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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변의 사건일지 Apr 25. 2021

증인이 된 교사 피고가 된 교사

교사, 학생, 학부모 법원에서 만나다



담당교사를 증인 신청해주세요. 항소심 재판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급기야 담당교사를 증인으로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다친 학생 본인이 사고일을 어떻게 모를 수가 있죠? 사고 났을 때 담당교사가 목격했습니까? 재판부는 다시금 의아하다는 말투다.



기본적인 사실관계 조차 특정되지 않았는데 판단을 내려버린 1심 재판부에 대한 질문일까 원고에 대한 질문일까? 어느덧 나도 재판부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5년 전 이 사건을 목격한 담당교사의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연락하고, 사안을 설명하고, 증인으로 나와주십사 요청하고, 증인신청서를 작성하고, 증인신문사항을 첨부할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공무원인 교사의 경우 피고가 교육감이라면 출장 복무가 가능하겠지만 사립 교원은 평일에 어찌 법원에 나오시라고 할까.  



사고일이 1일인지 2일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학교에서 다쳤다는 학생, 학생이 학교에서 다친 적은 있지만 1일도 2일도 아닌 10일이라는 교사, 학생이 어디서 다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병원에 온 것은 20일이라는 의사. 원고가 학교에서 다친 것이 맞긴 한가? 원고의 주장에 신빙성 문제가 있다는 재판분의 심증이 형성된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손해배상 사건에서 사고일을 특정하는 것은 기초 중의 기초 사실관계. 확실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원고가 주장하는 사실관계의 일부가 거짓으로 밝혀지면 원고 주장 전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기도 한다.



 다른 재판. 체육 수업 시간, 남학생이 휘두른 플라스틱 라켓에 뒤쪽에  있던 여학생의 얼굴이 가격 당한 사건. 수업 중에 다쳤으니 불가항력 아닙니까? 25명이 넘는 아이들을 어떻게  컨트롤합니까? 항변하는 교사.



어쨌든, 교사는 학생들이 장난을  치도록  의무가 있는  아닌가요? 차갑게 응수하는 재판부.  기일  속행합니다. 원고와 피고는 내실  있으면 다음 기일 전에 모두 내주시기 바랍니다.   



변호사마다 전략 상 차이는 있으나 피해자가 아닌 다음에야 관련자가 재판에 출석해 재판부에게 원망을 늘어놓는 행위는 권장하지 않는다. 한 명의 교사가 스무 명이 넘는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교사의 말은 심정적으로 수긍이 간다. 그러나 증거가 없는 그저 무익한 항변에 지나지 않으며 나아가 자칫 ‘감정적인 사람’이라는 나쁜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다.



증거가 없는 주장은 말잔치에 지나지 않는다. 증거가 없다면? 현장 사진, 학생 인원수 등  현황이나 수치 등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과학적으로) 설명하려 애쓰는 편이 낫고, 다른 학생 등 제삼자 입장에서 작성된 진술서 등을 제출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어쨌든, 캡틴 마블급 예지력이 아니고서야 돌발적으로 발생한 사고를 예견하기 어렵고, 독수리급 동체시력을 지니지 않고서야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기 어려웠다는 주장에 부합하는 증거와 소명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남학생이 휘두른 배트에 얼굴을 맞은 여학생이 상해를 입은 사건이다. 학생의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고 성형외과 레이저 치료를 수 차례 받았으나 얼굴에 흉터가 남을 것 같다. 흉터가 남을 경우 장해 판정이 나올 수도 있는 사안이다. 장해 판정이 나오면 치료비 이백만 원은 시작에 불과, 손해액은 수천 만원에 이를 수도 있다.



사안의 중대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막상 가해자인 남학생의 부모는 대리인도 없이 재판부에 혈혈단신으로 나타났다. 혹시 피고*** 나왔나요? 아 방청석에 계신가요? 어머님, 아드님이 배트를 휘둘러 원고에게 상해를 입힌 것을 인정합니까? 재판부가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방청석의 한 아주머니에게 질문을 한다. 한 아주머니가 방청성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판사님 우리 아이가 지금 군대를 가서 못 나왔는데요, 제가 듣기로는 친구들끼리 체육 시간에 장난 삼아 배팅 연습을 한다고, 그것도 선생님이 있는 수업 시간에 그렇게 한 거 같은데, 학교폭력도 아니고, 여자애가 애들이 배트 휘두르고 하면 피해야지 그걸 구경한다고 뒤에 있다가 그런 건데, 그게 백 프로 우리 애 탓이라고 볼 수 있나요? 어딘가 모르게 당당함이 몸에 밴듯한 아우라. 남학생 어머니의 목소리가 재판정을 쩌렁쩌렁 울렸다. 아이고 어머니...



피고의 어머니는 재판부가 묻지도 않는 사실까지 술술 풀어냈고 오히려 밑도 끝도 없이 피해자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었다. 심지어 수업시간에 일단의 남학생들이 ‘장난’을 쳤다고 말하여 담당교사가 안전지도를 게을리했다는 뉘앙스를 남겼다. 남학생 어머니의 ‘발언’ 이후 머리가 지끈거렸다.



가해자가 가해행위를 인정하는 것까진 좋다 그러나 수업의 일환도 아니고 ‘장난’으로 그랬다면? 재판부는 수업 시간에 장난을 치도록 방조한 교사에게 일부 책임을 물을 것이다... 어머님은 자신의 군대 간 아들은 물론 담당교사까지 불리하게 만든 폭탄발언을 하였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유유히 재판정을 빠져나갔다.



한아름

현) 법무법인 LF 파트너 변호사

현) 경기도교육감 고문변호사

ARHAN@LFLA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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