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날개 Dec 30. 2020

[산티아고 순례길] 어차피 인생은 혼자다

[14일]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가는 길

나헤라에서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까지
21.5킬로!


<알아두면 좋아요>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는 대성당을 건축한 ‘까미노의 건축가 성인’의 이름과 동일하게 도시 이름을 지었다.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에는 아름다운 성과 성당, 순례자를 위한 병원, 궁전, 스물네 개의 아치로 만들어진 오하 강 위의 다리 등이 있다. 이곳은 산티아고 길 때문에 만들어졌다. 순례자를 위한 모든 서비스가 갖춰져 있으며, 친절한 마을 사람들로 늘 순례자들이 붐빈다.
(한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 자료 참조)




그냥 춤만 추지!


나헤라에서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오르막에서 누군가 따딱따딱 요란하게 스틱 소리를 냈다. 스틱에서 저런 소리가 날까 싶었다. 돌아보니, 커플로 보이는 남녀 청춘 순례자들이다. 하이힐의 또깍또깍 소리보다 몇 배는 더 시끄러웠다. 그간 수많은 사람들의 스틱 소리를 들어왔지만, 이토록 신경 쓰인 적은 없었다. 흙길에서 나지 않는 소리, 아스팔트나 시멘트 바닥에서나 조금 들리는 소리인데 지금 저 땅을 뚫을 듯 요란한 소리는 얼음벽에서도 충분히 매달릴 수 있을 세기다. 역시 청춘의 힘은 넘친다.


8시에 길을 나서도 이렇듯 어둡다.


언덕을 힘겹게 오르는데, 서너 명의 청춘들이 몸을 흔들어 대고 있다. 아침 댓바람부터 댄스 댄스! 분위기에 맞춰 같이 흔들어 대고 걸어가려는데, 어? 익숙한 이들? 어째, 아무래도, 그 녀석들 같다? 어제 침대 사이로 호들갑을 떨며 껑충껑충 뛰던 그 무리들? 아, 똥 밟았다. 이 녀석들을 피해야 한다. 섞여 있는 것만으로도 꼬인다. 그들이 춤을 추는 사이, 재빨리 도망갈 생각으로  에너지 부스터를 작동한다. 최대한 빨리, 멀리, 가자! 그러나 현실은 달팽이!


최선을 다해서 빠른 걸음으로 녀석들을 벗어났다. 누군가 우리를 부른다. 돌아보니, 그 녀석들이다. 나 말고도 세미와 다른 순례자들도 걸음을 멈추고 있다.

“그리로 가면 안 되는데? 왼쪽으로 꺾여야 해!”

“뭐?”

돌아보니 갈림길이 있었다. 중간에 한 번씩 안내해주는 화살표를 본 사람은 없었다. 화살표가 없는 것은 계속 앞으로 가라는 것인데? 방향을 틀 필요가 있을 때 나타나는 게 화살표였다. 녀석들이 단호하게 말하는 통에 모두 혼란의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화살표가 없는데, 어떻게 알아?"

"지도 어플! 우리가 가는 쪽이 맞아. 믿고 따라와!"

찜찜하다. 믿음이 가지 않는 사이비 교주 녀석이 자꾸 자기를 믿고 따라와 구원을 얻으란다. 모두 의심의 눈초리로 3초간 녀석들을 째리다가 우기는 데 장사 없기에 따르기로 한다.


왔던 길로 방향을 틀어 녀석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 그때 누군가 우리를 부른다. 또 다른 순례자들이다. 고수의  향기가 흘러넘친다.

“거기 아니다. 계속 큰길로 가면 돼. 가다 보면 화살표가 나올 거야!”


무리들이 이번에는 고민의 여지없이 우르르 그 순례자들을 따라나섰다. 조금 걸으니 말대로 화살표가 나왔다. 그냥 가던 길을 내버려 두면 잘 갔을 텐데, 녀석들은 왜 춤추다 말고 전도(?)를 한 것이야?  건성건성 춤추며 지도 어플을 보고, 대충대충 알려줬군! 혹시, 녀석들, 지능적으로 우리를 골탕 먹인 게 아닐까?  피하는 눈길을 보며 복수를 꿈꾼 게야?  결국, 똥개 훈련 모드였다. 다들 말은 안 했지만 눈빛으로 녀석들을 강타했다. 어쩌면 선의의 오지랖일 수 있다. 기죽어 우리를 쫒아오는 모습에는 조금 진정성 있다. 녀석들은 질풍노도 중 엄벌로 순례길 미션이 주어진 것일까? 끝내 산티아고에 다다를 수 있을까? 가는 동안 어떤 변화를 겪으며 무엇을 느끼게 될까? 어디선가, 너나 잘하세요,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 이럴 때는 귀 좀 후비고 다시 걷는 게 상책!  


아침 일찍부터 언덕길을 만나게 된다.




우아하고 고상하게



세미와 문득, 멋지게 걷는 샷을 연출하고 싶었다. 맨날 배낭 메고 '배고파' 표정이니, 이제 좀 멋진 순례자의 모습으로 찍자는 것인데!

"어떻게 멋지게?"

"좀 우아하게!"

"귀부인처럼?"

"귀부인? 뭐가 됐든! 고상하게!"

