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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날개 Nov 12. 2020

[산티아고 순례길] 친절한 사람은 마법의 밤을 선사한다

[8일] #1. ~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


떠나야 할 시간


다음 날, 마을을 둘러보지 못한 걸 후회하는 내게 세미가 아침에 늦게 출발하더라도 그냥 둘러보자고 했다. 배낭 메고 어딜 둘러보겠는가만, 마을을 일부러 가로질러 가는 것도 방법일 테다. 에스떼야의 상징, 여왕의 다리를 남들은 어제 건넜을 텐데, 초입에 있는 숙소에 묵은 터라 오늘에서야 봤다. 마을을 돌아보니 더 후회스러웠다. 어제 힘들어도 마을을  돌아봤어야 했다. 내 아쉬움을 알고 세미가 걸음을 멈춰 섰다.

“한 바퀴 돌다가 가자. 쉬엄쉬엄 떠나도 되잖아!”

“그럼 슬쩍 돌아서 기념사진이라도 찍을까?”


문을 열지 않은 성당을 배경으로, 여기저기 구경하며 사진 찍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다. 세미는 어제 도착해서 다 돌아봤다고 했다. 일부러 걸을 때는 아프던 다리도 마을 구경할 때는 아프지 않은 기적! 감각이 분산되어서일까? 나도 경험한 바이다. 예쁜 카페들, 밤새 사람들을 담아냈다가 아침에서야 놔준 흔적이 있었다. 세미는 오늘도 무릎 상태가 좋은 건 아니지만, 그냥 나랑 같이 걸어가겠다며 나섰다. 오늘 길은 그다지 힘겨운 길들이 없다기에 마음먹은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걸어가기로 했다. 그래서인지, 더 자유로워진 느낌이다. 가다가 쉬고 싶은 곳에 쉬어도 되니 말이다.



서둘러 걷기 싫은 날도 있다.


오늘 길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수도꼭지에서 와인이 나온다는 곳! 겉모양으로 특별나게 눈에 띄는 곳이 아니라서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들도 있다 한다. 눈 똑바로 뜨고 가야 할 터이다. 순례 코스마다 포인트가 있다. 용서의 언덕이니, 수도꼭지 와인이니, 철의 십자가니, 어디는 나름의 이슈가 있었다. 또한 어느 구간은 지루해서 건너뛰어야 하고, 어느 구간은 포도밭이 좋고, 어느 구간은 너무 아름답다느니! 뭐 대략 이런 얘기들이다. 나처럼 일생에 한 번만 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순례길을 여러 번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많은 이들은 유럽에서 오는 이들이기에 한꺼번에 다 가지 않고, 구간마다 끊어서 수시로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800킬로를 몇 년에 걸쳐 걷는 것이다. 휴가 때마다 이어서 걷는 경우였다. 우리와 달리 육로로 오갈 수 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장시간 비행으로 수시로 오기는 부담스러운 길이기에!


순례 초반에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보면 ‘어디에서 출발했니? 최종으로 어디까지 갈 거니?’하고 묻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 당연히 생장에서 출발해서 산티아고까지 가지!라고 생각했다. 내가 중도에 포기할까 봐 그런가 싶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이들은 구간별로 오기 때문에 이런 질문이 가능했던 것이다. 끝까지 갈 줄 알았던 사람들이 길 중간에서 자기들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인사를 하고 가는 경우들도 종종 있었다. 이름도 외우기 힘든 곳에서 시작해서 역시 외우기 힘든 곳에서 끝을 맺었지만! 대부분 대도시 위주로 들어왔다가 나갔다. 교통이 발달한 곳에서 유입이 쉬워서일 것이다.



세미가 무리하는 거 아닐까, 살짝 걱정됐다.

“괜찮겠어?”

“응. 해볼래!”

