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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only living boy Aug 06. 2023

배낭을 버리다

오랫동안 함께 해온 배낭을

 배낭의 밑둥이 찢어져 물건들이 그곳을 통해 바깥으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는 나는 몹시 슬퍼졌다. 그 슬픔은 더 이상 그 배낭이 나와 함께 여행을 다닐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왔다. 

 수많은 장소를 오로지 나와 둘이 함께 했던 배낭이었다. 내가 슬피 울던 보우 강가에서도, 벅찬 가슴을 열던 그랜드 캐니언의 일출 앞에서도, 비를 쫄딱 맞은 멜버른의 뒷골목에서도 이 배낭만큼은 내 등에 꼭 매달려 나와 함께 해주었다. 그게 나에게 얼마나 커다란 위안이었고, 힘이었고, 다시 걷게 할 동력이었고, 용기의 원천이었는지 그건 누구도 모를 것이다. 여행을 함께 한 동반자를 잊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제 더이상 쓸모 없어진 물건을 버리는 일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거기에 울컥하는 애착이 들때, 수많은 기억들이 마들렌을 먹은 후처럼 한꺼번에 달려들 때 ,어찌 그리 쉽게 그걸 버릴 수 있겠는가? 

 이 배낭을 버리면 추억들이 모두 사라질까? 배낭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구석의 주머니에서 외국의 동전들과 그녀에게서 받은 카드가 나왔다. 나는 그것들을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신기하게 들여다 보았다.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강물에 조용히 종이배를 띄우듯, 배낭을 저멀리 의류수거함에 넣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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