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한 때의 소나기 같다고 했던가."
앰비 밸런스 (Ambivalence. 상반 병존 감정) 라틴합성어. 동일 대상에 대해 동시에 두 개의 서로 모순 대립하는 감정적 태도가 존재하는 것. 브로이어가 최초로 사용.
이탈리아의 피렌체라는 도시를 여행했던 시간을 돌아보면 내겐 굉장한 상반 병존 감정이 든다.
짜증 나고 답답했던 시간. 평화롭고 푸르렀던 시간. 피렌체 여행은 내게 꼭 여름 같았다. 더위에 쥐약인 나는 여름을 싫어하지만 가끔씩 행복에 겨울만큼 그 계절과 깊은 사랑에 빠지곤 하기도 한다.
수없이 걸어 다녔던 가죽 냄새 가득한 피렌체의 골목, 끊임없이 지나치는 관광객들의 무리. 우리가 길거리에서 산 양송이버섯 조각 피자를 먹으며 앉아 있었던 미켈란젤로 언덕.
전 세계 관광객들에게 유수의 관광지로 꼽히는 플로렌스에 대해 내게 남은 기억은 굉장히 파편적이다. 레오나르드 다 빈치,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마키아벨리와 같은 전설적인 인물들의 이야기가 도시 곳곳에 숨겨져 있다 한들 사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내가 정확히 기억하는 건 나와 여자 친구가 피렌체 도시를 빠져나오기 한 시간 전(두오모 출입 시간을 놓쳐 입장하지 못한 후) 심하게 다퉜다는 사실뿐인데.
어떤 일이 우리를 그토록 삐치게 만들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피렌체 중앙역 근처의 어떤 초콜릿 디저트 가게에서부터 그 싸움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물론 그녀에게 사실 관계를 물어볼 수 있다면 정말 확실해질 것이다.
내가 어떤 말을 했고, 그녀는 정말 짜증 나 보였다. 얼마나 짜증 나 보였냐면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서 나중에 누가 '짜증'에 대해 물어보면 그 사진으로 '짜증 난 상태'에 대해 설명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우리는 서로 자존심을 세웠다. 어떻게?
언어는 한계가 명확해서 다양한 측면을 담아내지 못한다. 그러니 모든 연구 결과가 바디 랭귀지의 힘이 언어 랭귀지를 훨씬 상회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도 몸짓과 표정과 말투가 내는 효과에 비하면 실제 뱉어내는 언어는 거의 의미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나는 자존심이 센 편이었다. 하지만 자존심이 세다는 말만으로 그 사람이 보일 행동을 예상할 수 있을까?
어떤 자존심 강한 사람은 누군가에게 알 수 없는 말을 들으면 그 말의 정확하고 깊은 의미를 추궁하고 달려들어 이기려 들 것이다. 그것이 그에겐 자존심을 세우고 승리하는 방식일 테다.
나에게는 더 자세히 알기를 포기 혹은 거부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뒤돌아 서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자존심을 지키는 방식이었다. 거의 최악에 가깝다. 내가 그런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면 곧바로 그를 경멸할 것이다. 물론 경멸을 표하는 방식으로 나는 그를 무시할 것이다. 난 정말 대단한 비폭력주의자이거나 겁쟁이임에 틀림없다.
그녀가 답답해할 때마다 나는 자주 그녀에게 말했다.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잖아. 화났을 때 내가 너에게 어떤 말로 상처를 줄지 몰라서 그래. 나는 화가 나면 상대방에게 상처 입힐 만한 말을 골라서 하는 데 천재적이거든. 그래서 차라리 입을 닫으려 하는 거야."
사실 그건 나조차도(지금도) 납득이 될 만큼 괜찮은 변명이었는데, 실제로 싸우고 나서는 누구도 납득하지 않았다. 왜냐면 상대를 무시하고 퉁명스럽게 있으면서 더욱 상처를 입히려고 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내 여자 친구는 몹시 특이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무표정이거나 얼굴을 찡그릴 때에는 정말 못났는데 웃을 때는 넋을 놓고 쳐다볼 만큼 예쁘고 귀여웠다. 가장 큰 문제는 그녀가 잘 웃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정말 웃지 않았다. 그녀에게 웃기는 일은 많지 않았다. 코미디와 개그로 웃기는 것보다는 같잖은 멜로 영화로 그녀의 비웃음을 사는 것이 그녀의 미소를 보기에 더 쉬운 방법이었다. 그만큼 뜸했기에 그녀의 웃음을 더욱 값졌다. 사람에게 뿌듯한 보람을 느끼게 했다. 물론 그것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그녀가 야속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녀는 희소성을 가치를 깨우친 것일까? 그래서 일부러 웃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혹은 계속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게 습성이 되어버렸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간에 만약 그렇다면 그녀는 방향을 조금 잘못 잡았다. 왜냐하면 말했듯이 그녀의 무표정은 정말 못났기 때문이다.
조합이 맞지 않는 이목구비, 돌출된 입, 작지만 오똑한 코, 넓은 미간.
하지만 그녀가 미소 지을 때는, 참 신기하게도,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았다. 적절하고 완벽한 조합을 만들고, 세상에서 제일 예뻐졌다.
