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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lolife Aug 27. 2021

층간소음으로 만난 사이

몇 년 전 평생 처음 가져보는 내 집 마련을 하고 심혈을 기울여 한 달 동안의 인테리어를 마치고 손꼽아 기다렸던 이사를 했다.

우리만의 소중한 보금자리에 매일 집에 오는 퇴근길이 설레었다. 한 달이나 지났을까? 퇴근 후 저녁 식사를 마치고 우리 부부는 쉬고 있었는데 "띵동~"하고 초인종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올 사람이 없는데..."


남편과 나는 갸우뚱해하며 인터폰 화면을 보았는데 잘 보이지 않지만 처음 보는 할머니가 서 있었다.

'별일 아니겠지..' 하는 생각으로 남편이 나가보았고 나는 그대로 누워서 쉬고 있었다.


현관문에 서서 남편은 한참 동안 이야기를 했다.

결국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부부만 사는데 층간소음으로 아랫집 할머니가 찾아오신 거였다.

정말 황당하고 놀라웠다.

뉴스 기사에서만 보던 "층간소음"의 현장에 내가 서 있을 줄이야.


'우리는 맞벌이로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8시나 되어야 집에 들어오는데, 층간 소음이라니.'

전혀 예상 밖의 일이었다.


할머니의 말씀은 거실에서 자꾸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끄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밤에 할머니는 거실에서 주무시는데 그 소리에 깜짝 놀라서 잠이 여러 번 깨셨다고 하셨다.

"할머니.. 저희는 그 시간이면 자는데요.. "


"그리고 부엌에서 뭘 떨어뜨리는지.. 내가 깜짝깜짝 놀라요."

'살다 보면 집에서 바닥에 뭘 떨어뜨릴 수도 있는 건데..' 하며 나는 속으로 좀 억울했다.


갑자기 우리가 층간소음의 가해자가 되었단 생각에, 황당했지만 무엇보다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대화를 끝내야 할 것 같아서 사과를 드렸다.

"저희가 크게 쿵쾅거릴 일은 없는데, 앞으로 더 조심할게요. 죄송합니다."

 

그때 우리 집에 찾아온 그 할머니의 모습은 잘 생각나지는 않지만, '예민한 할머니'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이제 막 이사를 왔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조심을 하고 살아야 할지. 조금 답답했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할머니가 다녀가신 후 얼마 뒤에 거실에 있는 긴 테이블에 앉아있던 남편이 일어나면서 의자를 '드르륵' 하고 끄는 소리를 냈다.

'아! 여기구나. 바로 의자 끄는 소리였구나.'

나는 그 이후, 할머니께 미안한 마음에 진짜 살짝 일어나는데, 남편은 자꾸 까먹었는지 빈도수는 줄었지만 드르륵 소리를 내었다. 정말 그럴 때마다 꿀밤 한 대를 콕! 하고 싶었지만, 생각만 해볼 뿐이었다. 주의하라고 이야기를 할 수밖에.


우리는 유레카처럼 원인을 찾은 바로 다음날 인터넷에서 의자 층간소음 방지 아이템을 여러 개 구입했다.

우리의 로망이던 거실에 긴 테이블을 치울 수는 없고, 의자 층간소음 방지는 어떤 게 먹힐지 몰라 다양하게 시도를 해 보던 중이었다. 하지만 소리를 방지하는 적합한 아이템을 찾을 수는 없었다.

얼마 뒤 결국 우리는 거실의 긴 테이블을 다른 방으로 치웠다.


처음 할머니를 뵌 뒤 한참을 마주치는 일이 없었다.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오는 우리의 패턴과 할머니의 패턴이 맞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주말이었을까?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아랫집 할머니가 보행보조기를 밀며 천천히 걸어오셨다. 우리 집에 처음 인터폰을 누르셨을 때는 그냥 오셨었는데..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드렸다.

