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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성 Jul 17. 2015

이성적 낙관주의

1  


한 고등학교 교실. 미래를 주제로 글짓기를 시작한다면, 극작과나 영화과의 강의실에서 미래를 주제로 한 시놉시스를 과제로 내 준다면, 혹은 사회학과 강의실에서 미래를 주제로 한 시험의 답안을 작성하고 있다면? 그들은 1시간 후 어떤 답안을 제출할까요? 아마도 그 답안은 개인의 개성과 주체를 상실한 전체주의 사회와 유전공학의 남용으로 인한 복제인간과의 갈등과 윤리 문제, 로보트들의 반란, 환경오염으로 삶터를 잃은 동식물들, 다국적 기업이 지배한 인간성 상실의 도시 등의 암울한 미래로 가득차 있을 것입니다.   

갑자기 암울한 미래 타령이라니 좀 어리둥절 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얘기를 계속 이어가보겠습니다. 디스토피아를 그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조지오웰의 소설 ‘1984’는 미래를 전체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거리와 집 그리고 도시 곳곳에 설치된 “텔레스크린”을 통해서 시민들은 감시를 당하고 빅브라더(독재자)의 지배를 받는 거대한 파놉티콘*의 세상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극장에서 만나는 SF영화는 물론이요, 사회과학자들이 내는 미래예측 역시 디스토피아 일색입니다. 영화에서 부정적인 미래, 통제된 사회를 표현할 때는 항상 디지털적인 모티브가 클리셰처럼 활용되곤 합니다. 그러니 일반 대중의 인식속에서 미래=통제사회라는 등식이 자연스럽게 그려질 만도 하죠.   

사실을 말하자면, 인류는 각종 전염병과 난치병을 해결하고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있을뿐 아니라, 녹색혁명으로 대변되는 질소비료와 유전공학으로 대기근과 기아를 빠른 속도로 지구에서 밀어내고 있습니다. 이토록 세상은 진보하고 있는데 왜 인류는 기술을 경계의 대상으로 보고 있을까요? 왜 사람들은 긍정적인 모습이 아닌 부정적인 모습에 더 관심을 갖는 걸까요? 왜 매스미디어나 문화생산자들, 그리고 사람들은 왜 디스토피아를 생산하고 소비하고 있을까요? 결국은 기술 그 자체보다는, 기술을 다루는 인간에 대한 불신, 역사적 사실이 주는 트라우마 때문이 아닐까요?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플루토늄이 핵무기로 돌아왔던 사례, 편익만을 줄 것이라 믿었던 핵발전소가 재앙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뿌리깊은 불신과 두려움으로 남았던 것 아닐까요?   

매트 리틀리는 저서 ‘이성적 낙관주의’에서 미래를 보는 우리의 시각이 편향되거나 부정적인 선입관이 많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그것은 그러한 부정적 미래가 출판시장에서도, 학계에서도 더 많은 관심을 끌고, 더 많은 판매를 기록하기 때문이라고 거침없이 지적합니다. 내러티브 측면에서 봐도 파라다이스보다는 디스토피아가 더 많은 소재를 제공하고 갈등과 해결이라는 스토리텔링을 쉽게 추출해낼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러나 “인간은 진보할 것이며,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라고 ‘매트 리틀리’는 광범위한 사례를 들어 단호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2    

2010년, 많은 분들이 튀니지로부터 시작된 재스민 혁명을 손에 땀을 쥐며 지켜보셨을 것입니다.   

한 지방도시인 시디 부지드 거리에서 무허가 노점상을 하던 한 20대 청년이 경찰의 단속에 항의해 분신자살을 했고, 이러한 사연은 청년층의 분노를 촉발시켰습니다. 여기에 장기집권으로 인한 억압통치, 집권층의 부정부패 등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이 쌓여 있던 시민들이 합세하면서 전국적인 민주화 시위로 확산됐었죠. 결국 당시 튀니지 대통령은 2011년 1월 14일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하게 됩니다. 아프리카, 아랍권에서 쿠데타로 독재정권이 무너진 경우는 흔했으나 그 자리에 또다른 독재정권이 들어설 뿐 이러한 민중봉기로 정권이 무너진 것은 사상초유의 일이었습니다.   