피렌체 도시를 떠나는 시외버스에 올라 숙소가 있는 마을까지 한 시간 가량 달려가는 동안 나는 이미 그녀에게 미안해졌다. 창밖을 바라보는 그녀의 실망스럽고 퉁명스러운 옆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어떻게 하면 그녀의 미소를 다시 볼 수 있을지 미친 듯이 고민했다. 버스에서 내리며 조심스레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자 그녀의 마음은 곧바로 풀려 버렸다. 그녀는 내게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그녀가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알겠는가? 그런 점은 그 후로 오랫동안 내가 그녀를 천사가 아닐까 하고 의심했던 주된 이유 중 하나다.
'꼬꼬뱅'이란 음식을 아는지? 꼬꼬뱅은 닭고기와 야채를 냄비에 잘 구운 후 와인을 갖다 부어서 졸이는 프랑스 요리이다. 이탈리아의 한 작은 마을에서 '꼬꼬뱅'을 졸여 먹었던 어느 완벽한 하루에 대해 쓰고자 한다.
사실 여행은 굉장히 피곤한 행위라서 반드시 적절한 휴식이 필요하다. 6시에 기상해서 밤 11시까지 12군데의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저녁으로 중국 음식을 먹는 여행은 타살 행위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 생각에는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는 피렌체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었지만 피렌체 도심에는 한나절을 다녀왔을 뿐, 그 후로는 그곳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피렌체를 다녀온 다음 날 나와 여자 친구는 저절로 눈이 떠질 때 잠에서 깼다. 그리고 화장실을 다녀왔고, 진한 커피를 끓여 발코니 테이블에 앉았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마을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모습이 내려다 보였다. 우리는 지난 여행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이야기를 나눴다.
"내게 정말 근사한 생각이 있어!"
그녀에겐 언제나 근사한 생각이 있었다.
"뭔데?"
"오늘 하루는 아무 데도 가지 말고 푹 쉬자. 이탈리아 현지인들처럼."
"정말 아무 데도 안 가고?"
"필요하면 산책 정도 나가면 좋지. 무슨 말인지 알잖아."
아직 잠에서 덜 깬 그녀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처진 눈꼬리가 귀여웠다. 나는 그녀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녀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다. 제대로 알아듣고 제대로 행동할 수 있는 것도 오로지 나뿐이다.
우리는 나무 층계를 내려가 응접실과 주방이 딸린 1층으로 내려갔다. 우리는 일주일간 2층짜리 단독 주택의 주인이었고, 마음대로 방귀를 뿡뿡 뀌어대도 상관이 없었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응접실에 놓인 진흙 색 소파에 그녀가 편히 누웠고, 나는 특제 펜케이크를 만들었다. 펜케이크 가루는 프랑스 파리의 고급스런 마트에서 구입한 것이다.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마치 파전을 부치 듯이, 바삭바삭함을 살리기 위해 펜케이크를 정성 들여 구웠다. 덕분에 케이크가 너무 기름을 먹어 느끼해졌다. 나는 펜케이크를 상당히 싫어하는데 여자 친구는 그 이름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만큼 그것을 좋아했다. 나는 그녀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내가 싫어하는 짓을 할 수 있었다. 물론 하지 않은 짓도 있지만, 펜케이크를 먹고 난 접시를 설거지하고 있을 때 뒤에서 내 허리를 껴안으며 "잘 먹었어."라고 말하는 여자와 함께 있다면 사실 남자는 뭐든지 할 수 있다.
잠시 그 멋진 주방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그곳엔 매일매일 천 가지 파스타를 삶아 먹을 수 있는 모든 주방기구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지만, 가스렌지에 딸린 오븐은 수십 년 동안 음식을 구워낸 다정한 사용감이 있었다. 오븐을 열기만 해도 그곳에 들러붙은 고소한 세월의 냄새가 풍겨 나왔다.
사람들이 에어비앤비 숙소를 선호하는 이유 중엔 현지인들의 집에서 지내며 현지인들이 가지는 느낌을 만끽하고 싶다는 커다란 욕구가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고, 상상과는 달라 마음에 들지 않았던 숙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집은 우리에게 기대 이상의 안락함과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지금도 상상 속에서 숙소의 현관문을 열어젖히면 내게 별똥별 같은 새하얀 행복감을 가져다 줄 정도로.
아무튼 응접실 한쪽 벽을 차지한 창을 통해 들어오는 중부 이탈리아의 햇볕을 받으며 누워있는 여자 친구를 보았다. 그녀 앞에 놓인 테이블에 펜케이크를 가져다 놓았다. 우리는 그것으로 가벼운 점심을 때웠다. 역한 메이플 시럽을 듬뿍 뿌려서 말이다. 물론 내 입맛엔 그렇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메이플 시럽은 내게 갈변한 버섯을 갈아 놓은 것 같은 꾸덕한 느낌을 준다.
펜케이크를 먹으며 아주 더웠던 스무 살의 여름 방학에 대해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달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한 권 챙겨 내려갔던 시골집에서의 여름을. 어디서 그 이야기가 발단되었을까. 알 수가 없다. 나는 이야기를 마쳤다. "그 여름 내 옆에 네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말하며 그녀의 손 위에 내 손을 포개 놓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