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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성 Aug 19. 2015

게임적 세계관

세상은 게임이다


살짝 세대차를 느끼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제가 최초로 접했던 게임은 어린 시절 오락실에서 만났던 '핑퐁'입니다. 흑백 화면에는 공 하나와 아래 위에 작대기 두 개뿐. 버튼이라고는 오직 좌우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다이얼 하나. 수 십 년 전 만난 최초의 게임 이래로 지금은 꾸준한 진화를 거듭한 디아블로 3의 놀라운 세계에 빠져있으니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최초의 게임 역시 현실세계의 탁구를 모방한 것이었고, 놀라운 발전 속에서도 게임은 한 방향으로 진화합니다. 그것은 바로 현실세계의 집요한 모방입니다. 게임의 현실모방이 일정한 수위를 넘어가자 이제는 역으로 게임을 통해 현실세계를 돌아볼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성장하고 진급하는 것을 게임 세계의 레벨업으로, 재산을 늘리거나 물건을 사는 것을 아이템을 얻는 것으로, 우리가 성취해야 하는 것들을 미션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을 친구 맺기로, 배우고 익히는 것들을 능력치나 스킬로... 이제는 오히려 현실에서 무언가 해내야 할 일이 있을 때 게임적인 사고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모습을 발견할 때도 있을 겁니다. 

이처럼 게임이 현실을 닮아가며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왔으니 우리가 게임을 보며 현실세계의 작동원리를 유추하는 것은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닙니다. 게임을 통해 현실세계의 계급, 경제, 심리, 경쟁, 소유, 삶의 모티베이션과 욕망, 사회성 등을 살펴볼 수 있고, 그것은 마케팅 캠페인의 발상에 있어서도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위치기반 서비스인 포스퀘어는 이러한 게임의 속성 중에서 아이템 시스템과 '레벨업 시스템'을 빌려온 것입니다. 특정 장소에 여러 번 체크인하면 받게 되는 배지시스템이나 슈퍼유저가 되면 특정 장소에 대한 수정권한을 갖는 레벨 시스템이 있어 단순한 SNS를 뛰어넘어 게임적 흥미와 동기를 제공하며 서비스를  활성화시키고 있습니다. 포스퀘어는 제휴 마케팅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져 영국의 한 호텔은 숙박 중에 체크인(호텔 체크인이 아니라 포스퀘어로 체크인)을 하면 체크아웃 시간을 2시간 연장해주는 서비스를 하기도 했으니 현실계-> 게임계->다시 현실계로 적용이 되는 혼합현실을 체험할 수 있기도 합니다. 

[8-1] 포스퀘어 : 대학에  체크인하면 제공되는 배지

이처럼 게임적 세계관은 마케팅 캠페인에 다양한 영감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게임의 조상 격인 보드게임을 돌아봅시다. 우리가 한 번쯤 경험해 본 블루마블이라는 보드게임의 효시는  모노폴리라는 게임인데요. 모노폴리에 포스퀘어라는 위치기반이라는 SNS속성과 스마트폰이라는 디바이스가 더해져 현실과 가상세계의 경계를 무너뜨린 캠페인을 하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일단 자신의 스마트폰에 '포스퀘어폴리(Foursquaropoly)'를 다운받아 소유하고 싶은 빌딩이 있으면 체크인만 하면 자신의 것이 됩니다. 이렇듯 자신이 구입하고 싶은 실제 건물을 하나하나 '가상으로' 구입하면서 실제 모노폴리의 세계관과 룰을 그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자신이 소유한 건물에 대해 정보까지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노폴리의 스케일이 현실의 1:1 스케일로 원대하게 펼쳐지는 멋진 캠페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8-2] 현실 스케일의 포스퀘어폴리(Foursquaropoly)

