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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약사 Dec 28. 2022

네? 밥을 사달라고요?

하루종일 약국에 있다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평범한 사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특이한 사람도 있다. 소위 말하는 JS, 진상도 있지만 '응? 이건 뭐지?'의아함을 안겨 주는 사람 있다.


어제, 그런 사람을 만났다.


평소와 다름없이 조제실에서 혼자 점심을 먹던 중이었다. 누군가 자동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50대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 한분이 서 계셨다. 살펴보니 손에 처방전은 없어서 그냥 일반약을 사러 왔나 보다 생각하고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뭐 드릴까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아저씨는 다짜고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아 그러니까 요새는 전단지도 안 돌리고 노가다 자리도 없고 그래서... 하... 참... 내가 이쪽 골목을 돌아서 오는 길인데 식당이 많더라고요. 따신 밥 한 그릇 포장해서 나한테 갖다 주면 안 되겠습니까?"


응? 이게 뭔 소리야? 두서없이 말을 쏟아내는 통에 대충 알아들은 게 이 정도다. 내가 잘못 이해했나 싶어서 다시 한번 확인하려고 되물었다.


"아.. 그러니까 혹시 저한테 밥을 사달라는 말씀이세요?"


"따신 밥이라도 한 그릇 먹어야 어디 가서 일을 할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저기 식당 아무 데나 가서 포장 좀 해서 갖다 주면 안 되겠습니까?"


(아니 그런데요. 생전 처음 보는 아저씨한테 제가 왜 밥을 사줘야 되는 건지....)


너무 황당해서 이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뻔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해결책을 생각했다.


"죄송한데 제가 밥을 사드리기는 좀 힘들 것 같구요. 따뜻한 쌍화탕이라도 하나 드시고 가세요."


온장고에서 쌍화탕을 하나 꺼내 카운터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하지만 아저씨는 잠시 혼자 중얼거리더니 화난 표정으로 홱 뒤돌아서 나가버렸다. 내가 건넨 최소한의 호의인 쌍화탕만 덩그러니 남겨놓은 채.



분명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뭔가 잘못한 기분이었다. 당연히 해줘야 되는 걸 안 해준 것처럼...


인류애를 발휘하여 기꺼이 밥을 사줬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런 일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고개를 저었다. 개국 전 근무약사로 오래 일하면서 약국에 와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돈을 달라는 사람은 있었지만 밥을 사달라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무작정 들어와서 목탁을 두드리는 스님부터, (솔직히 진짜 스님인지는 모르겠다.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컵라면 하나 사 먹게 천 원만 달라는 사람, 필요도 없는 물건을 떠안기며 말도 안 되는 비싼 돈을 요구하는 사람까지... 안된 마음에 한번 돈을 줬다가 마치 수금하듯 매주 찾아오는 사람도 겪어봤다.


그래서 큰돈이 아닐지라도 돈은 섣불리 주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모른 척하고 있으면 안 가고 계속 서있기 때문에, 부담 없는 쌍화탕이나 비타민 드링크 같은 것을 주고 보내는 것이 내가 체득한 최선의 방법이다. 대부분은 별말 없이 받아간다. 가끔 박카스나 까스활명수로 바꿔달라는 사람도 있지만..;;


세상에는 내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어떤 책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상식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람마다 자라온 환경이나 경험이 다르므로 '상식'이라고 여기는 것 또한 다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본인의 상식만 옳다고 주장하면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 대화를 통해 상대의 상식을 알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가의 생각에 공감했으나, 오늘의 나는 다시 의문이 생긴다. 나의 상식으로는 다짜고짜 약국에 찾아와 밥을 사달라고 하는 황당한 요구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 아저씨의 상식은 조금 다른 걸까. 하지만 내 마음에서 우러나와 베푸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거절할 수도 있는 거니까. 딱히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나저나 그 아저씨, 밥은 먹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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