어제 홀로 버스를 타고 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다. 숙소에 일찍 도착해서 동네를 돌고 슈퍼에서 장도 봐왔지만, 만족감이 생기지 않았을지도! 나는 그녀에게 근육을 잡아 붙이는 밴드를 줬다. 많지 않게 준비했다. 현지에서도 구할 수 있다고 했는데, 작은 마을 단위는 물론 대도시에서도 구하기 어려웠다. 세미는 며칠 동안 내 근육 테이프의 맛을 보고, 이거 마술이냐며 좋아라 했다. 물론 이것도 한계는 있지만 발목과 발바닥 안쪽에 조금씩 붙여 써도 걷는 게 수월했다. 그녀가 근육 테이프를 사려고 마을 약국마다 들렀지만 살 수 없었다. 내가 아껴 쓰는 걸 알았기에 몇 번은 마다했다. 엊그제 한국 아저씨한테 받은 파스 기능 연고를 바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길 중간에 퍼졌을 때 근육 테이프의 도움을 받았다.


오늘 큰 배낭을 짊어지고 오는 바람에 동키 아저씨가 또 나를 찾았으려나? 세미도 배낭 무게 때문인지, 무릎이 더 아플 수 있었다. 배낭이라도 동키로 보내자고 했지만, 살짝 고민만 하더니, 그대로 메고 오겠다고 한 것이다. 사실 길을 걷는다는 것도 인생처럼 선택의 반복이다. 지금의 선택보다 나았을 거라는 후회와 미련으로 우리는 살아가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선택되지 않은 길이 이보다 더 나았을 거라는 보장도 없으면서 말이다.



도시를 한 바퀴 돌아서 사진도 찍고 조형물도 기웃거리다가 사람들의 아침 일상도 들여다봤다. 이제 다시 본격적인 순례길로 접어들어야 했다. 이곳도 큰 도시였다. 떠나온 지가 언젠데, 아직도 도시다. 세미와 나는 중간 의자에 앉아서 지도상 건너편에 있다는 데카트론에 들러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문을 열 시간이 아니었다. 데카트론이 멀찍이 보인다. 지척에서 데카트론을 지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게 분명하다. 보통 데카트론은 큰 창고형 매장을 확보해야 한다. 대도시 주변 몇 킬 정도는 떨어져 있게 된다. 소도시에는 당연히 없고, 어쩌다가 대도시에 이어도 멀찍이 있는 것! 데카트론까지 몇 킬로를 걸어서 갔다가 온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오늘 걸어온 방향으로 눈 앞에 떡하니 있는 데카트론이라니! 아쉽지만 그냥 지나쳐야 했다.


세미는 자기 코가 석자일 때도 남을 헤아렸다.  

“문 열 때까지 기다렸다가 갈까?”

“너무 늦을 것 같은데?”

“급할 거 없잖아. 그냥 쉬엄쉬엄 가지 뭐!”

“그렇긴 한데, 우리 아직도 에스떼야야!”

“아, 오늘 일정을 시작도 안 한 거네!”

아쉽지만 엉덩이를 떼야했다. 우린 멍하니 앉아있다가 순례자 지팡이를 들고 몸집만 한 큰 가방을 메고 환하게 웃는 순례자와 인사를 나눴다. 괜스레 나무로 된 지팡이가 멋있게 보였다. 우린 시답지 않은 농담으로 지팡이 좀 들어보자며 할아버지 흉내도 냈다. 순례자는 기꺼이 우리와 놀아주고 다시 구부정한 자세로 오르막을 올랐다. 세미와 나도 이제 의자에서 일어나서 가야 하는데, 서로 뭉그적거리기만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떠날 생각을 안 하고 있는 것이다.




부러운 아침 풍경


“가자! 정신 차리게 커피라도 마시자!”

우리는 본격적으로 도시 외곽으로 빠지기 전에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아침에 여기저기 돌았더니 아직도 도시인데 피곤했다. 우린 평범해 보이는 카페에 들렀다. 군데군데 놓인 테이블 한쪽에 큰 배낭을 벗어놨다. 간단하게 카페 콘 레체와 초코빵과 크루아상을 시키고 화장실을 다녀온 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옆 테이블에 지긋한 나이를 먹은 할아버지들이 신문을 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마을에서 이런 광경은 일상이다. 보기 참 좋았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며 동네 친구들과 인사도 나누고 신문도 보고 책도 볼 수 있는 문화, 참 소중해 보인다. 지금 이런 풍경을 쉽게 볼 수 없다 해도, 내가 나이를 먹었을 때는 흔한 풍경이면 좋겠다. 중요한 건 동네 친구들과 일상으로 말이다.  


