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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순 Aug 07. 2020

나는 지구 어디에도 없는 것이었다

보츠와나 국경

  공항이나 육로로 국경을 통과할 때면 반드시 거치게 되는 출입국 관리소. 그곳 직원들은 대체로 좋게 말해 위엄이 있고 평범하게 말하면 무뚝뚝하며 나쁘게 말해 권위적이다. 그들이 실제로 위엄이 있는지 무뚝뚝한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국경을 통과해 본 사람들은 대부분 그리 느낄 터이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껴왔다. 그 앞에 서면 어쩐지 나는 검문당하고 있는 잠재적 범죄자가 된 기분이 든다.

  

  한번은 중국에 갔다가 입국하느라 인천공항 입국 사무소에서 심사를 받던 중에 직원이 10초가 넘도록 아무 말도 없이 계속 나의 여권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입국할 때는 대개 2, 3초도 안 걸려 통과해온 터라 그런 이례적인 상황에서 나는 더욱 긴장을 해 움츠러들어 있었다. 아무 말이 없던 여직원이 갑자기 내게 인사를 한다. 예전에 내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 학생이라 했다. 상대로서는 반가운 마음에 알은체를 한 것일 터이지만 나는 그 상황에서 갑자기 안색을 바꾸고 반가워할 수 없었다. 조용하고 성실하게 수업을 듣던 학생으로 기억되는 그녀에게 "그래! 반가워. 여기서 근무하는구나" 하고 갑자기 기쁜 내색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난 그때도 그저 잠재적 범죄자가 된 심정으로 한창 움츠러든 채(여행의 막바지라 피곤하기도 했을 터이다) "어, 그래..." 하고 쭈뼛쭈뼛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래도 국경에 대해 갖고 있는 좋은 기억도 제법 있다. 일본 오카야마의 출국심사대 직원은 참 친절하기도 하였다. 한국 여권을 보더니 먼저 반갑게 한국어로 인사도 해주고 웃어주기까지 했다. 출입국심사대에서 좀체 볼 수 없는 웃음이어서 난감하고 이래도 되나 싶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일하면 일하는 입장에서도 즐겁지 않을까.


Okayama, Japan


  압권이었던 국경의 경험은 보츠와나-나미비아 국경이었다. 나미비아에서 보츠와나로 건너갔다가 다시 나미비아로 가기 위해 보츠와나 출국 심사대 앞에 섰다. 심사대의 직원은 한가해 보였다. 그녀의 출국 심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느 나라에서 왔죠?"

"한국이요."

"멀리서 왔군요. 보츠와나에서 어디 어디 가봤어요?"

여기까지는 그저 의례적인 질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담담히 대답했다.

"마운, 하이Nxai 팬Pan, 쿠부 아일랜드요."

"와, 쿠부까지 갔어요? 그 밖에는요?"

"다른 곳은 일정이 빠듯해서 못 갔어요."

"안타깝네요. 보츠와나엔 멋진 곳이 참 많은데. 다음에 꼭 다시 오세요."

나는 진심으로 대답했다.

"그러고 싶어요."


Nxai Pan, Botswana


보츠와나-나미비아 국경


  그렇게 흥겨운 출국심사를 마치고 국경을 나서니 저 멀리 나미비아 출입국관리소 건물이 보인다. 그 200미터 남짓은 그야말로 보츠와나도 아니요 나미비아도 아닌 것, 나는 지구 어디에도 없는 것이었다. 묘한 해방감에 휩싸였다. 그 사이엔 아무것도 없고 그저 철책이 쳐져 있을 뿐이었지만 왠지 그곳에 오래 머물고 싶어 괜히 늑장을 부렸다. 물론 그런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 있지도 않았고 신경 쓰는 사람도 없었다. 이곳은 지구의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여름 하늘엔 구름이 둥실 떠가서, 여기가 지구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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