세미 말로는 중국어로 '귀부인' 발음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단다. 하나는 우리가 아는 그 '귀부인'이고, 또 하나는 낮은 자세로 일하는 사람, 즉 '하인' 정도가 되겠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같은 발음에 상반된 뜻이 있다니! 세미가 벌판에서 갑자기 무릎을 꿇고 싹싹 비는 시늉을 했다.

“귀부인! 용서해주십시오!”

갑자기 '슛!'이 들어가네? 나는 재빨리 대사를 쳐야 했다. 세미를 향해 소리쳤다.

“너, 귀부인! 나, 귀부인이다. 당장 고개를 숙여라!”

40대에 이러고 놀고 있다. 이 드라마의 끝은? 하층민 귀부인이 상층민 귀부인을 향해 칼을 겨누며 끝나지 않을까? 은근, 혁명을 꿈꾸는 나는 오늘도 정처 없이 걷는 나그네일 뿐! 그래, 배낭 메고 무슨 우아며, 고상인가!


너른 들판을 지나다가 포도밭을 만나면 반갑다.


<알아두면 좋아요>

라 리오하에 들어서면 땅의 빛깔이 붉게 물들어있다. 붉은 흙은 석회암과 충적토가 많아서 잡초를 억제하고, 포도나무의 성장을 촉진한다. 스페인의 태양처럼 붉게 빛나는 황토와 작고 단맛이 강한 열매를 지닌 포도나무는 레온의 황무지까지 이어진다. 순례자는 이 포도밭들을 지난다.  
(한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 자료 참조)
흙길은 먼지가 날리지만, 걸을 때 충격이 덜해서 좋다.




세미가 뒤쳐졌다. 무릎이 아프단다. 일정 거리를 두고 걸어온다. 아프다고 도울 처지도 아니다. 이따금 쉬어주고, 테이핑을 해주는 게 다다. 갑자기 한국 처자가 인사를 건넸다. 짧은 순간이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그녀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세미가 천천히 걸은 덕에 우리도 일정 속도에 맞춰 여유롭게 걷게 됐다. 결국, 한국 처자와는 마을에서 유명하다는 햄버거 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녀는 좀 빨리 걷겠다며 앞서 떠났다.


길을 걷다가 십자가가 있으면 가끔 기도를 드린다.




늘어지는 오후



힘겹게 언덕을 오르자, 쉼터가 나타났다. 나무 아래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다. 투어팀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우리가 만났던 그 투어팀에, 그 담당자 같은데, 바쁜지 정신이 없다. 한쪽에는 돌의자 서너 개가 눕는 소파처럼 놓여 있다. 돌의자가 편해 보이는데, 다른 순례자들이 이미 차지했다. 햄버거 처자도 돌의자에서 쉬고 있었다. 식수대 쪽 의자에도 순례자들이 있었다. 세미와 나는 땡볕이 있는 나무 의자에 걸터앉았다. 이내 다른 돌의자 사람들이 자리를 뜬다. 이제 편한 돌의자는 우리 차지다. 돌의자를 배경으로 멋진 패션 잡지처럼 사진을 찍자 하니, 다들 힘들다면서도 할 건 다 한다. 이번에는 햄버거 처자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연락처와 약속 시간을 재차 확인하고 간다.


이 돌의자  탐난다. 거의 널브러져 있는 자세로 쉬게 되는 자세가 된다.


투어팀의 점심이 끝났다. 많은 투어팀들이 운영된다던데, 우리는 왜 저 팀만 볼까? 오늘도 다른 순례자들에게 음식을 권할 것인가? 오늘은 멋지게 다른 사람들을 위해 양보해야지! 그런 김칫국을 벌컥 거리는데, 담당자는 우리를 못 알아본다. 알아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가? 두 동양 여인을 쉽게 잊지는 못할 텐데? 투어객을 관리하는 중이라 정신이 없나? 아니면 음식을 준 것이 금지라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사실 저들은 돈 주고 먹는 음식인데, 공짜로 준다면 억울해 할 수 있겠다.


투어객들이 사라졌다. 간식도 한꺼번에 사라졌다. 남은 음식을 기대했나, 섭섭했다. 눈길도 주지 않고 가버리는 야속한 담당자! 멍 때리며 오징어 씹듯 차량 꽁무니를 구경하는 이 나뿐만이 아니었다. 다들 쉬면서 딱히 할 게 없었다. 언덕으로 또다시 사람들이 몰려왔다. 오늘 걷는 거리가 크게 부담 없다고 여겨서인지, 느긋하게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앗! 질풍노도 그 녀석들이다. 어디서 춤추고 노래하다 왔나 보다. 더 쉬겠다는 세미 어깨에 배낭을 걸어주고 일으켜 세웠다. 가자, 가자! 어서 가야지!


투어팀 담당자분, 우리에게 기쁨을 주셨던 분이다. 여전히 바쁜 모습이다.




홀로 걸어야 할 시간


15 킬로 지점에 '시루에냐'라는 마을이 있다. 세미가 걸음을 멈췄다. 새로 조성된 마을 같다. 집들은 멋진데, 개미 새끼 한 마리 안 보인다. 아직도 신축 중인 모습이다.

"나, 무릎이 아파서 더는 못 가겠어. 그냥 이 마을에서 자고 갈래!"

나는 놀라서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리 봐도 절간처럼 고요한 마을이다. 알베르게가 없을 것 같은데?

"문 연 곳이 있어?"

"찾아보니까 하나 있어."