아! 이미 팔렸구나

게임이라는 메타포는 숙제를 미션으로 만들어준다


단순한 슈팅게임에서부터 샌드박스(sand box)류의 게임은 물론 MMORPG에 이르기까지 '미션'이라는 것은 게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동물의 숲에서 동물친구들이 선물을 전해달라, 화석을 구해달라 그렇게 심부름을 쉬지 않고 시켜도, 월간 사용자가 3천만 명이 넘는다는 팜빌(Farlville)에서 온갖 농작물을 심어라, 수확해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동을 시켜도 게이머들은 즐겁게 수용하고 있습니다. 미션 자체가 게임이기도 하고, 레벨업의 중요한 방법이기도 하며 원하는 아이템을 얻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액티비아라는 장 건강 음료는 인도네시아 트래킹 여행을 보내주는 인센티브를 걸고 6주간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이런 장기 캠페인의 경우 흥미의 지속과 꾸준한 과제가 핵심일 수 있겠는데 액티비아의 경우에는 5단계의 미션을 제시했습니다. 아! 단 하나의 과제도 캠페인에 있어 높은 진입장벽일 수 있는데 5단계라뇨? 그러나 이런 형태의 캠페인에 있어 중요한 것은 낮은 난이도가 아니라 얼마나 흥미로운 세계관을 제시하느냐가 핵심이 됩니다. 

 

[8-3] 5단계 미션을 제시한 액티비아 캠페인


우리가 게임상의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밤을 밝히며 눈을 충혈시키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게임의 세계관에 몰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8-4] 현대자동차의 'Run, chicken Run' 페이스북 캠페인

소셜게임의 형식과 스마트폰의 움직임을 PC게임에 대응하는 특이한 사용성으로 화제를 모은 현대자동차의 페이스북 캠페인인 'Run, chicken Run'의 경우 체험자들에게 다양한 숙제(?)를 요구하도록 기획되어 있기 때문에 매력적인 세계관을 제시하고 몰입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게임 시작 전에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닭들의 세계와 나쁜 닭들로부터 착한 닭들을 구해야 한다는 간절한 스토리를 게임의 배경이 되는 세계관을 플래시 영상으로 보여주었는데, 시간이 걸리고 친구들을 동원해야만 하며, 스마트폰을 노삼아 죽도록(!) 저어야 하는 어려운 미션들을 끝까지 수행하게 만드는 동기를 제공했습니다. 이렇게 전체를 관통하는 세계관은 지도나 영양제 등 현대자동차의 고성능 연비를 암시하는 아이템을 얻기 위해 친구를 초대하는 과정 등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습니다. 

흥미롭게 몰입시키는 세계관의 구성은 캠페인 미션의  수행뿐만 아니라 흥미의 지속, 참여 동기 부여, 자발적인 확산까지 게임형 캠페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8-4] 현대자동차의 'Run, chicken Run' 페이스북 캠페인


열린 결말: 스토리를 유저에게 위임하라


게임 세계에서는 유저의 선택에 따라 다른 결과를 제시하는 방식이 보편적입니다. 역전재판 같은 법정 시뮬레이션 게임은 물론 헤비레인 같은 게임은 유저 스스로의 판단으로 상황을 해결해야 하고 그 선택에 따라 스토리가 전개되고 결말이 결정됩니다. 이러한 형식 자체는 게임에서 흔히 보게 되지만 차이가 있다면 그 자유도의 폭이 얼마나 넓으냐겠죠. 이렇게 자유의지가 중심이 되어 몰입감을 극대화하는, 게임을 모방한 캠페인은 페이스북 캠페인에서 다양하게 등장하는데, 이것이 오프라인의 실제 극장에서 구현된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8-5] 헤비레인의 선택: 말 안 듣는 아들에게 뭐라고 말을 걸어볼까?