저명한 작가들이 동네 카페에 들러 책을 썼다는 말을 들으면 부러웠다. 오래된 문화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가 분명 있다. 마치 오래전 수다를 떨던 사람들의 염체들이 카페 안을 떠도는 것 같다고나 할까? 지금 우리에게도 카페에서 글 쓰고, 공부하고, 일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느낌이 다르다. 다국적 기업의 상업적 냄새 때문인지, 공기부터가 다르다. 요새는 카페에서 공부하는 족과 카페에서 수다 떠는 족끼리 보이지 않은 신경전도 펼쳐진다. 눈에 레이저를 뿜으며 ‘더럽게 떠드네!’와 ‘여기가 도서관이야?’로 미움을 키운다. 그래서인지 대놓고 카페형 독서실도 있다. 하지만 백색 소음은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앱으로 틀어놓을 수도? 인간은 참 쉽지 않은 존재이다.



마법의 대장간이오?


얼마간 쉬자 한결 기운이 났다. 다시 길을 떠나는데, 얼마 못 가서 공방으로 보이는 곳을 지나갔다. 밖에 놓인 조가비 목걸이에 시선이 갔다. 그냥 지나치려는데, 세미가 홀린 듯 들어갔다. 마당에 대장간 같은 작업 공간도 있었다. 창고 안으로 안내된 곳에 수많은 예술품들이 있었다. 마치 마법이 펼쳐지는 현장 같았다. 결국 적극적인 구경을 하는데, 한쪽에서 조용한 미소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자신이 직접 만들어서 판매한다는 아저씨! 예술가처럼 보이는 앞치마가 멋져 보였다.


세미가 ‘어머 이건 꼭 사야 돼’ 아이템을 집어 들었다. 조가비 목걸이였다. 나도 뒤적거리며 하나 골랐다. 어제 세미가 장 본 값을 굳이 안 받으려고 해서 나중에 뭐라도 사줘야지 했는데 잘 됐다. 값도 얼추 비숫해서 받는데 부담도 없을 듯했다.

“내가 한꺼번에 내도 될까? 어제 장 본 거, 이걸로 해결하면 어때?”

“어! 정말? 좋아, 좋아!”

그녀가 마다 하지 않고 좋아하는 걸 보니, 기념품에 큰 의미를 담은 듯했다. 그녀는 이런 쪽에 관심이 많은지, 명함을 받고 한참을 뭔가 더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기웃거리며 공방을 둘러봤다. 뭐가 됐든 자기 공간이 있다면 참 좋겠다. 예술도 하고 돈도 벌면 더 좋겠다. 순례길에 공방을 연 건 잘한 일이지만, 순례자들은 배낭 무게 때문에 큰 예술품은 살 수 없으리라. 소소한 삶을 이어갈 정도? 그게 아니라면 적극적으로 어딘가에 판로가 있겠지? 여하튼 부러웠다.   



이것은 꿈인가?
하늘에서 별처럼 남자는 안 떨어졌지만,  
수도꼭지에서 와인이 콸콸!


얼마간 걷다가 오르막에 표지판 같은 게 보였다. 광고판 같기도 하고, 다른 말은 다 모르겠고 ‘비노’라고 쓰인 걸 보니, 맥주, 술 같은 말인 듯했다. 보니, 오른쪽 철문으로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었다. 예쁜 철문이라서 카페인가 싶었는데, 세상에! 거기가 바로 그 유명한 수도꼭지에서 와인이 나온다는 곳 아닌가?


“세상에나! 오 마이 갓이다!”

세미는 벌써 철문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오늘은 상당히 행동이 빠르다. 뭔가 성스럽기까지 한 문장들과 순례자 동상, 그 아래 벽면으로 수도꼭지 두 개가 달려있다. 한쪽 수도꼭지에는 와인, 한쪽 수도꼭지에는 물이 나온다. 앞마당이 넓으니, 오다가다 만난 순례자들과 잠시 쉬면서 아는 척도 하고 얘기도 나눌 수 있었다. 술도 있고, 벗도 있으니, 이것은 파티의 현장! 오, 그야말로, 여기 물 좋다! 와인도 좋고!