아픈 세미를 생각한다면 함께 머물러야 맞을 테지만, 5~6킬로만 더 가면 오늘 일정의 끝이다.

"쉬었다가 걷기도 힘들 것 같아?"

"응! 그냥 여기 있을래! 나 혼자 있어도 돼."


난감했다. 저녁 햄버거 약속까지 되어 있는데! 실은 햄버거를 포기할 것인가, 를 고민했는지 모르겠다. 세미는 이따금 버스로 이동을 했지만, 나는 더뎌도 걸어왔다. 이대로 가면 나중에는 지쳐서 산티아고에 도착할 수 없을지 모르겠다. 걸음도 느린 자가 가는 곳마다 하루씩 더 쉬고, 짧게 거리만 이동하면 끝은 뻔했다. 이제는 조금은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할 때다.

"혼자 괜찮겠어? 여긴 아무것도 없는 곳 같은데? 알베르게가 있어도 문 닫았을 것 같은데?"

"아냐, 지금 문 연다고 나와 있어."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픈 사람을 버리고 가는 것 같아서 선뜻 혼자 떠나기 쉽지 않았다.

"그냥 먼저 가. 내일 일찍 출발할게! 힘들면 버스 타고 내일 일정표 지점에 먼저 도착할게!"

참 현명한 친구다. 이 와중에도 내 마음을 헤아리다니!


새로 조성된 마을이다. 예쁜 집들을 구경하며 통과했다.


배우들이 나올 것 같은 세트장 분위기다.
저 어디에 알베르게가 있을 거라고 추정한 곳이다. 길 위에 핀 꽃도 참 예쁘다.


세미는 나를 붙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길 위에서 만난 친구, 어차피 홀로 걸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그녀의 말처럼 다음 날 만날 수도 있지만, 여기까지만 동행일 수 있다.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였다. 마을이 너무 고요해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숙소 찾아주고 갈게!"

"어플 보면 찾을 수 있어."

"그래, 그럼, 조심하고!"

나는 세미의 등을 토닥였다. 세미 눈이 그렁그렁 했다.

"뭐야! 이별하는 거 아니잖아!"

"그래도!"

괜히 서러운지 세미가 운다. 아파서 못 쫒아가는 마음,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 그럼에도 약해지지 말자며 세미를 위로했다. 그리고 쏟아지는 눈물! 에이쒸! 어디 의지할 곳 없이 걷다 보니, 정이 들었나 보다. 남정네와 이별할 때도 독하게 참았던 눈물인데! 세미도 이 마을에 남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죽하면 5킬로 남겨두고 주저앉겠다고 했겠는가. 세미 덕에 재미있게 걸었던 길이다. 이제 정말 홀로 걸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섭섭했다. 언젠가 홀로 걷게 되리란 건 알았지만 예고 없이 찾아올 줄이야! 더 굳건해져야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어서 가자!

 

보통 바닥에 표시되는 화살표인데, 담장에 있다. 왜 깨졌냐,  누군가 배낭을 놓았든가 앉아있었든가, 그래서 깨졌을 것 같다.


이 길에서 어찌할지 고민했다.


마을에 세미를 남겨두고 다시 벌판으로 나서야 했다. 마을 회전 코스에 순례자 조형물이 보였다. 나는 나무 의자에 앉아 한참 동안 해를 마주 봤다. 우연히 만나 함께 걸었던 친구, 오늘 유난히 많은 사진을 남기고 싶더라니! 조형물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세미에게 보내줘야지, 나 여기에 오래도록 앉아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홀로 조용한 이별식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를 친구였기에! 연락처를 다시 확인했다. 그간 찍은 사진을 숙소에 도착하면 보내줘야지, 싶을 때였다. 누군가 나를 부른다. 돌아보니, 세미였다.

“왜? 숙소 못 찾았어?”

“문 닫았어! 같이 가자.”

“뭐? 정말? 하하! 반갑다. 우리 천천히 걷자!”

세미와 나는 다시 길 위에 섰다. 그렇게 작별 인사를 해놓고, 30분 만에 재회하다니! 어쩐지 이 마을을 쉽게 떠나고 싶지 않더라니! 세미가 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가?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태연히 걸었다. 그러면서도 신이 났다. 세미도 무릎이 아픈데도 애써 웃으며 걷고 있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을에서 다시 순례길로 들어서야 하는데, 일단 좀 쉬었다가 가기로 하자.


보기만 해도 좋은 풍경, 조형물이 있으니 도심도 이렇게 낭만적이고 멋스럽구나.


철인가? 순례길을 나서는 모습이 더 강해 보인다. 힘을 주는 조형물이 분명하다.



시선 교정


비포장 내리막 길, 스틱이 있어서 고맙다. 멀리 마을이 보인다. 이때 속지 말아야 한다. 아직도 한참 걸어야 할  거리다. 우리나라처럼 산이니 강이니 구비구비 마을이 있는 게 아니다. 평원에 펼쳐진 상태로 눈에 일찌감치 들어온다. 눈에 보여도 그 거리가 만만치 않다. 내리막 길을 터벅터벅 걸으며 춤과 노래를 부를까 하다가 멈칫했다. 저 멀리, 질풍노도의 녀석들이 있다. 언제 앞서 갔지? 길은 하나인데? 아마도 세미와 내가 마을에 머물고 있을 때 엇갈렸나 보다. 인형을 들고 세계 여행 중인 남자와 세미가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는 페이스북에 많은 친구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세미가 알려줬다.