"... 네 안녕하세요." 하고 대답하셨지만, 내가 누군지 모르시는 눈치였다.


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리 집 층수를 누르자, 할머니는 그제야 내가 윗집에 산다는 걸 아셨다.

"아, 윗집 새댁이에요?"

"네~ 할머니, 요즘도 많이 시끄러우세요~?"

"요즘은 괜찮아요. 살다보면 소리가 날수는 있죠. 그런걸 내가 이해못하는건 아니고 낮에 시끄러운 건 괜찮은데 밤에는 내가 놀래니까 조심해줘요."

"할머니 다녀가신 뒤로 조심하고 있어요. 혹시 저희 시끄럽다 느껴지시면 꼭 다시 말씀해주세요. 죄송해요."

"네. 그래요. 잘 가요~"

엘리베이터는 우리를 금방 내려주었다. 아주 짧은 문장의 대화만 오고 갔을 뿐이다.


그 이후로도 자주는 아니었지만 할머니를 마주칠 때마다 늘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요즘은 소음 어떠시냐고 인사 다음으로 묻곤 했다.

처음 할머니를 만날 땐 보이지 않았는데, 할머니는 80세는 넘어 보이시고 허리가 많이 굽어있었다. 보행보조기를 밀며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움직이며 다니셨다. 말씀은 부드럽게 하셨고 피부는 참 고우셨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났다.

우리는 어렵게 아이를(정확히는 쌍둥이 아이들을..) 갖게 되었고, 한동안 병원에 머무르는 일이 많았다.

출산을 하고 나서는 육아에, 코로나에 밖을 나갈 일이 별로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할머니를 만난 적이 없었다가, 올해 초 쌍둥이 둘을 데리고 우리 부부는 차로 드라이브를 갔다가 잠이 든 아이들을 안고 아파트 1층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는, 우리가 갑자기 두 아이를 안고 있어서 정말 깜짝 놀라셨다.

"언제 이렇게 아기가 생겼어요? 그것도 둘이나? 아이고 진짜 고생했네...

어디, 애기들 좀 보자."

"애들이 지금 자고 있어서요~"

나는 겨우 잠든 아이들이 깰까 봐, 조금은 불안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깨에 파묻혀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려고 하시자, 아이들이 깨서 울음을 터트렸다.

'아, 결국 깨우셨구나..'


그 뒤로 유모차를 끌고 나가는 시간과 할머니가 산책하시는 시간이 겹쳐 전보다는 자주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쳤다. 할머니는 우리 쌍둥이들을 너무 이쁘게 바라봐주셨다. 그 할머니의 모습에 몇 해 전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가 종종 생각이 났다. '우리 외할머니도 살아계셨으면 우리 아이들을 많이 예뻐해 주셨을 텐데..'


"애들 보러 한번 놀러 가도 돼요?"

"네 그럼요. 할머니, 언제든 오셔도 돼요."


"애들 잘 먹어요? 뭐 좋아해요?"

"저희 애들 다 잘 먹어요. 특히 과일을 좋아해요. 과일을 저희보다 더 많이 먹으려고 해요."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 후로 할머니와의 대화 주제는 층간소음에서 아이들로 바뀌었다.


내가 급한일이 있어서 막 달려가다가 할머니를 만날 때도 할머니는 애들은 어디 있냐며 안부를 물으셨다.


긴 대화들은 아니었지만, 짧은 대화들은 처음 할머니를 만나며 느꼈던 인상을 바꾸어놓았다.


혼자 사시는 나이는 정확히 모르지만 80세 이상의 할머니가 얼마나 적적하실까?

할머니의 일과는 어떠실까?

우리 외할머니도 허리가 굽고 피부는 고우셨는데..