네가 왜 거기서 자냐


세미가 물통에 와인을 채웠다. 나는 아예 한 모금만 맛보고, 물만 통에 채웠다. 한쪽에 익숙한 존재들이 있었다. 집시 커플과 개였다. 강아지는 피곤했는데, 자기 몸에 맞는 배낭을 짊어진 채 잠이 들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애처로운지! 사람이 걷기 힘든 길을 개가, 그것도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걸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녀석의 꼬지지한 모습, 사람들이 옆에서 떠들거나 말거나 이때다 싶게 잠들었다.


아, 이거 어쩌지? 살짝 복잡한 심정이 올라왔으나, 믿자! 녀석을 잘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바로 집시 커플일 것이다. 쉬엄쉬엄 가는 중이겠지, 이렇듯 녀석이 잘 시간도 챙기면서! 물론 와인을 마시느라 터를 잡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곳 와인이 그렇듯 비싼 것도 아닌데, 술 마시겠다고 작정하고 앉은 것은 아닐 테지! 나는 녀석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길 중간에 또 만나면 녀석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수도원 포도주의 샘, 포도주 제조업체가 이 수도꼭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순례자들에게 힘과 활기를 기원하며 포도주 한 모금으로 행복하길 바란다는 문구가 함께 했다. 마케팅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환원의 의미를 잘 살린 바람직한 마케팅이다.



세미와 나는 한 번 더 수도꼭지 앞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신기한 일이었다. 수도꼭지에서 물처럼 와인이 나오다니! 그것도 무료로 마실 수 있다니! 신께 축배를 건네며 걷는 까미노가 아닌가! 이런 기회를 제공한 와인 업체에도 감사를!  


이곳을 봤네 못 봤네, 겉으로 못 봤나 싶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순례길로 오면서 아예기에서 아스께따까지 통과할 때 갈림길이란다. 우리는 운 좋게 고민 없이 여길 통과했지만, 이왕 구경하면 좋을 게 아닌가?


<알아두며 좋아요>

에스떼야에서 첫 번째 마을 아예기를 지나고, 두 번째 마을 아스께따로 갈 때, 바로 가는 오른쪽 길이 있고, 몬떼후라 산 근처 이라체 수도원을 거치는 길도 있다. 오래된 N-111 고속도로 쪽인데, 이 길로 가야 와인 수도꼭지를 만난다. 이곳은 까미노 싸인을 잃어버리기 쉬운 곳 중 하나라고 하니 주의해야 한다. 두 길은 얼마 후 이라체 호텔 부근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니, 아무 길이든 결국 순례길에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대부분 이라체 쪽으로 둘러간다고 하니, 아무 정보 없이 걷더라도 앞서 걷는 순례자들을 따라서 가다 보면 이 와인 꼭지를 만날 확률이 높다. 이것도 감동이긴 하다.  
 - 한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 자료 참조 -




선택을 하니까, 시간이 생겼다.


멀리 피라미드처럼 생긴 삼각산이 보였다. 이게 몬테후라 산인가 보다. 그 아래로 보이는 언덕에 있는 아스께따(azqueta) 라는 마을에 다다랐다. 우리는 동네 놀이터에서 쉬면서 물도 받고 그네도 탔다. 오늘은 늦게 출발하고, 걸음도 느릿느릿 걸어서 아직 반도 못 왔다. 시간은 벌써 3시가 다 되어갔다.  

“2킬로만 더 가면 다음 마을에 도착해. 일정표 대로라면 오늘 도착할 마을은 로스 아르꼬스인데, 다음 마을에서 그 마을까지는 12킬로를 더 가야 한대. 가는 동안 아무것도 없어서 각오를 해야 하나 봐!”

“그럼 여기에서 그 목적지까지는 14킬로를 더 가야 한다는 말이지?”

“그렇지. 지금 우리가 걸은 길은 8킬로도 안 되는 거지! 다음 마을까지 가야 10킬로 되려나?”

“로스 아르꼬스! 지금 너무 늦었어. 발도 아파서 우리에게는 무리야.”

