이들이 이끌고 가는 것으로 상상의 풍선을 따라 혹은 높이 쳐다보면서 살아왔다고나 할까?
물론 상상은 아름답고 상상의 힘에 이끌려 오늘에서 내일로 가는 행보가 이어져 왔음도 사실이다. 빛나는 로맨스가 내 것처럼 친근했고 애절한 사랑의 로망도 다가오는 것으로 추측한 세월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이름들은 항상 허무하게도 내 곁만을 스치면서 지나는 것 같을 때 다시 풍선을 띄우면서 언덕을 혹은 계단을 넘어왔다. 속는 줄 알면서도 속고 속아 사는 것이라 당연히 체념을 내뱉으면서도 또다시 두리번거림을 지속하는 바보의 행진이 다름이 아니다.
살아가노라면 폭풍과 맞서는 일이 더 많은 줄 알면서도 말이다. 생의 문제는 해결이 아니고 함께 도정을 거치면서 더불어 가는 일일 뿐이다.
산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누구나 꿈꿀 권리는 있고 또 그래야 험난한 난제 앞에서 살아갈 수 있고 또 다른 큰 산맥이 가로막아도 앞으로 갈 수 있고 무탈하게 하루를 넘기는 일이 굴비 엮듯 일정한 모양을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유추가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어디 희망가만 부르는 일이 있던가?
오히려 절망과 아픔에 더 자주 희망의 끈을 놓는 일이 많을 때면 접어야 하는 아픔이 연기를 피울 것이다.
돌아보고 돌아보아라. 지난날들의 표정이 어떤 모습으로 흉상(胸像)이 품목 인가를-
아무래도 후자에 모습이 인생의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슬픔의 벌판을 힘겹게 걸어오는 대다 수 사람들은 대부분은 화려하고 넉넉함보다는 찢기는 아픔과 고통과 신음으로 비빔밥이 된 눈물과 통곡의 계곡이 깊을 것이다. 이 또한 돌아보면 너무 아름다움이 그윽한, 이른바 융기의 케넌 (canyon)이 전개되는 것이 돌아보는 일의 몫이다.
미국 서부 그랜드 케넌과 나이아가라가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듯 험난한 인생 여정도 돌아보면 감동을 주는 이름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문제는 앞으로 무슨 성과를 달성하는가의 마지막 구축의 문제일 것이다.
예술의 기능은 이런 아픔을 위로하고 앞으로 길을 인도하는 노래일 때 임무가 달성된다고 믿는다. 자기 고백의 엮음을 어떻게 감동적으로 전시할 것인가는 디스플레이를 해보라는 뜻이다.
인생은 가변적으로 쇼윈도(show window)에 진열된 상품이라면 말이다.
기억도 없고 내가 배운 일제 강점기 시절, 6/25, 남침 전쟁의 흉측한 여파에 밀렸던 이후에 삶의 파랑들, -
거기서 살아남아야 하는 고달픔의 여정, 새마을 운동을 시작하며 삶의 고독이 과연 {사치한가?} 조부, 조모, 밑에 집안의 고독, 그리고 언감생심이었던 무질서한 생활에서 괴팍한 성격으로 인한 시절이 후회가 앞을 가리는 지금 미안함의 목록 등등 화려하다.
사실 이러한 시절에 운명의 빛이 글이었고 이를 통해 보람과 긍지를 건져 올린 소득은 나를 생의 마지막까지 지켜 줄 수호의 이름일 것 같다.
비록 은유라는 의상을 걸치고 있을 지라도 속 깊이에는 결국 나의 모습이 투영된 기록일 뿐이라는 결론이다.
뒤틀린 인간성을 바로잡고 절망, 상처 난 마음에서 일어나 상상의 나래로 나가야 하는 염원의 노래가 있었기 때문에 늦은 세월에 좌고우면(左顧右眄)의 여지가 없는 선택이 시와 비평 칼럼이었다.
시는 나를 정화하는 이름이었고 비평은 文事原大學, 에서 보조의 역학을 한 것이 시의 길을 재촉하는 역할이었으며 현실을 꼬집는 칼럼을 쓰는 것이 내 길을 재촉한 그림자이기도 했던 것은 사실이라-
그러나 오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에 방점을 두고 싶다.
그 어느 것이나 모든 것은 지나가고 걱정은 뒤를 따르느라
허겁지겁 쌓이는 하루는 그렇게 갔다,
지나는 것은 가볍고
오는 것은 무거운
날마다 맞이하는 가락은 신명을 잃었고
근심이 무늬를 놓고
다시 떠나가는 의무와
다가오는 표정을 그리는 마음엔
이미 황혼조차 낯설던 밤이
자리를 편다 해도
돌아보는 것은, 모두 묵언의 풍경화일 뿐,
{걱정을 내려} 중
모든 것은 지나가고 돌아보는 눈에는 아름다움으로 수채화를 그리는 일이 연결될 뿐,
살아가는 것은 그래서 아름다움으로 노래하는 예술이 필요한 소이(所以) 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돌아보면 내 삶의 계곡도 관광객이 아무도 없는 그림 -
그러나 사람 팔자는 뒤웅박이라 누가 알겠는가.
먼 훗날 어느 한가한 탐험가가 대박처럼 광맥을 발견할 것인지는?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긴 지병으로 인하여 각 포털, 카카오톡, 페이스북, 밴드 등에 소식도 없이 나온 것에 대해 모든 지인, 친구, 선후배께 이 지면을 통해 송구하고 죄송하다는 말을 전한다.
다행히 어머니의 건강이 긴 여정이지만 지금의 이 순간으로 멈추어 있기를 바라는 사실에 자아의 한구석 빈자리가 미어진 것은 사실이나 현실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하여 체면이기보다는 글을 쓰는 일상이 다름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로다
인생은 경영이라 늘 강조하지만 어떻게 유효하게 미래를 설계하고 적당히 즐기면서 살아가는 길이 경영의 요체라 한다면 운전 또한 낙관의 관조라는 의식 속에서 넘어질 줄 알아야 일어날 줄도 알 수 있다는 진리 앞에 에고를 버리는 것도 아름다울 것이라 믿으며 동료와 친구들 모두 이런 나의 겸손을 이해해주기를 바라며 에필로그 하련다.
2024. 10.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