재스민 혁명은 이집트를 비롯해 알제리ㆍ예멘ㆍ요르단ㆍ시리아ㆍ이라크ㆍ쿠웨이트 등 독재정권에 시달리던 아프리카 및 아랍국가로 민주시위가 점차 확산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서방언론에서는 SNS가 재스민 혁명의 결정적인 도구가 되었다는 분석이 쏟아져나왔습니다. SNS는 민중을 각성하게 만들고 저항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던 것일까요? 물론 SNS가 그런 역할을 해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민중은 원래 각성되어 있었고 구체제에 분노하고 있었으나, 손을 내밀면 잡아줄 동지가 있는 지 확신하지 못했을 뿐이었습니다. '손을 잡게(networking)'해 준 것,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을 준 것이 SNS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어찌보면 민중은 어리석었거나 용기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연대하고 소통할 수단을 갖지 못해왔을 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생각을 정리해 봅시다. 아프리카-아랍권의 극도로 통제된 전체주의 사회는 기술이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전체주의 사회를 깬 도구가 되었습니다. 바로 SNS라는 정보기술이 만든 것입니다. 많은 기술은 그 동안 세계의 소수의 엘리트 그룹을 통해서 이끌어져왔고, 사용되어 왔지만 정보기술이 낳은 SNS는 오히려 재스민 혁명을 이루고 민중을 해방시켰습니다.   

SNS를 통한 민중혁명으로 새로운 민주정부를 수립한 아프리카-아랍국가들이 앞으로 스스로의 정부를 그대로 유지해나갈지는 알 수 없지만, 과거처럼 아마 다시 전체주의 국가로 돌아가고 유지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한 번 개방된 정보는 다시 독점되기 어려운 불가역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개방된 정보는 개방된 권력을 낳게 될 것임을 믿습니다.   

거창하게 민중혁명 같은 큰 사건 뿐 아니라 사소한 곳에서도 SNS는 소셜 기부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세상을 더욱 바람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재난 경보나 구제의 중심이 되기도 하고 정치권이나 정부가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들을 해결해나가기도 합니다.     

소통없는 불의의 기술은 세상을 언제든 공포로 몰아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의 SNS로 대변되는 IT기술은 대중에게 정보에 대한 접근권한, 여론형성 그리고 정보공유와 소통, 그리고 실행의 수단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권력에 통제되기 쉬운 매스미디어의 빈자리를 소셜네트워크가 채워나가며 디스토피아로 달려나갈 수 있는 세계에 강력한 브레이크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3  

최근 SNS와 함께 놀라운 속도로 변해가는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물론이며 아이폰으로 대변되는 스마트폰의 혁명과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뉴미디어의 물결, 그리고 내가 몸담고 있는 마케팅이라는 필드, 정확히 말하면 디지털 에이전시라는 일터에서는 이러한 변화의 속도에 적응해나가기가 정신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던 중 한 존경하는 캠페인 디렉터의 트위터에서 "광고를 광고로 부르는 것이 더이상 적절한 지 모르겠다"는 짧은 글을 접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상념에 빠져들었습니다. 광고라는 단어가 가진 '널리 알린다'사전적 정의에서 이미 광고가 가진 함의는 한참 벗어난 지 오래입니다. 광고라는 단어를 들으면 바로 연상되는 4대매체라는 낡은 표현도 이미 너무나 부적절하게 느껴집니다. 라디오와 잡지광고의 비중은 이미 온라인광고에게 자리를 내준 지 오래이니까요.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유명 해외광고제에서는 이미 퍼포먼스나 OOH(옥외광고 : Out of Home) 등의 다양한 BTL 툴들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인쇄매체나 전파매체 광고를 찾아보기가 더 힘들 정도로. 이러한 트렌드를 현장에서는 소셜마케팅, 멀티플랫폼 마케팅, 크로스미디어 마케팅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어의 틀은 광고현업의 빠르고 넓은 움직임을 가두기에는 부족해보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의 고민은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을 무엇이라 부를까?'. 어떤 이름표를 달아주느냐에 따라 일하는 목표(goal)나 지침(guide)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고, 해외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궁금해서 많은 자료를 기웃거려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런 광고캠페인이 더욱 강력해질 수 있는 지를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1년 정도 축적된 고민과 나름대로의 결론을 한권의 책으로 묶어보았습니다. 다소 논쟁적인 주제일수도 있고 다소 주관적인 생각의 편린일 수도 있겠지만 용기를 내서 세상의 많은 의견에 한 가지 생각을 더 보태봅니다.   

이 모든 흐름을 하나로 규정하고 당분간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하나의 단어는 '광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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