“그래, 그럼 쉬엄쉬엄 가자. 오늘은 반타작만 하지 뭐! 다음 마을에서 묵자!”

세미가 일정표를 펼쳐서 보여준 다음 마을은 바로,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 (Villamayor de Monjardín)였다. 발음이 어려워서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마을이었다. 일정을 줄이자 시간이 여유로워졌다. 늘어난 시간만큼 더 오래, 더 신나게 그네를 탔다. 놀면서 가니까 더디긴 해도 재미는 있었다.


이곳은 인근에 치유의 샘이 있다는데, 그보다 더 유명한 것은 빠블리또(Pablito)라는 할아버지란다. 그는 순례자들에게 손수 만든 개암나무 지팡이를 선물해준다는데, 이런 정보도 몰랐다. 우리가 들렀을 때는 마을에 개미새끼 한 마리 없었다. 오래도록 어린아이처럼 신나게 놀이터에서 놀다가 떠나왔는데, 아마도 이 마을이 머물기만 해도 평화로워지는 에너지가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차마 말로 전하지 못할
어려운 지명에 머물다.


드디어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villamayor de monjardin)에 도착했다. 마을이 작아서 알베르게가 두 개만 있다. 그중에 마을 초입에 있는 마을 이름과 같은 알베르게로 들어갔다. 3시 반 도착! 10킬로도 안 되는 여정이었지만, 나름 힘겹게 애써 걸어온 길이었다. 남들은 20킬로 여정을 이 시간 정도부터 도착한다는데! 처음이었다. 이렇게 오후의 나른함을 마을에서 느껴보기는!


알베르게에 제일 먼저 도착한 것인지, 침대를 원하는 대로 택할 수 있었다. 세미는 바로 발코니 유리가 보이는 침대 1층을 맡았다. 당연히 그 2층은 안 택하지! 그다음으로 머리맡으로 발코니를 향하는 침대가 좋긴 한데, 어째 밤에는 머리맡으로 바람이 많이 들어올 듯했다. 기온 차가 있는 걸 감안해서 잘 때 춥지 않게 잘 만한 벽 쪽 침대를 택했다. 세미가 왜 거길 두고 그리로 가냐고 했지만, 나는 밝은 뷰도 좋지만 안온한 게 좋다고 말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 순례길도 선택의 연속!  



나를 알아가는 과정


숙소가 작고 깔끔했다. 우리는 빨리 씻고, 초스피드로 양말과 속옷은 물론 오늘 입은 옷까지도 얼른 빨아서 발코니에 널었다. 발코니 빨랫줄이 많지 않은 것을 감안해 재빨리 선점한 것이다. 이런 거였구나! 일찍 도착하려고 새벽부터 서두르는 이유들이! 이렇게 하니, 잔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그래도 남들이 쓸만한 공간은 남겨야 했다. 옷들이 얇고 금방 마르는 소재라서 구석으로  밀어 넣어도 괜찮긴 했다.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오후 햇살, 마을 풍경! 창문 밖에서 남정네가 내게 세레나데를 선사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 행복했다. 나는 이런 누그러진 햇살을 좋아하는구나, 이런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맑은 하늘을 좋아하는구나, 이런 높이에서 바라보는 예쁜 마을을 좋아하는구나!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 이처럼 예고 없는 행복 에너지가 나를 훑고 지나갔다.     




작은 마을을 둘러봤다. 혹시 몰라 레스토랑 문 여는 시간을 확인했다. 동네가 작고 아기자기했다. 담장으로 뻗은 꽃들도 예뻤다. 숙소 앞 정류장은 아담했다. 버스가 과연 올 것인지? 아이들 슈퍼카들이 파킹을 하는 곳은 아닌지, 비현실적으로 귀여운 정류장을 지나 슈퍼로 향했는데, 아직 문을 안 열렸다. 낮잠 시간인가 했더니, 숙소 주인장이 알려준다. 거긴 아예 일찍 문을 닫는다고 했다. 모두 대여섯 발자국 걸어가면 보이는 거리였다. 슈퍼가 문을 안 열면 내일 간식을 살 수 없다는 말이다. 주인장은 내일 아침에는 문을 열겠지만 몇 시에 열지는 정확히 모르겠다고 했다. 자기가 일찍 나오지 않아서 모르는 듯했다. 어쨌든 다 좋다. 조용히 머물다 가기 좋은 마을이라서 참 좋았다.