세미는 진작부터 정보들을 훑어보고 온 모양이다. 집시 커플부터 이 인형 남자까지, 산티아고 관련된 사람들을 다 알아본다. 마치 연예인 만난 듯 반가운 표정이다. 그런데, 이 남자는 왜 다 커서 인형을 들고 다닐까, 우리에게는 익숙지 않은데, 요새 여행자들 사이에서 유행인가 보다. 작은 인형을 지니고 다니다가 기념할 곳에 세워두고 찍는 거, 가령 표지석 위에 인형을 놓고 자신들의 걸음을 찍는 일, 사실 인형 남자를 처음 만났을 때는 살짝 이해하지 못했는데, 친구 쥬벨이 가방 안에서 인형을 꺼내 사진을 찍었을 때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희한했다. 같은 행동을 해도 친구라서 시선이 달라진 것이다. 이래서 길에 서게 되면 날카로운 시선이 너그럽게 교정되는지 모르겠다.


길만 따라 걸어도 힐링이 된다.


마을이 보인다. 내리막길에서 사진 찍기 좋은 곳에 사람들이 몰려 있다,


길은 언제나 내 앞에 펼쳐졌다.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알아두면 좋아요>  전설 따라 몇 만리?

15세기에 독일 출신의 18살 청년은 신앙심이 깊은 부모님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 중이었다. 이 마을에 도착해 묵고 있는 여인숙에서 딸이 청년에게 반해 사랑 고백을 했지만, 신앙심 깊은 청년은 그녀의 고백을 거절했다. 상심한 처자는 복수를 위해 청년의 짐에 은잔을 몰래 넣은 뒤 도둑으로 고발했다. 청년은 재판소로 끌려갔고, 그의 부모와 함께 결백을 주장했지만, 결국 유죄 판결로 교수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절망에 빠진 청년의 부모는 산티아고 성인에게 기도를 올리며 다시 순례길을 떠났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산티아고의 자비로 아들이 살아있다”는 하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죽은 줄만 알았던 아들이 살아있다니! 음성을 들은 부모는 기쁨에 차 재판관에게 달려갔다. 마침 닭고기 요리로 저녁식사 중이던 재판관은 그들의 말을 들은 뒤 비웃었다. “당신의 아들이 살아 있다면 요리를 위해 잡은 이 암탉과 수탉도 살아 있겠구려.” 그러자 닭이 그릇에서 살아 나와 즐겁게 노래하기 시작했다.

억울한 사연을 재미로 승화시킨 전설을 토대로 1993년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는 청년의 고향 독일 윈넨뎀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이 전설로 인해 산토 도밍고의 재판관들은 사죄의 의미로 몇 백 년 동안 목에 굵은 밧줄을 매고 재판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중세 순례자들은 여행 중에 듣는 수탉 울음소리를 좋은 징조라 여겼다. 프랑스 순례자들은 순례길에 보호의 의미로 닭의 깃털을 모았고, 폴란드 순례자들은 지팡이 끝에 빵 조각을 얹어 걷다가 닭이 쪼아 먹으면 좋은 징조로 삼았다.
(한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 자료 참조)


숙소가 참 마음에 들었다. 시설이 좋고, 깨끗했다. 방이 여러 개인데, 나름 아늑했다. 짐을 보관하는 캐비닛도 복도 쪽에 따로 있었다. 이런 곳에 머물면 일단 마음이 안정된다. 하루치 피로가 싹 날아간다. 세미도 이 숙소가 마음에 들었는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바빴다. 정녕 무릎이 아파서 못 오겠다고 징징대던 여인이 맞나? 세미도 반할 만큼 순례자들의 편의를 위해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진 숙소였다.


알베르게 입구, 별로 꾸민 건 없는 듯한데, 돌로 만든 벽이 멋지다.


창문 켠 침대를 배정받았다. 나는 1층 세미는 2층이다. 세미가 아픈 건 맞는데, 막바지에 발바닥이 너무 아파서 나는 네 발로 기다시피 걸어왔다. 접수할 때 둘 다 발이 아픈데 1층 침대는 안 되겠니? 했더니, 역시나 안 된단다. 그렇게 주어진 번호표였다. 일행으로 온 사람들에게는 하나는 1층이고, 나머지는 2층이다. 공평을 위해서라는데, 고개가 갸우뚱할 때가 있다. 다시 사정을 해볼까 싶었는데, 세미가 그냥 배정받은 대로 2층 침대에서 자겠단다. 무릎 아픈 사람인데, 선뜻 바꾸자고 말하지도 못했다. 이 발바닥으로 2층 침대에 오르락내리락 쉽지 않을 듯했다. 아무래도 염증약을 먹어야겠다.

"미안해. 오늘은 내가 너보다 더 심한 환자가 됐다."

"괜찮아. 발바닥 아파서 기어 온 거 나도 봤잖아!"

"넌 무릎 아파서 아예 안 오려고 했잖아!"

"내가 하루 이틀 아픈 게 아니잖아. 오면서 조금 풀렸어."

"나도 하루 이틀 아픈 게 아니지만! 오늘은 많이 아파!"

결론은 내가 못 이기는 척, 1층 침대를 즐겼다는 것!