우리 외할머니 같은 마음으로 늘 '과일 한번 사다 드려야지.' 했는데, 실천을 못했다. 할머니를 만날 때면 반가움과 동시에 왠지 모를 애틋함 같은 게 느껴졌다. 마음속으로는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 한 끼 대접해드리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실천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늘, 저녁밥을 먹은 아이들을 목욕을 씻기고 나왔는데 남편이 아랫집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한다.

할머니가 한번 집에 오시겠다고 하는데 애들 목욕하고 있어서 30분 뒤에 오신다고 하셨다.

우리는 드릴 과일도 변변치 않아서 마음이 조금 그랬다. 우리는 곧 10일 뒤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예정이라 할머니께 인사드리려고 했는데 잘됐다고 생각을 했다.


7시가 되자, "띵동~"하고 초인종이 울렸다.

할머니는 보행보조기도 끌지 않으신 채, 천도복숭아를 들고 서 계셨다.

"할머니 어서 들어오세요. 여기 앉으세요. 애들아~ 할머니께 인사드려."

하고 할머니가 천천히 들어오시면서 자리에 앉으시는데, 애들은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조금 뒤 낯가림에 동시에 울음을 터트렸다.


할머니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신 채, 애들한테 미안하다며 울지 말라고 하셨다.

너무 죄송해서, 아이 둘을 우리 부부가 안고 있으니 할머니는 일어나시며 가시겠다고 하셨다.


그동안 아랫집 윗집으로 살면서 길게 대화도 못했는데, 너무 아쉬워서 애들 처음만 울지 지금은 괜찮다고 말씀드리며 할머니를 붙잡았다.

할머니는 일어나셔서 벽에 손을 짚고 허리를 굽히신 채 대화가 오고 갔다.

우리의 이사 이야기. 할머니는 이 아파트에 15년을 사셨다고 하셨다. 그전에 어디에 사셨는지, 딸은 어디에 있는지 등등 소소하지만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들을 했다.

우리는 앉으시라고 했지만, 할머니는 가시겠다며 현관문으로 향하셨다.


"할머니, 천도복숭아 너무 잘 먹을게요. 애들이 너무 좋아하는데 감사해요."

"그동안 애들 뭐 먹을만한 거 줄려고 그랬는데 잘 안됐어요."




가슴 한켠이 울컥했다.

이사를 결정하고 나서, 새로운 곳으로의 이사를 손꼽아 기다리면서도 아랫집 할머니께 인사드려야 하는데.

하고 마음만 있었는데, 할머니가 먼저 우리 집에 오셔서 아이들 먹이라며 천도복숭아를 주시다니...

거동도 불편하신 할머니가 천도복숭아를 사러 가시고 무겁게 들고 오셨을 생각을 하니 뭉클함이 들었다.

천도복숭아 한팩은 값으로 메길 수 없는 감사함이 담겨있다.

우리 쌍둥이들을 예뻐해 주시는 할머니 생각에 짧은 시간 머무른 이 집을 떠나는 게 문득 너무 아쉬워졌다.


'요즘 같은 세상에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데, 할머니가 우리 가족에게 사랑을 주시는구나.. '

하는 생각에 가슴이 너무 따뜻해졌다. 너무나 감사했다.

이사 가는 곳에서 또 이런 따뜻한 이웃을 만날 수 있을까?

우리 쌍둥이들 덕분에 좋은 할머니를 만났다.

층간 소음으로 처음 만났지만, 결국 따뜻함을 간직한 채 인사를 드리게 돼서 너무 다행이다.

할머니와 조금 더 가깝게 지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든다.

마음은 있었지만 먼저 할머니께 다가가지 못한 나 자신도 부끄러웠다.


이사 가기 전, 할머니 집 초인종을 처음으로 눌러보고 두유를 선물해드려야겠다.

그동안 너무 감사했다고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다.

할머니의 따뜻한 손도 잡아보고 싶지만 코로나라 거리두기는 해야겠다.


나도 누군가에게 할머니처럼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웃에게 사랑을 주는 사람처럼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감사합니다. 아랫집 할머니.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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