세미와 마을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었다. 어떻게 찍어도 예쁜 조도였다. 남의 집 담장에 핀 꽃들, 창문의 모양, 집의 톤을 하나씩 둘러봤다. 이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태어나서 한 번도 타지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

그저 남의 삶을 이리저리 떠올리다가 보니, 내 삶도 같이 묻어서 떠올랐다.

‘그러는 넌 뭐하러 이 만리 길을 떠돌고 있냐?’

‘글세! 떠돌이 병에 걸렸나 봐! 어딘가에 뭔가가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일까? 아니면 머물면 죽을 것 같아서 정처 없이 걷는 것일지 몰라.’

‘파랑새를 찾고 있니?’

‘그 얘기의 끝을 알아. 그건 어쨌든 파랑새가 있다는 얘기잖아. 나는 파랑새조차 꿈꾸지 않아!’

‘불쌍한 것! 너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그래,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그래서 세상이 힘들어!’

세미가 가만히 내 옆에 서서 내가 바라보고 있는 담장의 꽃들을 바라본다.

“혼자서 무슨 생각을 해? 들어가자! 날이 쌀쌀해졌어!”

“그래!”

오늘 내 곁에 있어준 세미가 고마웠다. 이런 여유를 알려준 느린 걸음에게도 땡큐!





사람이 소중히 여겨질 때


숙소로 들어왔을 때 로비에 한국 청년이 있었다. 우리가 마을을 한 바퀴 도는 사이에 사람들이 꽤나 들이찼다. 아마도 더는 다음 마을로 이동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시간인 듯했다. 이 마을에서는 다음 마을 ‘로스 아르꼬스’까지는 12킬로를 가야 하니까. 가는데 까지 가보자고 지날 수 있는 곳이 아닌 것이다. 로비에 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건넸다. 다들 등록을 하고 배낭을 들고 2층에 있는 침대로 이동하느라 분주했다. 청년은 이미 등록을 마친 후인지, 여유롭게 앉아있었다. 젊은 친구! 눈이 마주쳤을 때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의도적으로 눈도 안 마주치려는 젊은 친구들도 있어서 그저 붕어입모양새로 인사를 했다.


오, 그런데 그는 싹싹한 친구였다. 그것도 해맑았다. 무엇보다 그가 너무 반갑게 '사람 구경을 못해서 귀하다'는 말을 했다. 지금은 성수기가 아니었다. 일정 시간대가 아니면 사람 없이 홀로 걷는 일이 많았다. 어찌 보면 세미가 아니었다면 나도 내내 혼자였을 것이다. 걷는 동안 혼자인 게 좋으면서도 때론 고독했다. 앞뒤로 사람이 안 보일 때는 내가 지금 어딜 걷고 있는 건지, 거리감도 없어지면서 넓은 평야에서 제자리걸음으로 러닝머신을 하고 있는 기분까지 들었다.


청년은 요새 보기 드문 ‘바른 사나이’ 같았다. 예의를 차리느라 애쓰는 게 아니라, 스스럼없이 정말 말도 잘하고, 관심도 많고, 염려도 해주는 대화법을 썼다. 내가 늙긴 늙었다 싶은 게, 이런 청년을 보면서 ‘부모님이 참 잘 가르치셨네!’라는 생각을 했다. 나이 먹은 사람들이 주책스럽게 ‘딸 있으면 사위 삼고 싶네, 아들 있으면 며느리 삼고 싶네’ 이런 말을 불쑥하는 게 조금 이해가 됐다. 그냥 사람이 좋은 것이다. 아들 삼고 싶고, 딸 삼고 싶을 정도로 정이 간다는 말이다. 내 식으로는 ‘조카사위 후보’가 되겠지!