정말 발바닥이 아파서 나도 모르게, 에구구, 소리를 내며 쪼그려 앉았다. 땅바닥에 널브러진 배낭을 일으켜 세워 샤워용품과 갈아입을 옷을 꺼내는데, 앞 침대에 앉아있던 여인이 놀라서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쪼그리고 앉을 수 있어요? 다리가 당기지 않아요? 아프지 않아요?”

“아, 발바닥이 아파요. 다리도 당기지만 쪼그려 앉을 수는 있어요.”

“와우! 놀라워요.”

"와우! 고마워요."


그녀의 놀란 표정에 나도 한참 웃었다. 사실 순례자들끼리 별 거 아닌 일로 말을 걸고, 별 거 아닌 일로 놀라워하고, 별 거 아닌 일로 고마워하는 분위기가 있다. 서양 사람들이 가부좌를 어려워하는 건 알았지만, 쪼그려 앉는 것도 힘든지 몰랐다. 오래 걸어도 심지어 벌칙으로 또끼뜀을 뛴 과거의 흔적을 뒤져봐도 쪼그려 앉아서 전해졌던 고통보다는 계단을 내려오며 아팠던 기억만 있다. 저질 체력이 모처럼, 동양인의 신비로 찬사를 받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다리가 당겨서, 에구구, 아프다면서도 쪼그려 앉을 수 있다니! 다리가 안 접혀 내지른 명창 사운드인데, 현실은 접히는 각이니, 신기했나 보다.  


빛과 공기 순환을 고려해서 지은 듯하다. 밝고 쾌적한 느낌이다.




지나가는 행인에서
등장인물로


이 숙소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많다. 원래 지나가던 행인이었는데, 등장인물로 무대에 오른 것이다.  그것도 순차적으로!


첫 번째 등장인물은 영국 아저씨다. 이미 침대를 배정받고 어디에서 수다를 떨다 왔는지, 방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떠들썩한 대사가 시작된다. 방 사람들 모두에게 말을 걸고 있다. 내게도 곧 다가올 것이다. 숙소에서도 듣는 BBC 뉴스 말투, 여전하다. 영국식 말투에 왜 자꾸 신경이 쓰이지? 미국 영화에서 흔히들 영국 사람들 흉볼 때 쓰는 말투이기도 해서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내가 미국 영화를 너무 많이 본 죄다. 또 한편으로는 인도 여행 중에 느낀 영국에 대한 저항감 일지 모르겠다. 인도인 특유의 영어 억양과 발음, 식민지배를 했던 영국을 여전히 사모하는 인도 상류층들, 영국 문화의 잔재가 대다수 가난한 인도인들의 삶에 뿌리 깊게 남아있는 현실을 내가 왜 불편해할까? 인도는 독립 후에 영국과 잘 어우러져 살고 있는데, 전생에 내가 인도에서 독립운동이라도 했나? 왜 영국 아저씨의 그 억양이 거슬릴까?


나는 영국 아저씨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아무 일 없듯이 침대를 정리했다. 그는 내가 자신을 먼저 아는 척한 게  반가웠는지, 뭔가를 자꾸 말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여전히 과하게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챘는지, 내 눈치를 보는 듯했다. 사람들은 그의 적극성을 좋아했다. 내게는 비호감 아저씨인데, 사람들에게 호감이다. 다행이다. 마음의 빚 없이 자유롭게 거리두기를 할 수 있으니! 사실 혼자일 때 말 걸어주는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고독의 깊이만큼 고마움도 큰 법이다. 영국 아저씨가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조용히 서 있었다. 내가 짐을 다 정리할 때까지 서 있을 작정인가? 나는 그를 돌아봤다. 혹시 세미를 찾는 건가 싶었다. 그가 조심스레 내게 말을 걸었다.

“이따가 사람들이랑 같이 저녁식사를 할 건데, 같이 먹을래요?"

나는 고민 없이 바로 대답했다.

"아니오! 나는 한국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요. 세미는 참석을 원할 수도 있으니, 물어보실래요?”

아무래도 이 방 친구들 포함, 아까부터 돌아다녀서 알게 된 사람들을 다 모아서 인사 나누는 자리 같았다. 사실 영국 아저씨의 ‘외로움은 절대 참을 수 없어' 파티에 참석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오늘 한국 친구들과 저녁을 먹기로 했다. 사실 우주의 흐름이라는 게 있다. 억지로 연을 맺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처럼, 내게 누군가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 때 거절하지 말았어야 했을지 모르겠다.


마을 안에 이런저런 조형물이 많다. 작지만 예술적인 곳이다.


세미가 갑자기 어려 보이는 한국 여성을 내게 데려왔다. 새로운 등장인물이다.

“수, 이 사람도 한국 사람이야. 혼자 왔대!”

영국 아저씨만 바쁘게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게 아니었다. 세미도 참 적극적인 사람이다. 아까 방에 들어오면서 얼핏 봤던 여인이었다. 홀로 침대에 누워있길래 아는 척할까 하다가 일단 짐부터 정리하고, 씻고 나서 인사나 하자 싶었다. 사실 힘들고 정신없는 와중이라 누구를 아는 척할 여력이 없었다. 한국 사람이 아닐 거라는 생각도 들었기에 인사를 조금 미룬 것이다. 귀여운 얼굴에 싱글거리는 웃음, 성격 좋아 보이는 아가씨였다. 사람 좋아하는 사람은 사람 좋아하는 사람을 알아보기 마련이다. 이름은 '솔'인데, 그녀는 우리와 어울리는 걸 무척 반기며 좋아라 했다. 처음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친해졌고, 이후 내 생명의 은인이 되시겠다.