극장용 인터랙티브 광고인 '13th street'는 위험에 처해있는 주인공을 탈출하기 위해 관객을 개입시켜 탈출이라는 공동의 미션을 수행하게 합니다. 영화가 전개되며 특정 관객에게 주인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어디로 도망가면 살 수 있을까요? 주인공을 살리건 죽이건 그건 오로지 관객의 선택. 스토리의 갈림길마다 다양한 참여자들의 의지에 따라 정말 다양한 경우의 수로 결말은 귀결되죠. 이건 여담입니다만, 이런 열린 결말의 영상 캠페인들은 많이 기획되곤 하지만 '다양한 경우의 수'만큼의 촬영이 요구되므로 흔히 예산 압박과 일정 압박으로 인해 기각되는 아이템이기도 합니다. 

[8-6] 13th Street: Last Call – the First Interactive Theatrical



주변의 모든 것은 인터페이스이며 컨트롤러다


게임을 제대로 즐기기 위한 최소한의 요소가 있다면 역시 인터페이스(화면)와 컨트롤러(조종기)입니다. 개인적인 게임이라면 TV 스크린이나 PC 모니터가 인터페이스가 되겠고 키보드, 마우스나 TV게임의 컨트롤러가 되겠죠. 그러나 게임이 스퀘어라는 공간으로 나왔다면? 열린 공간에서 무엇이 인터페이스와 컨트롤러가 될까요? 

[8-7] Ariel, big stain 중국 2011 칸 광고제 media부문 Bronze 수상작


사진을 보시면 대형 티셔츠가 하늘에 매달려 있고 사람들이 무언가를 뿌려대고 있는 장면이 보이시죠. 중국에서 진행되었던 Procter & gamble의 세제 브랜드의 캠페인 장면입니다. 세제의 강력한 기능을 체험시키기 위해 게임을 활용했는데, 일단 대형 티셔츠가 게임을 위한 인터페이스가 됩니다. 경험자들을 위해 위모트에 세제 모양의 케이스를 입혀서 컨트롤러로 제공합니다. 참여방식은 단순합니다. 대형티셔츠를 향해 위모트를 흔들면 빔프로젝션이 티셔츠에 패턴을 만들어냅니다. 두 그룹으로 나눠서 진행을 하는데 한쪽은 더럽히는 쪽이고 한쪽은 세제를 뿌려 세탁(?)하게 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네요.

 

[8-8] Ariel fashion shoot 캠페인 스웨덴


앞에서 소개한 Ariel은 중국에 이어 스톨홀롬에서도 특유의 단순한 게임성을 가진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오프라인의 한계 때문에 많은 사람이 경험을 할 수 없었지만 이번 캠페인은 온라인에서 페이스북을 통해 오프라인의 팝업스토어에 설치된 설치물을 조작해서 게임을 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내부가 보이는 팝업스토어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 흥미로운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온라인에서도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오프라인에서 진행되는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직접 페이스북 페이지의 앱에 접속한 사람은 로봇을 조작해 돌아가는 티셔츠를 맞추게 됩니다. 게임 참여자에게 자사의 세제로 자신이 맞춘 티셔츠를 세탁해 세제와 함께 발송해 준다고 합니다. 아무리 오프라인 공간에서 디지털 툴을 활용해 캠페인을 전개한다 해도 온라인을 통한 다수의 동시체험과 공유, 확산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스퀘어드 캠페인이 될 수 없다는 면에서 Ariel의 이 캠페인은 우리에게 '스퀘어드 캠페인'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어쨌든, 게임의 레벨업 시스템, 아바타 시스템, 아이템 개념, 경쟁구도, 승부, 집단 참여, 스토리텔링 등 다양하고 검증된 요소 들은 광고 캠페인을 설계하는 데 정말 많은 힌트를 줍니다. 게임을 열심히 하면 훌륭한 크리에이터가 된다는 말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크리에이터가 되려면 반드시 열심히 게임을 해야 한다는 것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미래에는 더욱. 그리고 더 먼 미래에는 반드시 한 가지 당부를 더한다면, 캠페인 설계에 있어 어느 게임에서 영감을 얻을 지 모르니 게임 장르는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골고루. 자, 이제 저도 그만 밀린 미션을 수행하러 가기 위해 글은 여기에서 접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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