우린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 영업시간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하자, 자신은 점심 먹은 배가 안 꺼져서 그냥 간식만 먹고 잘 거란다. 사실 그에게 밥을 같이 먹자고 건넨 말은 아니었다. 세미와 나도, 우리 또래가 아닌 친구가 편한 건 아니었다. 그는 노트북으로 작업할 게 있다고 했다. 할 일이 있는 바쁜 와중에 이 순례길을 걷는 것 같았다. 노트북이라니! 반갑고도 마음 가는 애물단지!

“노트북이 가벼워 보이지 않아요. 어떻게 들고 다니세요? 나도 휴대용 자판과 패드라도 가져올까 했는데, 그냥 말았어요. 대단하시네요.”

“후회 중이에요. 버리지 못해서 가지고 다녀요. 하하하!”


사실 노트북을 미친 척하고 가져갈까 서너 번 고민한 것 같다. 마지막에 휴대용 자판과 패드라도 가져갈까, 천 번은 고민한 것 같다. 결국 버리고 말았을 품목 1순위였다. 노트북은 그렇다고 해도 패드에 자판을 가져왔다면 정말 기부했을 것이다. 가지고 다닌다고 해도 어디에서 똑딱거리며 쓸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았다.
글쓰기 금단 현상이 올 때도 나는 나를 달랬다.
‘잘했어. 난 일 하러 온 게 아니야. 그냥 온전히 길을 걸으며 나를 들여다보러 왔잖아.’

글을 쓰려고 했다면 치밀하게 준비했어야 했다. 당장 한 달 남겨두고 비행기 표를 끊고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도 모르는 자가 무슨 글 쓸 준비? 순례길 정보도 인터넷으로 대충 보고 와놓고? 그래서 후회스러운 바보짓들도 많이 했다. 사실 너무 많은 정보를 담고 오면 이 여행이 나의 여행인지, 추천자들의 여행인지, 나만의 독특함이 없는 것도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는데, 기대감 없이 마주하는 기쁨도 있다.



친절한 미소가 마법의 시간을 연다.


노을이 잔잔하게 퍼질 때였다. 우리는 이제 순례자들도 없어서 주인장도 사라진 작은 사무실 겸 거실에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청년이 책상에 앉아서 집중적으로 일하지는 않는 듯했다. 나도 알베르게에 비치된 컴퓨터에서 이것저것 살펴보았다. 와이파이가 있을 때 휴대폰에서 살펴본 내용들이라서 그저 건성으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요새는 전처럼 여행하면서 컴퓨터가 절대적이진 않다. 스마트폰이 다 해주니 말이다. 컴퓨터가 생기기 전 사람들이 어떻게 모험을 떠났을까 싶다. 나 역시 인터넷이 활성화이던 2000년대 초반에 배낭을 메기 시작했다. 디지털카메라도 막 시작이긴 했지만 우리나라에서조차 아직 생소했던 때였다. 그때 32기가 용량을 자랑하던 대만산 카메라가 30만 원이었다. 그때 당시에도 퀄리티는 떨어진다고 여겨졌지만 그래도 감성적인 따뜻한 사진을 원 없이 찍을 수 있었다. 찍고 지우면 되니까 부담이 덜 했다.


우리는 청년이 가져온 간식을 순삭 하고, 세미와 내가 그간 꿍쳐놓은 간식들도 대방출하며 허기를 달랬다. 로비에는 우리만 있어서 과자봉지를 날리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청년은 조금은 신비로운 구석이 있었다. 학생이라는데, 어찌 나이 먹은 우리와 적극적으로 대화를 하는가 싶었다. 그간 정말 사람이 그리웠던가 싶었다.

“고향이?”

그가 답하기 전에 내가 맞혔다. 청년이 놀랐다.

“어떻게 아세요? 저 사투리 잘 안 쓰는데!”

“뉘앙스로 지역이 대충 파악됩니다.”