예술이 깃든 마을 조형물이다.


또 하나의 등장인물, 이 숙소에 한국 여인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까칠녀 되시겠다. 방은 달랐지만, 로비에서 우연히 만나서 수다를 떨었다. 세미가 여전히 그녀와 대화를 잘하지 않았지만, 저녁 얘기나 나왔을 때 까칠녀가 자신이 요리를 해주겠다고 했다. 뜻밖이었다. 슈퍼에서 장을 봐온 뒤 숙소 부엌에서 만들어 먹자는 얘기에 모두 그러마 했다. 마음이 조금 편해져서 그런 제안을 했나 싶었다.


그리고 두둥! 나바라테에서 내 침대 아래에 머물렀던 프랑스 청년의 등장! 그러고 보니, 다들 거기서 거기로 이동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조금 쑥스러움이 많았지만,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말을 걸면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면이 순한 사람이었다. 허우대가 멀쩡해서 건방을 떨 수 있는 각인데, 그는 차근차근 친절한 말투로 사람을 대했다. 노인에게도 정성으로 다하는 모습에 신뢰가 간 사람이었다. 그와 한국 친구들이 함께 어울려도 좋겠다 싶어서 일부러 그를 불러 말도 걸고 그랬다. 그도 이상하리만치 또래 남자들이 없는 이 숙소에서 노인과 여인들 사이에서 말벗이 생겨 좋은 듯했다. 그랬다. 그는 또래 남자들처럼 아침 일찍 순례에 나서거나 빨리 걸어서 먼저 도착하지 않았고, 느리고 느린 우리와 자주 마주칠 정도로 그렇게 여여하게 순례길을 걷던 남자였다. 순례를 늦게 시작해서 적응 중이라 그럴 수 있었다.        





마음의 벌


낮잠 시간이 끝나면 1차로 햄버거를 먹고, 슈퍼에 들러서 늦은 저녁도 만들어 먹자고 했다. 부실한 점심 탓에 햄버거를 늦은 점심으로 칠 셈이었다. 까칠녀와 솔은 점심을 거하게 먹은 탓에 햄버거 원정에는 빠지겠다고 했다. 이들은 슈퍼에 갈 때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이 햄버거 집, 아까 힘들게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 있는 가게였다. 이따가 만날 곳이네, 하며 지나치며 한참을 걸어 들어온 숙소로 걱정한 위치였다. 그런데 이 길을  다시 되돌아가 햄버거를 먹고 또 걸어서 가야 한다니, 솔직히 안 가고 싶었지만, 약속을 저버릴 수 없었다. 아니 그럼에도 햄버거가 먹고 싶었던 것일까?


햄버거 처자가 나타났다. 일찍부터 마을에 도착해서 쉬다가 나왔다는 것! 숙소가 근처란다. 우리만 죽어라 왔다. 그래도 보람은 있겠다. 햄버거 사진이 훌륭해 보였다. 우린 골고루 시켜 먹기로 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지켜보던 주인장이 문을 닫을 거란다. 이게 무슨 말인가? 이곳은 낮잠 자는 시에스타 시간에도 영업을 하고, 일찍 문을 닫는다는 것! 제발 햄버거를 팔라고 해도 재료가 없단다. 음식 만드는 애도 벌써 퇴근했단다. 그럼 아까 들어올 때 얘기를 해주든가! 사진을 보며 황홀해하는 우리를 지켜봐 놓고! 햄버거 여인은 억울한 눈빛이었다. 아까 마을에 들어올 때 먹을 걸 그랬다며 후회를 했다. 그 마음, 이해한다. 기대가 컸을 텐데, 애석할 테다. 하지만 영업시간을 확인 못한 게 우리 죄는 아니잖아! 아쉬움 때문에 모두 시무룩해졌다. 나가서 다른 것을 먹자고 하니, 그냥 숙소에서 대충 먹겠단다. 아, 햄버거만도 못한 인연이여! 지치고 힘든 날이다. 다시 숙소까지 걸어야 했다.


숙소로 와서 까칠녀와 솔을 만나 슈퍼로 향했다. 발바닥도 아픈데, 소염제를 털어 넣고, 먹겠다는 일념으로 잘 걸어 다닌다. 싱싱한 해산물이 자랑인 이곳에 먹음직스럽게 해물이 진열되어 있다. 해물 요리를 해먹을 생각에 군침이 돌았다. 제법 큰 슈퍼에서 장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까칠녀가 진작 이 마을에 도착해 슈퍼를 한 차례 돌아봤단다. 해산물 코너를 알려준 것도 그녀였고, 생선을 구워 먹네 마네 얘기를 꺼낸 것도 그녀였다. 장 보기에 앞서 얼마큼 요리를 할지를 두고 얘기가 나왔다.

"우리 저녁 식사에 드는 비용을 한꺼번에 모아서 준비할까요?"

까칠녀가 시큰둥했다.

"제가 미리 양념 샀는데, 그건 어쩔 건데요?"

갑자기 복잡해졌다.  

"그것까지 합쳐서 나눌까요?"

그런데 솔도 그렇고 세미도 그렇고, 그냥 별다른 대꾸가 없다. 사실 양념을 누가 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 양념은 자기가 앞으로 들고 다닐 텐데, 굳이 합쳐서 나눌 필요가 있겠나 싶었다. 그 정도는 잠깐 빌려 써도 될 정도였으니! 하지만 그녀의 의견도 존중해야 했다.

“그럼 일단 요리에 쓸 재료를 다 합쳐서 계산하죠. 양념은 얼마에 샀어요?”

얼마라고 말하는데, 사실 여기 물가 싼 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내가 양념을 사서 쓰고 싶었지만, 더는 짐을 늘리지 말자!  

"양념 값까지 합쳐서 계산하고, 다 같이 나누면 어떨까요?"

다들 대답을 안 했다. 세미와 솔이 참 비협조적이었다. 그러자 그녀가 갑자기 토라진 표정으로 말했다.

"저 마음을 바꿨어요. 그냥 혼자 해 먹을래요. 생선 말고 버섯요리로 먹을 거예요."


다들 멍해졌다. 나는 내가 뭘 잘못 말했나, 싶었는데, 혼자 마음 바꾼 이유를 내가 어찌 알까? 솔도 충격적인 표정으로 바라봤다. 내가 좀 더 이 까칠녀와 친했다면 이유를 물었을 텐데,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마음이 바뀌었다는데, 이유는 알아 무엇하겠는가! 세미는 이미 기분 상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멀찍이 떨어졌다. 오늘따라 참 비협조적이야!

"나도 요리해 먹기 싫어. 각자 알아서 사자!"

솔과 나만 남았다. 솔은 별로 저녁을 먹고 싶지 않았단다. 돈을 같이 내서 조금 맛보려고 했던 것이다. 이제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생선을 뜯어? 그래, 어차피 인생은 혼자다. 뭔가 해보려 해도 다 틀어지는 날이 있다. 일단 먹고 싶은 거나 실컷 사서 먹자! 오늘은 그런 날인가 보다. 아까 영국 아저씨의 마음을 걷어찬 벌인 듯하다.


한가롭게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싶다.




순례자들의 편의를 최대한 고려한  마을이다.



생사고락 친구들


우리는 각자 먹을 것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사실 힘들어서 요리할 엄두도 안 났지만, 부엌에 사람들이 북적였다. 까칠녀는 혼자서 버섯 요리를 해 먹겠다며 부엌을 분주히 돌아다녔다. 상대의 기분을 잡쳐놓고 아무렇지 않게 굴었다. 우리는 대충 인스턴트로 무장한 먹을거리를 펼쳐서 먹었다. 비닐봉지에서 꺼내기도 귀찮아서 테이블에 봉지 채 올려놓고 얼굴을 파묻다시피 해서 먹었다.  


건너편 휴게 소파에 앉아서 다른 순례자들과 노닥거리고 있는 프랑스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손을 들어 테이블로 오라고 손짓했다. 그가 다가와 우리가 장 본 비닐봉지를 들여다보고 놀라워한다. 봉지 채 파먹고 있는 모습이 웃겼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키키키 웃었다. 영어를 잘 못해도 표정으로 다 말했다.

"오늘 이거 다 먹게?"

"응, 그럴 거야!"

내가 좀 과하게 장을 보긴 했다. 요플레니 뭐니 그에게 먹으라고 건넸더니 고마워하며 받았다. 그는 가난한 순례자 같았다. 그와 얘기를 나누던 순례자에게도 내 간식의 일부가 전달되었다.


드디어 부엌에서 자신만의 요리를 뽐내던 까칠녀가 접시를 들고 나타났다. 맛을 보라며 건넨 버섯요리! 뭐든 안 맛있겠는가! 그녀의 요리를 칭찬하는 걸로 최선의 마무리를 했다. 생각해보니, 자신의 요리에 대한 수고, 그 노동에 대해 책정 안 한 게 이유였을까? 차라리 말을 하지! 이왕 까칠할 거면 대놓고 말을 하지! 보따리 장사가 물건을 펼쳐놓고, 사려는 사람에게 '나 안 팔아' 하고 보따리를 싸매면 어쩌는 거야? 순례길에서는 누구든 요리를 하고, 누구든 설거지를 한다. 요리를 해 준 것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고마움을 표할 수도 있다. 그녀도 언젠가 누군가를 위해 마음 담긴 요리를 해주겠지! 그래.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 믿고 싶었다.


갑자기 까칠녀가 곁에 있던 프랑스 청년에게 버섯 접시를 디밀었다. 맛보라고 하자, 청년이 웬 날벼락이냐는 듯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먹기 싫다는 사인을 보냈다. 그냥 맛보라고 눈짓 하자, 조금 먹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오버 액션을 했다. 입으로는 절대 맛있다는 표현을 하지 않으면서! 사실 그는 마드리드의 고급 식당에서 일하는 매니저였다. 그가 그토록 맛없게 먹은 이유가 바로 그거였다.


여기저기 흩어진 사람들이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마음이 편해졌다. 같이 꼭 어울리지 않아도 같은 공간에서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길을 걷는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아도 동질감을 느낀다. 군대 같기도 하고, 학창 시절 같기도 한 시간들이다. 이런 집단생활이 그리웠나 보다. 순례길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친구들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했다.


슈퍼에 가면 일단 요플레와 과일은 기본이다.