청년의 고향 사람들은 특유의 선비 같은 말투가 있다. 이건 모두 데이터에 기반한 확률 게임이다. 내 주변에 청년의 모습을 닮고, 말투가 비슷한 사람들, 각자 다른 사람들인데도 얼추 비슷한 인상을 주었다. 가령, 천주교 신자들, 불교 신자들은 뭔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다. 그게 뭐냐고 물으면 내 답은 ‘모르겠다’이다. 그냥 느낌적인 느낌! 상대의 표정과 목소리, 행동들을 분석? 뭐 이런 건 모르겠고! 돗자리 깔고 대충 때려 맞히는 사람들 흉내 좀 내다보면 얻어걸릴 때가 있다. 틀리면? 아니면 말고! 막말로 내가 복채를 받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여하튼 그 청년의 고향을 맞힌 것 때문인지, 우린 가벼운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세미와 내가 밥시간이 다 되어서 아까 갔던 바(bar)로 이동하려던 참이었다. 청년이 갑자기 자기도 같이 가서 먹겠다며 노트북을 덮는다. 맥주만이라도 마시겠다고 하더니, 음, 결국 청년은 우리와 같이 코스 요리를 시켰다. 음식은 마음이다. 마음을 열어야 같이 먹을 수 있다.



바에 사람들이 많았다. 오늘 무슨 축하하는 날이라나? 축구 때문인지, 마을에 좋은 일이 있는지, 밖에서 보던 것과 달리 안에는 자리가 없었다. 야외 테이블은 잠깐 내린 비 때문인지 젖어있었다. 홀로 구석에 앉은 영국 아저씨가 자기와 합석해도 좋다고 말했다. 혼자 여행하면서 이런 스킬을 발휘하면 여러 사람과 어울릴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의자가 모자랐다. 우린 구석에 놓인 의자를 추가로 가져왔다. 비 때문에 젖은 플라스틱 의자를 쓱쓱 닦아서 대충 앉았다. 그러다가 풍경 좋은 곳으로 테이블을 옮기자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테이블을 들어서 재빨리 자리를 마련하는 모습에 우린 서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것만으로 우린 동지가 된 것이다.


하늘이 참 예뻤다. 노을이 정말 아름답게 지고 있었다. 야외 테이블에서 멋진 풍경을 보고 있자니 행복감이 밀려왔다. 한 테이블에 3개국이 앉았다. 뭔가 환상적이고 근사한 밤이 시작되리라. 순례길에서 흔히 사람을 만나서 저녁 먹는 일은 보통 일이지만, 어쩐지 이런 기대치 않은 조합이 더 신비스러웠다. 친절한 미소를 가진 청년만큼이나 영국 아저씨도 연신 미소를 지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영국 특유의 억지 미소로 친절을 내뿜었다면 금방이라도 어색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홀로 이 저녁을 보내기에 그에게는 밤이 길었을지 모른다. 진심으로 이 낯선 조합의 파티에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한 듯했다.


우리는 상대에 대한 가식 없는 친절이 서로를 얼마나 무장해제시키는지,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지 알게 되었다. 우리의 얘기는 좀 더 풍성해졌다. 함께 음식 사진, 셀카, 단체 사진, 등등, 모두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사진 찍고 꼭 자기한테 보내달라던 영국 아저씨와 청년의 카톡과 왓츠앱! 사람들이 잘 머물지 않는 마을에서 사람을 만나서 더 애틋한 듯했다.




젊은 청년과 은퇴를 이제 막 하고 왔다는 나이 많은 영국 아저씨, 그리고 나와 세미, 우린 나이도 성별도 국경도 문제없이 즐거운 저녁 식사를 했다. 청년은 빠듯한 일정 때문에 우리와 다시 못 볼 스케줄이었다. 그가 그 마을에 머문 것은 두 코스를 한꺼번에 넘어와서였다. 우리와 차원이 다른 스케일! 예쁜 마을 야외 테이블에서 먹는 저녁식사는 고급스럽고 즐거웠다.


우린 식사를 마치고도 한참 동안 수다를 떨었다. 마을을 배경으로 사진도 여럿 찍었다. 결국 알베르게 앞에서 단체 인증숏을 찍는 것으로 사진 파티는 끝을 냈다.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과 함께 우린 서로를 응원하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건넸다. 이제 마법 같은 밤은 사라진다. 낯설지만 아름다운 마을에서 노을부터 별빛까지, 함께 식사를 하며 웃었던 사람들! 그 마법 같은 시간과 함께 추억 하나를 쏘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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