평화가 우리와 함께


미사에 갔다. 성당 문 밖에서 시작을 알리는 성가를 부르며 줄줄이 따라 들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미사 후, 순례자를 위한 시간이 마련되었다, 성당을 소개하는 동안 한국 청년을 보았다. 순례길에서 성당 구경은 많이 해도 미사까지 드리는 청년은 많이 볼 수 없다. 물론 나 역시 매번 미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만큼 신심이 깊은 것도 아니니! 그저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고, 기도 하는 사람을 보면 정화가 된다. 특별히 순례자들을 위한 기도를 해주는 성당 미사에는 세미도 함께 참석했다. 가톨릭은 아니지만 미사 자체에서 평화를 느낀다고 했다. 세미나 나나 종잇장 정도의 차이만 있을 게다.


미사 전, 순례자들을 마중 나오신 신부님들, 그 미소가 좋다.


제단은 소박하게 꾸며졌다.


기도하는 모습만 봐도 숙연해진다.


미사를 준비하는 신부님들의 모습에서 빛이 나는 듯하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성당 내부에서 축복의 빛이 쏟아지는 듯하다



동서양의 만남


피곤한 하루였다. 발바닥 때문에 좀 쉬어야 했는데, 햄버거와 슈퍼를 오가느라 일정표 거리보다 더 많이 걸었다. 마을에서 오간 거리만 해도 몇 킬로는 더 추가됐을 것이다. 이제 자는 일만 남았다. 창문을 닫을 때였다.

"안 돼요. 창문 열어요!"

이 단호한 말투는 무엇? 내게 찬사를 보내던 여인이 조금 날카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 데자뷔 어쩔 건데? 수비리에서 유난을 떨던 이들이 생각났다. 수비리에서도 결국 그들 스스로 창문을 닫았다. 지금 이곳은 수비리의 바람보다 더 차가웠다.

“창문 열고 자면 감기 걸릴 수 있어요!”

그러자 그녀가 강인한 표정을 지었다.

“밀폐된 곳에서 창문을 닫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이 많은 사람들이 숨 쉬는 공기가 어디로 가겠냐고요.”

왜 이토록 예민하게 굴까? 뭔가 이유가 있을 테다. 내게 말하는 걸로 봐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선생님 같다. 학교 선생님한테 혼나는 학생이 된 것 같아서 괜히 심통이 났다.

“설마 창문 닫고 잔다고 죽겠어요?”

“어쨌든 조금이라도 열어놔요!”


젠장! 이런 불편함 때문에 동양인과 서양인을 따로 구분해서 방을 내주는지 모르겠다. 체질상 동양인과 서양인은 차이가 있다. 그걸 알고 있었지만, 이번 순례길에서 여실히 느꼈다. 동양인이 뜨끈뜨끈한 곳에서 아기를 낳는다면 서양인은 아기를 낳고 콜라를 마신 다질 않나? 다음 날에도 동서양의 생각 차를 보게 됐다. 누군가 숙소에서 기침을 했을 때였다. 우리 같으면 바람이 차구나, 하며 창문을 닫아줄 텐데, 이들은 오히려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 사람의 기침으로 우리가 전염될 수 있다며! 이게 바로 동서양의 차이인 것이다.

 

끝내 자기 쪽으로 창문을 열어둔 그녀였다. 머리에 스커프를 뒤집어써도 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불 꺼진 방 안에서 나는 일어났다. 그리고 고민 없이 창문을 닫았다. 그녀가 나를 힐끔 바라보는 듯했다. 왜 닫느냐고 중얼거리는 것 같아서 강하게 했다.

“찬 바람이 내게로 와요. 나 감기 걸리면 당신이 책임 지실래요?”

이렇게까지 말할 줄 나도 몰랐다. 내 이런 반응에 그녀가 '할 많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모드로 잠자코 있었다.


새벽에 추워서 잠에서 깼다. 복도에서 흘러들어온 빛이 희미하게 방안을 비췄다. 어디서 들어오는 바람이지? 분명 창문은 잘 닫혀 있는데? 내게 창문을 열라던 그녀도 침낭을 뒤집어쓰고 자고 있었다. 거봐라, 당신도 춥잖아요! 그런데 어디서 바람이 들어오는 거지? 살펴보지, 또 다른 쪽, 그러니까 내 오른쪽에 있는 창문이 열려 있다.

창 둘 사이에 침대가 놓여 있어서 양쪽에서 바람을 제대로 맞고 있는 것이다. 웃통 벗은 서양 청년도 추운지 쪼그려 자고 있었다. 내 바로 위에서 자고 있는 세미는 바람이 괜찮은 건가? 나는 손을 뻗어 창문을 닫으려 했지만 뭔가에 걸려서인지 다시 끼익 열렸다.


바람이 이토록 찬 데 창문 닫는 인간들이 없다니! 아예 몸을 일으켜 꽉 닫으려 하자, 누군가 창문 고리에 묶은 빨랫줄이 원인이었다. 웃통 벗은 청년이 빨래하고 말리는 중인가? 창문 닫는 걸 포기하고 침낭을 뒤집어썼다. 머리로 찬 기운이 스며들었다. 침낭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서 써봐도 추위가 가시지 않았다. 적막한 숙소 내부에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순례자 숙소임을 말해주는 시그널이었다. 아 추운데, 그런데 그보다 나를 더 강하게 끌어당긴 힘은 잠이었다. 어느새 나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산티아고 순례길]  언제쯤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